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끝내주지 말입니다
첫째가 태어난 해의 여름이었다.
어느정도 아기가 자라 짧은 산책이 가능해졌을때, 남편과 함께 백화점 나들이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아이쇼핑을 하다 미리 위치를 기억해두었던 수유실에 들어가 기저귀를 갈고 있었을 때였다.
내 뒤를 따라 수유실에 들어온 아기엄마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여름, 아기띠를 하고 걸어서 백화점에 도착한듯 이미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오른 귀여운 아기를 뉘여 기저귀를 벗기는데 나는 그만 내 눈을 의심할만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기의 엉덩이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기저귀 모양으로 새빨갛게 짓물러 있었던 것이다.
뽀얀 피부 아래 피같이 붉은 하반신은 지금도 내 기억속에 강렬하게 남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아이 엄마는 기저귀 새것을 하나 꺼내 엉덩이를 향해 몇번 부채질을 해주고는 다시 기저귀를 입혀 자리를 떠났다.
이미 첫째를 7세까지 키운 지금의 내가 이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반적인 발진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치 빨간 기저귀를 입은 것처럼 배꼽부터 허벅지까지 한점 티없이 붉어, 멀쩡한 피부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고작 몇개월 된 아이를 키워본 육아 초보였던 나는 발진은 다 저런건줄 알고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한여름에 일회용 기저귀를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을 살펴보면 시원한 통기성 기저귀들을 쉽게 볼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차는 더운 날씨에 최대한 아이들이 편안할수 있도록 디자인된 제품들이다.
그래도 소재 특성상 기저귀 속은 그야말로 사우나같은 찜통이 되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 첫째가 1년8개월쯤 되었을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린이집에 가야하는 평일 낮동안에는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해봐서 알고있다. )
그에 반해 천기저귀에게 있어서 여름은 완벽한 계절이다.
이전에도 언급했던 소창이라는 원단이 있다.
어른들이 흔히 거즈원단이라고도 부르는 성글게 짜인 거친 원단인데, 이것이 희안하게도 세탁해서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이 더욱 좋은 천기저귀가 된다.
얼기설기 엮인 실 사이로 바람도 잘 통해 아이도 시원하고 세탁 후에도 빨리 마른다.
가장 전통적이며 기본적인 조합은 허리밴드에 소창 기저귀를 입히고 바지를 입지 않는 스타일이다.
아이가 놀며 땀이 흘러도 소창이 자연스레 흡수하며 몸을 말려주고, 소변을 보면 그 무게에 자연스레 기저귀가 무거워 지며 엉덩이와 기저귀 사이에 공간이 생겨 바람이 통한다.
굳이 손가락으로 찔러보지 않아도 육안으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기저귀 갈기에도 수월하며, 바지를 입지 않았으므로 하의가 젖을 걱정도 없다. 해와 바람이 좋은 날은 반나절이면 세탁이 마르고, 비가 오는 눅눅한 날에도 하루이틀이면 말라서 신생아부터 기저귀 졸업할때까지 꼭 있어야 하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특히 장마로 습도가 높아진 날에 빨래건조대에 널린 기저귀들을 만져보면 단연 소창만큼 빨리 말라 회전율이 좋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걷거나 기어다니며 움직임이 많은 아이에게는 패턴이 예쁜 팬티형 천기저귀에 티셔츠하나 입혀주는것도 좋은 선택이다. 마치 블루머를 입힌듯 알록달록 예쁜 하의를 입혀 놓으면 나들이 가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 재미에 예쁜 기저귀를 사모아서 상의에 매치하며 스타일링하면 육아의 큰 재미가 더해진다.
운좋게도 나에겐 손주에게 기저귀를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친정엄마가 계셔서 아기에게 할머니표 소창 프리폴드 천기저귀를 입힐 수 있었다.
둘째계획이 없었던 나는 첫째의 기저귀를 졸업 후, 사용할일이 없음에도 소중히 보관해뒀었는데 현재는 6개월된 둘째가 잘 입고있는 중이다.
(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것! )
무려 7년전에 만들어진 기저귀인데도 상한데 없이 멀쩡한 것을 보면 역시 기저귀는 한번 만들어 오래 쓰는게 정답인것 같다. 이대로라면 둘째가 기저귀를 졸업해도 이 기저귀를 버릴수 없을것 같다.
현재 둘째의 엉덩이는 맨들맨들 보송보송하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손이 미끄러질만큼 보드라운 아기 엉덩이를 보는것, 그래 내가 이맛에 천기저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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