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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코 Feb 24. 2023

그녀가 내게 말했다. 고맙다- 고

천기저귀가 이렇게 감사받을 일이라니




 




육아휴직을 하고 한창 아기를 돌보던 신혼때의 일이다.

여느때와 같이 기저귀를 건조대에 말리고 아기를 돌보고 있었는데 무슨일인지 초인종이 울렸다. 경계하며 문을 여니 순한 인상의 아주머니께서 "소독이요-" 하신다. 낮에는 회사에 있고 결혼전엔 빌라에 살았기 때문에 아파트에서는 소독을 위한 방문이 있다는걸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쨋거나 아주머니는 물이 흐르는 하수구를 모두 보아야 하신다며 집안 이곳저곳을 소독하시다 한켠에 놓인 빨래 건조대를 발견하셨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으로 이게 뭐냐고 나에게 묻는게 아닌가.

"이거요? 이거 아기 기저귀인데요?"하고 말씀드리니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






당시 17평 작은 신혼집의 빨래 건조대






젊은 사람이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며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던 그 얼굴과 말씀은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씩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아주머니께서 어떤마음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는 알수없지만 분명한건 나는 그날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크게 높아진 날이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내가 직접 아이를 낳고 키워보고 나서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몸이 아파서 꼼짝도 하기 싫은 날, 파김치가 되어서 퇴근한날, 잠을 못자 너무 피곤한 그런 날에 나는 유독 아이에게 화를 참지 못했다. 그리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엄마가 아까 화내서 미안해- 하며 숨죽여 우는것이다.

엄마로서의 내가 작아지면 단순히 엄마의 역할 뿐 아니라 부부관계, 사회생활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족한 나의 모습에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우울해하기 때문이다. 






10개월간 쪽잠을 잤던 첫째아이






나의 첫째딸은 유독 잠들기 어려워 하는 아이였다. 통잠을 자게된 10개월이 될때까지 30분에서 2시간정도의 쪽잠만을 잤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병원에서는 아기가 수면교육이 안되면 성장해서도 수면이 어려울수 있다며 겁을 주기만 할뿐 해결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의 온갖 정보를 뒤져가며 해볼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그리고 매번 실패할 때마다 미숙한 나를 탓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해야만 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하며 저녘 늦게 집에 돌아오는 남편이나 가끔씩 들러주시는 친정부모님보다 가장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엄마인 나인데 내가 모르면 누가 알까? 지금 이순간 이 세상에서 내 아이를 도와줄수 있는건 오로지 나뿐인데 아무리 애를 써도 도저히 아이가 왜 힘들어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너무 힘들고 답답해 칭얼대는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면 아기는 두려움에 떨며 더욱 커다랗게 울뿐이다.

모두가 잠든 새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 우는 아기를 둘러 업고, 집안을 둘레둘레 돌며 아마도 내가 눈치채지 못한 아이의 불편함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다른 아기들은 이맘때 쯤이면 다들 잘 잔다니 분명히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것이라며 자책을 한다. 매일 밤낮으로 우는 아이에게 부족한 엄마여서 미안하다고 되뇌이다보면 우울한 감정이 드는건 금방이다.

딸아이를 예쁘게 키우고싶은 나에게 색색깔의 어여쁜 천기저귀는 소소한 육아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분의 고맙다는 한마디는 그동안 엄마로서의 수고를 모두 인정해 주는듯 했다. 그 누구도, 심지어 배우자나 부모님께도 들어보지 못했던 커다란 위로였다.


얼마전 둘째의 6개월 영유아 검진이 있었다. 아이의 상의를 걷어 청진기를 대던 의사 선생님께서 아래에 슥 튀어나온 소창을 보고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천기저귀라고 답하니 옆에서 예방접종을 준비하던 간호사 선생님이 웃으며 나에게 말한다. 

" 천기저귀는 처음봐요. 아기를 정말 사랑하시나봐요. "


천기저귀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아기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장담하건데 천기저귀를 시작하는 순간 당신이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훌륭한 엄마라는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육아를 하는것만으로는 절대 듣을수 없는 말들을 단지 천기저귀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듣게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잘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육아가 한결 편안해지기 마련이다. 아기를 대하는것이 편안해지면 엄마는 좀더 부드러운 양육자가 된다. 그야말로 엄마와 아이가 모두 행복해 지는 마법같은 일이 아닐수 없다.





인스타

@drawing.m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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