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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 LEE Mar 23. 2022

가까울수록 더욱 말 조심하기

이유 모를 우울함의 기록 3

어쨌든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상담을 하고 오니 마음이 좀 나아진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울적했던 기분도 덜하고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감도 줄어든 게 보인다. 내가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고 병원을 가게 되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자주 대화했던 게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내 성향 자체가 힘든 걸 내색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랑 더 많이 대화하고 수다를 떠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인생의 목표가 뭐예요?"라고 물으셨는데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대답하면서 눈물이 났다. 내가 금전적으로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상경한 건데, 어쩌다 타지에서 외롭고 힘들게 고군분투하는 지경에 이른 걸까. 


친구들에게 내 상황을 이야기하면 자신의 일처럼 공감해주고 같이 안타까워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어쨌든 나의 힘듦을 알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고마운 일이다.


다만 내 직업 특성상 일반 사무직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어서 '뭐 설명하자면 그런 식이지'라고 얘기하거나 구구절절 설명하게 되는데, 전자는 이야기를 툭 털어놓다가 마는 느낌이고 후자는 구구절절이 너무 길어서 정작 내가 힘든 것은 좀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말로 푼다고 해도 어딘가 답답한 구석이 항상 있었다.


어제인가 그제부터는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예능을 봐도 그다지 웃기지 않고 그다지 감동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만큼 슬픈 것도 덜하고 울적한 기분도 모른 채 지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슬프진 않으니까.


그런데 어제는 집에서 온 전화를 받다가 많이 속상했다. "니가 직접 사장을 하던지", "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따위의 말들을 들으니 이게 가족에게 들을 소린가 싶었다. 써놓고 보니 정말 의도가 무색할 만큼 쓸모없고 상처가 되는 말이다. "니가 직접 사장을 하던지"는 건너들은 말이고, "니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는 말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생활하라는 뜻으로 한 말이란다.


나는 그래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이런 내 노력은 다 어디로 간 건지. 그동안 취미 생활이며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 안에서 내 문제를 내가 잘 해결해 보려고 애쓴 것들은 다 사라지고, "투정 부리지 말고 니가 노력을 좀 해"라는 말만 돌아올 때.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곳은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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