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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가 Aug 16. 2023

사랑 이야기

2019년 11월의 밤, 상수동에 있는 한 이자카야에서 그녀와 첫 저녁자리를 가졌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해 가게 근처를 산책했다. 약속시간까지 5분 가량 남았을 무렵 가게 근처에 있던 따릉이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반납하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가 가게로 들어가자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그녀는 회사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화장과 옷에 신경 썼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 무렵까지만해도 나는 그녀의 외모가 평범한 수준이지, 예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내 쇄골 정도까지 오는 아담한 키에 주먹만한 작은 얼굴을 가졌다. 그녀의 이목구비 역시 크지 않았다. 하지만 본인의 이미지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진듯했다.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통해 본인의 매력을 잘 살리고 있었다. 머리는 어깨를 조금 넘기는 생머리였다. 그녀의 머리는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렸다. 그녀의 메이크업과 찰랑이는 머리를 통해 평소 자기 관리에 힘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읽을 수 있었던 그녀의 내면은 불안정이었다.


나는 긴장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들떠있었다. 회사에서는 별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따로 대화할 기회가 생겨 좋았다. 회사에서 보던 모습과는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반전 매력이 나를 긴장시켰다. 사람이 많은 동네인데다가 주말 저녁이 되니 가게는 이미 만석이었다. 예약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가게에 테이블은 여덟개 정도가 있었고 테이블은 모두 남녀끼리 온 손님들이었다. 다들 연인이거나 이제 곧 연인이 될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 그녀도 함께 식사를 하고있으니 괜히 연인같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설레임도 들었다. 


"좋아하는 음식있어요? 저는 뇨끼 좋아하거든요. 이거 시켜도 될까요?" 메뉴판을 보던 그녀가 먼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일하며 보던 모습과는 달리 오늘은 적극적이었다. 


아직 공통사가 많이 없어 일에 대한 질문을 먼저 물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시작으로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싶은지 물었다.


"제가 아는 주영씨는 되게 조용한 성격같았는데, 같은 회사 사람들이랑 있을 때도 그래요?" 내가 물었다.

"아닌데, 저 마냥 조용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저 별로 안좋아할걸요?" 

"왜요?"

"그냥 별로 직장에서 친한사람이 잘 없기도하고 일할 때는 되게 깐깐해요"

"지난번에 봤을 땐 사람들이 주영씨 되게 좋아하는거같던데?"

"아 그래요? 전 별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어떤게 친한건지도 잘 모르겠고"

"마음을 잘 못주나봐요"

"아니죠. 마음은 주되 신뢰하지를 않는거죠" 


다정한 그 목소리 뒤엔 경계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경계는 내가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그녀 스스로 풀어줄 수 있는 경계였다. 나와 그녀는 모두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주문한 술이 먼저 나오고 뒤이어 바로 음식이 나왔다. 나와 그녀는 조용히 식사를 즐겼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조용함이 어색해서 나오는 조용함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더군다나 가게가 꽤나 시끄러워져서 나도 대화를 하려면 목소리를 방금보다 더 크게 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이 가게에는 오래 못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나도 그녀도 말이 그리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요? 주영씨 내일 외근있잖아요. 더 늦으면 피곤하겠어요"

괜히 그녀가 지루함을 느끼고 먼저 가자고 하기전에 내가 선수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리님" 그녀가 나를 불렀다. 

"네"

"미안해요. 제가 너무 경계했나요? 그래도 걱정 말아요. 그래도 남다른 섬세함이 있으신건 잘 알았어요. 저도 친해져보도록 노력해볼게요" 


그녀에게 이러한 대답을 듣는 것으로 이 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한가지 안좋은 징크스가 있었다. 누군가와 사귀기 전 친구들에게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면 결국 그 인연은 이루어지지 않는 고약한 징크스였다. 주영이와 3번째 저녁식사를 가진 이후, 나는 이제 주영이와는 곧 사귀게 되겠구나 라는 확신을 가진채 친구들에게 주영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징크스 때문인지 결국 나와 주영이는 이후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이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던 그 순간을 아주 오래도록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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