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군산 외근에서 돌아오는 열차 길에 친구에게 연락해 오늘 저녁 시간이 괜찮느냐고 물었다. 요식업을 하는 친구는 저녁 손님들로 바쁜지 그래 그래 괜찮아 좀 있다 우리 가게로 와 하며 급하게 통화를 끊었다. 10시면 식당 마감할 것 같으니 맞춰오라는 친구의 말에따라 9시 반쯤 친구네 식당 근처에 도착했다.
가게 근처 골목들을 걷다가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마감을 마쳤는지 주방 창가 불이 꺼졌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친구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고 들어오던 나와 마주쳤다. 친구는 한 쪽 테이블을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래서 뭐야? 무슨 일인데? 뭔데 갑자기 보자고 한거야"
친구가 맥주 한 병과 안주로 나오는 과자를 내어오며 물었다.
"나 연애중이라고 얘기했었나?"
"처음 듣는데? 여자친구랑 싸웠어?"
"내가 보통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성격은 못되서 돌려 말하는 편인데, 이건 어떻게 말하든 결국 내가 나쁜놈인건 마찬가지라 그냥 말해볼게. 이제 한달된 여자친구가 있어. 그런데 주영이 생각이 계속 나"
"주영이? 2년전 걔? 한동안 조용하다했다"
"만났어. 어제"
"무슨 소리야. 연락 안된다며. 어디서 만나? 걔한테 먼저 연락이 온거야? 만나자고?"
"아니 그냥 만나졌어"
"만나져? 어디서?"
"이전에 얘기한 전주 행사있잖아? 그거 미리 현장 답사 미리 다녀온다고 내려갔다왔거든 그런데 그 친구가 그곳 현장 담당자였더라구. 거기서 봤어"
"잠깐만, 나 왜 네가 무슨 말 할지 알 것 같지? 이제 주영이 잊고 지금 여자친구랑 한참 잘 연애중인데, 오늘 주영이를 오랜만에 만났고 그 뒤로 주영이가 계속 생각나서 여자친구를 계속 만나야할지 주영이한테 가야할지...... 너 설마 이 고민하고있는거야? 아니, 그래 주영이랑 오랜만에 만났다고 치자. 근데 주영이가 너한테 사귀기라도 하재?"
"이번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괜찮냐고 물어보더라"
주영이를 마지막으로 만난건 2020년 4월 12일, 그녀의 생일이였다. 야근이 잦던 그녀를 위해 평소 그녀가 좋아하던 초콜릿과 여러 간식들을 준비했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준비한 선물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늦은 시간까지 야근중이었다. 시간은 저녁 10시를 넘어섰고, 그녀의 회사 앞으로 찾아가 잠시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선물을 건네주고 그녀 회사 근처를 같이 걸으며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물었다. 그 만남도 한달여만의 만남이었다. 일도 바쁘고 회사 사람들에게도 쌓인게 많은지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루, 일주일, 그리고 한달. 그녀의 연락 텀은 점차 길어져갔다. 그리고 그녀와의 연락은 완전히 끊겼다.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냥 내가 마음에 안들었던걸까 아니면 정말 누구와 연락하는게 버거울만큼 여유가 없는걸까. 전자라면 왜 지난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은 함께 시간을 보낸걸까? 왜 오늘도 나와 함께 산책에 나섰을까? 이유가 후자라고해도 정말 연락도 가끔 못남겨줄만큼 바쁜건가 의문이었다.
그녀와의 연락이 끊기고 내가 처음 한 행동은 헬스장을 등록한 것이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좋은 미용실에가서 머리를 했다. 미용실에 들렸다가 옷가게에 들려 옷을 여러벌 샀다. 나를 가꾸기 시작했다. 외모가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면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반응이 다를까? 하고 생각했다. 연락이 끊기게 된데는 내가 부족해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의 자존감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연스레 듣는 음악도 잔잔한 발라드였다. 저녁 밤거리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위주로 들었다. 나에 대한 자책은 날로 커져갔다. 아쉬움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이제 이 감정에 깊이 스며들어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음번에 그녀와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의 시선을 붙잡고 싶었다.
그녀가 그간 뱉은 말들을 떠올려보고 내게 한 카톡들을 다시 읽어보며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녀가 마음을 열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있을거야, 라며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 대학시절 주변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가 많아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한다고 했어. 이것 때문일거야. 아니면 바로 이전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는 바람에 이제 남자가 하는 말은 쉽게 믿지 못하겠다고했어. 설레는 마음보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관계에서 더 애정을 느낀다고 했었지, 그럼 그녀에겐 지금 시간이 필요한걸거야, 하고 말이다.
여러 이유들을 찾아가며 내 마음를 다독이고 연락이 끊긴 것에 합리화를 해주었다. 이뤄지지못한 인연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녀를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인것마냥 머릿속으로 그려가기 시작했다. 세상에 둘도 없을 그런 특별한 상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