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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Jul 22. 2024

63. 김천 치유의숲에 가다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

치유治癒

명사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


토요일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전날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해서 집에서 골골대느라 나가질 못했다. 일요일인 오늘은 꼭 가야지 생각하고 알람을 맞춰놓고 잤다. 역시나 늦게 잤지만 그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했다.


김천에 있는 국립김천치유의 숲에 다녀왔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자작나무숲을 보았다. 자작나무숲은 인제 원대리가 유명한데 너무 멀어서 시도도차 하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 1시간 거리에 자작나무 숲이 있다고? 그렇다면 가야지!


알람을 맞췄지만 미적거리느라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1시간 정도 늦어졌다. 가는 길이 온통 숲이 기분이 좋아졌다. 비소식이 있기는 했지만 많이 오지 않을 듯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렸고 산중턱에는 물안개가 가득했다. 1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했는데 관광버스가 꽤 많았다. 수도리마을주차장에 주차를 하라고 했지만 관광버스는 주차칸을 무시하고 주차를 해서 자리가 없었다. 일단 위로 올라가 보았다. 수도암 가는 길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올라갔다. 치유의 숲은 산아래가 아닌 산중턱부터 산정상까지 이어지는 엄청 넓은 곳이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왔는데 예상외로 넓어서 좀 망설여졌다.


올라가는 길에 만난 야생화와 이끼, 오래된 숲을 지켜온 키 큰 나무들. 비를 머금은 물안개까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왜 치유의 숲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마음이 무척 평온해지고(물론 마음과는 달리 거칠어진 호흡) 숲 속에는 나뿐이라는 사실에 행복감이 차오른다.(정자에 사람들이 누워있어서 깜짝 놀라기는 했다.) 고요한 숲 속에서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만이 아름답게 퍼진다.



몸도 마음도 자꾸만 지치는 요즘이었다. 사람이 힘들고 사람이 무섭고 사람이 지겹다. 사람들 안에서 자꾸만 작아지면서도 뾰족해지는 내가 싫어서 숨고만 싶어졌다. 마음이 망가진 게 분명하다. 인간을 초록을 보면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솦속을 천천히 걷고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 안에 내가 있다.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그 안에 있는 나를 담아둔다. 나는 내가 나를 찍을 때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나를 예쁘게 찍는 순간을 좋아한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나를 담는 시간. 내가 나를 예뻐하는 시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준비해 온 비옷을 입고 토독토독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 바람이 불어 비가 얼굴을 때린다. 오랜만에 비를 맞으며 걷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물고기가 된 듯 습기로 가득한 곳에서 사뿐사뿐 걸으며 헤엄치는 기분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덕유산 구천동으로 돌아서 갔다. 구천동길은 전국 아름다운 길 중 하나라 봄에는 벚꽃길로, 여름엔 싱그러운 녹음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설산으로 유명한 길이다. 벚꽃길은 매번 지고 난 후에만 봐서 늘 아쉬운 길이기도 한데 비가 그친 이후라 더 선명한 녹음의 아름다운 덕유산 자락을 달리는 기분이 정말 최고다. 왜 아름다운 길인지 새삼스레 다시 한번 느꼈다. 초록은 정말 아름답구나. 숲을 왜 치유의 공간이라고 하는지 또 한 번 느끼면 중간중간 쉼터에 내려 구천동 계곡을, 덕유산을, 아름다운 길을 보고 또 보았다.



언젠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구천동 아름다운 길에서 벚꽃터널을 볼 날이 오겠지.


초록으로 시작해서 초록으로 끝난 오늘 하루. 치유의 시간이었다. 나는 이미 시골에 살고 있어서 숲에 둘러싸여 있지만 여전히 숲이 좋다. 숲으로 가는 길도, 숲 속에서도, 숲에서 돌아와 보는 동네 공원도, 집 앞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도 다 좋다. 평온한 이 시간을 품에 안고 다시 월요일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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