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와 지방의 경계에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살다가 7살 때 경기도 안양 평촌으로 이사 왔다. 그 후 안양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왔기 때문에 안양 토박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안양 사람만 보면 반갑다.
평촌은 대표적인 베드타운으로서 1기 신도시다. 평촌 학원가에는 없는 학원, 없는 떡볶이집이 없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가 참 많다. 백화점, 영화관, 마트도 많고 온갖 프랜차이즈 식당과 카페, 유흥시설 등이 밀접해있다. 집 근처에 공원도 두 개가 있는데, 평일에도 강아지들이 산책하고 아이들이 뛰논다. 우리 집 근처에는 예술대학교가 있어서 술집과 카페가 밀집된 대학가도 나름대로 구성되어 있다. 안양 종합 운동장에서는 축구, 하키,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도시의 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근처에 산과 약수터가 있고, 동네에 공원과 연결된 작은 동산도 있다. 나름 도시의 생활을 영유하면서도 자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동네에서 아쉬운 것은 야구장이 없다는 것 정도다.
외갓집이 서울이라 어릴 때부터 서울에 종종 방문했지만, 주로 부모님 차를 이용해서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우리 집은 서울이 아니구나 느꼈던 것은 대학생 때부터였다. 대학을 신촌 근처로 다니면서 매일 아침 힘겨워했다. 지하철로만 치면 50분 정도가 걸렸지만 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 버스, 지하철, 지하철 역에서 학교 건물 강의실까지 도착하는 데는 적어도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출퇴근 시간과 나의 통학시간이 겹치면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특히 학교를 가는 길에는 지옥의 사당역을 거쳐야 해서, 통학하면서는 따로 어깨 운동 없이도 근육이 성날 정도였다. 하지만 못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말로는 기숙사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지만 사실 독립할 생각은 없었다. 1시간 20분 정도야 뭐. 나의 동네 친구는 5년 넘게 안양에서 회기까지 통학을 했다. 경기도민에게 평촌에서 신촌 정도는 그냥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서울 시민들, 혹은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 친구들은 나와 기준이 달랐다. 한 번은 학교 기숙사에 사는 친구와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멀지만 나를 위해서 우리 집 쪽으로 와준 것이라고 생색을 냈다. 신촌에서 강남은 환승 없이 지하철로 30분이 걸린다. 우리 집에서는 버스 타고 1시간을 가거나 버스 > 4호선 > 2호선을 갈아타고 40분 정도 걸려서 가야 한다. 이 때는 이미 이러한 반응에 익숙해졌을 때라 그냥 허허 그래 고마워라고 했다. 그들에겐 주로 악의가 없다. 그들에게 경기도는 본가에 내려갈 때 기차로 거쳐갔던 생소한 곳들 중 하나이거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일 때도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또한 수도권에 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메릴랜드의 실버스프링이라는 도시인데,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 도심까지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한국에서도 집에서 강남까지 차로 40분 정도 걸리니까, 어찌 보면 미국에서도 안양에 살고 있는 거라고 부모님과 농담을 한다. 우스갯소리로 늘 수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기도민의 삶을 살고 있다고도 한다.
미국의 수도권은 한국과 느낌이 다르다. 한국의 수도권은 정말 경계의 느낌이라면, 미국의 수도권은 수도에 더 가깝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워싱턴 DC로 갈 수도 있고 차 없이도 웬만한 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조금이라도 더 멀어지면 이러한 생활은 불가능하다. 물론 미국은 수도인 워싱턴 DC보다도 더 도시인 곳들이 몇몇 있다.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도시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바로 뉴욕이다. 그래서 뉴욕 옆 동네인 뉴저지의 삶이 오히려 경기도의 삶과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행정적으로 수도권에 살고 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깝게 수도에 붙어 있는 곳에서의 삶은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수도에 있는 모든 인프라를 즐길 수 있으면서도 도심에서보다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을 산다. 수도에 있는 대학을 집에서 통학할 수도 있고, 굵직한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갈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힐링을 원할 땐 멀지 않은 곳에서 자연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지방으로 갈 때도 서울보다 더 빠르고 편리하다. 어찌 보면 수도나 지방이 아닌 경계에 살아서 더 좋기도 하다.
수도와 지방의 경계에서 사는 삶은 불편하면서도 편하고 지루하면서도 재미있다. 도시와 멀면서도 가깝고 지방과 가까우면서도 멀다. 서울에 살다가, 혹은 지방에 살다가 여러 이유로 수도권 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히 수도권의 삶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매일 서울로 와주는 경기도민 친구가 있는 서울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고맙다고 말해주길 제안해 봅니다. 익숙해져서 어디든 기꺼이 갈 수 있는 경기도민이지만, 이를 고마워해 준다는 점에 감동을 받을지도 몰라요.
외국인들이 한국 어디서 사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서울 근처라고 답합니다. 외국인들이 경기도나 안양을 알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한국인들이 미국 어디서 사냐고 물어봤을 때는 워싱턴 DC 근처라고 말하죠. 메릴랜드나 실버스프링 또한 잘 알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