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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 지 Oct 23. 2023

길고양이 대장이가 다녀갔다

초여름에 길고양이를 위해 놓아두던 밥을 거두었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밥이 없어진 것이 실제 상황인지 당황하며 드나들었고 처음 이 집에서 만나던 날 잔뜩 긴장한 채로 발톱을 올렸던 대장냥이도 마당에 나타나서 나를 찾았었다.


'이제 밥 안 줄 거야.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살아가! 잘 살아야 해!'

그렇게 말하고 돌려보낸 다음이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걸려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밥은 주고 돌려보낼걸...


길냥이들이 눈병에 걸린 것은 건강에 조금 염려스러운 일이 생긴 것이라고 하던데 그날 본 대장냥이의 눈에 있던 눈곱도 마음 아팠다.

어쩌면 마지막 식사였을지도 몰랐는데, 그렇게 마주쳤던 아이를 그냥 돌려보낸 것이 늘 마음에 남아있었다.


길고양이들 수명은 2~3년이라고 한다.


재작년과 작년 가을 빈 집의 기둥 옆을 지키던 치즈냥이도 봄부터 보이지 않았다. 봄에 몇 번 보였던 흰색 나비넥타이를 두른 턱시도 냥이는 어리고 여린 아이였는데... 표범무늬의 옷을 입고 있던 이도, 커다란 흰색의 십자문양 털을 가졌던 아이도...


마치 피었던 꽃이  지듯 차례차례 자취를 감추었다.


샴고양이가 나타난 뒤로 가끔 보이는 어린 길고양이들의 털 색깔에 샤미즈의 색이 섞였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꽃이 피었다 지듯 계절마다 다른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름을 보내며 나는 줄곧 그날 대장냥이가 찾던 밥 한 끼 주지 않았던 그 한순간이  여전히 목에 걸린 것처럼 남아있었다.


고양이들이 발길을 줄인 산기슭의 자리에 뱀이 지나간 흔적이 남았을 때 잠깐 그리워지기도 했었지만 길고양이들을 내가 필요할 때 다시 부르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아야 했다.  살아가. 가끔 다녀가는 나를 믿지 말고...


노지 월동을 하지 못하는 허브 몇 가지를 화분에 옮겨 실내로 들이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모습으로 대장냥이가 나타났다.


눈병은 여전했지만 그 덩치와 얼굴 크기도 여전해서 여름을 잘 보내었다고 짐작이 가는 기세로 나타나 '야옹'하고 나를 불렀다.


"어서 와! 여름 잘 지냈구나! 밥 먹고 가~"


난 얼른 사료 한 그릇을 듬뿍 담아내어 주었다.


대장이는 사료를 조금 먹고 내 주변을 서성이며 왔다 갔다 하다가 바닥에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안돼! 그러지 마! 가끔 와서 밥은 먹고 가도록 해. 지금까지 나 없어도 잘 살아왔잖아. 여기는 네가 터를 잡고 살면 안 되는 곳이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람은 믿지 말고 너의 길을 가...."

나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듯이 소리를 내서 대장이에게 말을 했다.


대장이는 귀를 쫑긋 하고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듣다가 마치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기라도 한 것 처럼 얼른 누웠던 등을 바로 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료가 담긴 그릇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어린 길냥이 한 마리가 사료를 먹고 있었다.


그 아이가 밥을 다 먹고 자리를 뜨자 대장이도 여러 번 나를 돌아보며 산 아래 길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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