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자버 Dec 28. 2023

모래알과 모래알 사이만큼 좁은

집을 합치려면 고양이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그 사람을 등지고

나는 대답대신 모래통의 모래를 갈았다.

쏴아아 모래통에 쏟아지는 새 모래와 함께 내 뒤통수에 비난이 쏟아졌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더 큰 선택을 해야지,

이게 뭐야, 책임감이라곤 저 고양이 똥만큼도 없는 인간아.”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저 사람 여태껏 저 말을 속에 품고 어떻게 참았을까’싶어

상처받기보단 숙변의 구린내를 맡은 것처럼 그저 좀 역했을 뿐이다.


이번엔 대놓고 대답대신 촤아아 고양이 사료를 밥통에 붓고 앉아있자,

그 사람은 기어코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모래에 이어서 사료는 넘 심했나. 아냐, 이렇게 해결난 거지.


사랑이 깊어질수록 어째 나의 세계는 더욱 좁아진다.

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만큼,

내가 손 뻗으면 너가 닿을 만큼.

그렇게 나의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진다.

나는 너의 안부 외에 그 아무것도 안중에 없다.


배가 고프니?

불편한 데는 없니?

재밌게 놀고 있니?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금 내가 필요하지 않냐 말이야.

옳지, 울지 마. 내가 여기 있잖아.

내가 바로 너 옆에 있잖아.


적극적으로 나의 세계를 좁혀가는 것.

그게 나에게는 책임감이야.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걸 책임질 수 있게 된다는 건

짊어진 게 너무 많았던 어느 늙은이의 한 서린 판타지일 뿐이야.

너를 짐처럼 버겁게 부양하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까지나 너를 행복하게 책임질 거야.

아주 적극적으로.


그래, 우리 이렇게 서로의 이마를 맞대지 않고선

고개를 펼 수 없을 만큼 가까이, 가까이 있자.

오늘은 그렇게 잠이 들도록 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