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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인 Oct 10. 2023

또 그녀로부터의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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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씨 내외가 본격 귀농을 시작하고부터 택배 사정은 더 안좋게 흘러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밭에서 난 잉여농산물들은 우리집으로 처리되었다. 그때마다 나와 남편은 너무 양이 많다, 성인 둘, 어린이 하나가 결코 다 먹을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채소를 먹어본 적도 없고 손질할 수도 없다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다음 택배에도 목소리는 전혀 닿지 않은 듯했다. 무시무시한 양의 농산물들이 늘 그랬듯 마구잡이로 포장된 채 택배로 전해졌다. 두고 먹기에도 넘치는 양이었다.


사실 진짜 문제는 ‘두고 먹을 수 없는’ 소비기한이 짧은 채소들이었다. 이미 택배 상자 속에서 하루동안 시들해진 상추 같은 푸성귀들 말이다. 부모님의 정성을 차마 버릴 수 없던 효자, 남편이 앞장서 그것들을 해치워야 했다. 상추 그깟 거 쌈 싸 먹으면 되지, 가 안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상추였다. 남편은 이박삼일을 아침저녁으로 상추만 잔뜩 넣은 비빔밥을 해 먹었다. 그러고도 처리가 안되는 것들은 하루라도 더 벌어보려 상추 겉절이를 무쳐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나날이 상추데이였다. 매 끼니 상추를 해치우는 그가 참 안되어 보이면서, 그의 부모님이 이 광경을 목도한다면 이 택배 지옥은 끝나려나 상상해보기도 했다.


주는 이의 마음과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완곡하게 부담을 표시했다. 계-속. 택배를 받을 때마다 같은 말이 오고 가는데도 다음 택배는 꾸준히 ‘양 많이’ 버전으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포탄을 쏟아내었다. 아들인 네가 강하게 말하라고, 나는 더 이상 말 못하겠으니.


안먹는 것도 많고 못먹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양이 너무 많으니 보내실 거면 양을 줄여달라. 지겹도록 주장했지만 택배를 주관하는 영희씨는 귀를 닫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아니다. 팩트체크! 아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 주신 것도 있었다. 통마늘은 간 마늘로 바뀌었고 쪽파는 흙덩이를 떼내어 보내기도 하였으며 가마니 쌀은 페트병에 곱게 넣어져 배송되기도 했다. 영희씨의 라떼는-에 비추어볼 때 우리가 얼마나 괘씸했을까 싶기는 하다. 우리로서는 집 앞 마트에서 휙 사 먹어도 되는 일을, 주는 이의 기쁨 망치고 싶지 않아 감내하는 것이었으나. 그녀의 입장에선 받아먹으면서 갑질하는 요즘 것들, 하고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의견수렴이 되는 경우는 이처럼 손에 꼽았고, 대부분의 택배는 그녀의 선택적 듣기를 바탕으로 꾸려졌다. 꾸준히 택배를 보내오시는 자식 사랑의 그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가도 꾸준히 의견을 묵살하는 그녀의 마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받은 이는 처리하느라 고통스러운 택배에 대해, 받을 때마다 예의상 감사하다고 하는 것은 고역이었다. 전혀 감사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해치울 것이 아니라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는 양을 적절히 보내주셨더라면, 우리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셨더라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택배였을까. 택배의 시대가 파국으로 치닫으면서 나는 감사인사를 멈추었고 남편이 택배와 관련한 연락을 담당하는 빈도가 늘었다.



기꺼이 나의 편에 서는 남편이었으나, 그래도 자기 부모에 대한 옹호는 본능적인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아끼며 살아서 그렇다, 몸에 밴 습관이니 바뀌기가 어렵다, 젊은 우리가 이해해줘야 한다. 남편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내게 이해를 요구했다. 영희씨가 우리의 생활과 의견을 이해해 줄 수는 없지만, 나는 영희씨를 무턱대고 이해해야 한다니. 나에게는 그런 아량이 없다.


나는 남편이 자신에게 더 쉽고 간편한 해결 방식을 택한다고 느껴져 고까웠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우리를 이해시키는 것은 그의 지극한 효심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여러모로 더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아내인 내 쪽에, 아무래도 더 편하고 만만한 쪽에 이해를 바라는 것은 그로서 더 수월하고 편리했을 것이다. 에이- 지인아 우리가 이해하자, 내가 다 정리할게, 내가 다 먹을게. 그렇게 얼렁뚱땅 달래가며 무마시키며.


그러는 사이 며느리의 참을성은 점차 바닥났다. 그리고 그 겨울, 또 한 번의 택배가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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