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수박페페를 샀다. 동글동글한 잎에 수박 패턴이 귀여워 보여서, 키우기 조금 까다롭다는 말을 듣고도 주문을 했다.
인터넷 주문 후 며칠 뒤 도착한 수박페페는 더위를 먹었는지 축 쳐져있었다. 작은 새순은 까맣게 타서 오그라져 있었다.
그냥 물건이면 교환을 했을 텐데, 왠지 더운 날 우리 집까지 배달 오느라 지친 식물을 다시 박스에 넣어 보내기가 싫어서, 조금 시들하고 아파 보이는 수박페페를 키우기로 했다.
새순을 자주 내보이고, 잎들이 커져갔지만, 커진 잎들은 이내 가장자리를 누가 갉아먹은 듯 갈색으로 변해가고, 모양이 이상해지길 반복하였다.
적당할 때 물을 주고 정성껏 키워도, 잎들이 이상하게 변해가긴 마찬가지였다.
수박 페페(수박 페페로미아)는 뿌리 쪽은 과습에 취약하지만 공중 습도는 좋아하는 편이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하는 게 까다로워서 키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자주 들여다보고, 장소도 이곳저곳으로 옮겼지만 어째 신경 쓰고 정성을 쏟을수록 이파리가 점점 시들해지고 힘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애물단지처럼 1년을 키우다 아예 삭발을 해버리기로 했다.
그동안 쏟아부은 정성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이미 여러 개의 잎들이 다 온전치 못해서 과감히 가위로 모든 잎을 잘라내었다.
삭발식 후 덩그러니 붉은 갈색 줄기 한 가닥만 남은 수박 페페에게 화분도 커 보여서 작은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주고 물을 듬뿍 주었다.
일주일 정도 후, 신기하게도 새순이 여기저기서 돋아났다.
더 이상 오돌토돌한 병든 잎이 아닌 건강해 보이는 새순들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맞지 않는 크기의 화분에서 애를 쓰며 버텼을 수박페페에게 미안했다.
맞지 않는 화분, 맞지 않는 흙, 필요 이상의 애정과 관심, 미처 끊어 내지 못한 인간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
나와 맞지 않다면, 애를 쓰고 버티기보다 그냥 싹둑, 나에게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낫다.
쏟아부은 애정과 관심이 아까워서, 혹시나 다시 건강하게 돋아날 가능성 때문에 나를 괴롭히면서까지 붙들고 있던 관계들은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가야겠다.
새순이 돋은 연둣빛 페페가 천천히, 무럭무럭 자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