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라는 부표
(2021.02.02 수정)
우울의 시간을 되짚어 기록하는 과정이 그 심해를 찾아가는 일이라면, 나는 바다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가. 더군다나 몇 해를 헤엄쳐 나와 그곳에 다시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면, 우울을 기록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머리까지 잠길 필요 없이, 바다 위에 직접 띄워 둔 부표를 찾아간다. 그 시절 가슴에 새기고 산 문장이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내 우울의 바다 위에서 부표가 된다. 음악과 책, 그리고 영화 같은 예술작품과 콘텐츠들. 거기서 마음에 와닿은 장면이나 문장을 생명줄처럼 붙잡고 산 하루, 한 주, 여러 달. 회복과 좌초를 반복하는 동안 그 작품으로 버틴 시간의 묶음이 곧 그 부표가 가리키는 해역인 셈이다.
어떤 시기가 비어 있는 것만 같을 때, 나는 그 시기 되뇌던 누군가의 창작물을 떠올린다. 그러면 그물로 퍼올리듯 수면 밑의 기억과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 작품에 얽힌 감상을 떠올려서 당시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그 배경이 무엇인지 역순으로 연상하는 것이다. 감상에는 결국 내가 무언가로 인해 힘겨워 했던 상황이 맞닿아 있으므로. 요컨대 각별하게 공감했던 작품들이 내게 시간적인 책갈피가 되어 준 것이다.
우울증을 다룬 글을 읽자 비로소 ‘내가 겪고 있는 게 병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던 것들이 실은 증상이 정리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겪은 병증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이런 판단이 서더랬다. 병에는 치유(치료)와 회복이 있다. 이미 나은 사람들도 있다. 그럼 나도 나을 수 있겠다. 이건 병이니까. 내가 존재부터 잘못된 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여러 회복 사례가 실린 심리학 도서와 자전적인 경험이 담긴 글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꼭 우울증을 주제로 한 글이 아니더라도 내 마음을 건드리는 것들이 있었다.
아마 내 마음의 상태를 짐작하게 해 주어서 몇 개의 작품들이 가슴에 그토록 깊이 남았던 것 같다. 감정을 오랫동안 방치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무감각해져서 어느 순간부터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떤 노랫말이나 책 속의 문장, 이야기 속의 어떤 순간과 맞닥뜨릴 때 이따금 특정한 반응이 일었다. 눈물이 흐르거나, 명치께가 조이거나 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아니면 그 감응을 놓치기 싫어 뭐라도 적어놓고 싶어진다던가. 그런 순간을 통해 내 환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 반응하건 다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울리는 통증을 동반했다. 가벼운 통증은 아니었다. 꼭 마음에 소독약을 들이붓는 것 같았다. 다친 지 오래되어 무감각해진 부분에. 소독약의 따끔함으로 내 상처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건 마음의 신경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고통도 살아있어야 느낀다. 아픔은 상처의 위치만 알리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반응하는 부분에, 후일 부표의 추가 될 무언가가 내려져 고정되었다.
그랬다. 나는 나를 현실에 매어둘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울에서 빠져오려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건 물론이고 바른 방향을 향해 꾸준히 움직여야 했다. 그동안 맞닥뜨린 감정의 파도는 아주 매섭기 그지없었다. 파도에 온몸이 휩쓸리는 날이면 내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보다 없어야 할 이유가 더 커 보였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내 평생의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 내 결핍들이 나더러 저 새카만 아래를 보라고 벼랑 끝으로 떠밀어 주는 것 같았다. 내 본심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게 끔찍한 건데, 낫고자 하는 모든 노력들이 무의미해 보이고 괴로웠다. 불안과 고통은 나를 자꾸 과거로 보내거나 미래로 보냈다. 현재에 있을 수 없게 했다.
아픔은 그 순간 표출해도 아픔, 묻어둬도 아픔이다. 그런데 묻어둔 시간만큼 곪아서 나중에 감당해야 할 파고가 더 높아진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묻어두고 살지 말걸, 하고 후회도 했지만 그건 또 새로운 괴롭힘일 뿐이다. 중요한 건 파도에 완전히 떠밀려가지 않는 것이다. 다 포기하고 싶더라도 결국은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서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자신에게 어제보다 나은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 나는 고독감과 불안에 휩싸여 죽을 것 같을 때마다 마음에 와닿은 문장, 이야기들을 붙잡고 버텼다. 나 외에도 이 고통을 겪은 사람이 있었고, 그들은 살아남아서 내게 닿은 작품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 중에서 특히 구명정 밧줄 마냥 붙잡고 산 문장들이 있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을 책이나 노랫말에서 만나면,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속으로 되뇌었다. 어떤 날은 잠에 들고 깨는 게 힘들다는 가사에 답답하던 숨이 트였고, 어떤 날에는 작가 이자크 디네센의 문장에서 버틸 힘을 얻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처음에는 한나 아렌트가 한 말인 줄 알았다.) 이런 것들이 내가 극단적인 감정에 치우칠 때마다 그것에 덜 휩쓸리게 해 줬다.
어떤 작품들은 내가 진정 바라는 삶의 모습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일종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희구하는 바나 회복된 모습에 내가 겹쳐지면 내가 이런 걸 원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백지 상태의 미래에 소망을 걸어두게 했다. 가고 싶은 장소, 해 보고 싶은 일, 살면서 갖고 싶은 마음가짐 같은 것들을.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일종의 버킷 리스트였다. 백지에 가장 처음 쓰인 소망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내 삶과의 화해'를 원한다는 것. 자기 자신의 진심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멀리 있는 등대라면, 보다 가까이 있던 것들은 이미 도달하기도 했다. 등대 하나를 지나고 나면, 그것도 하나의 부표가 되어 주었다.
공감은 곧 위안이었다. 통찰과 승화의 기반이 되었을 누군가의 고통을 짐작할 때면 외로움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런 위안을, 당시에는 사람들에게서 바로 얻기가 힘들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내 상태를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마 별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모임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가장하느라 이미 기진맥진한 와중에 누군가 무신경한 말을 툭 내뱉으면 마음이 툭툭 깨졌다. 전 같으면 그저 넘길 수도 있는 말들이 하나하나 메아리로 남아서 사람을 할퀴었다. 회복은 또 얼마나 더딘지. 점점 사람을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누군가의 작품에 기댔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절하고 예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말'과 달리, 너무 힘들면 내가 덮거나 끌 수 있는 것들. 사람은 아니지만, 결국 사람이 들어 있는 것들.
작품을 통해 위로와 공감을 구하거나, 내 상태를 진단하거나, 혹은 마음이 흐릿해져서 보지 못하던 소망을 보거나….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내일까지 버틸 힘을 얻고는 했다. 돌이켜보니, 우울증 회복기에서 가장 고난스러웠던 시간을 버티게 해 주고, 나아갈 바를 알려줬던 것들이 돌아보니 내가 지나 온 길의 표지판이 되어 준 셈이다. 그렇게 내가 힘든 시기를 지나오도록 도와준 작품들과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우선은,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걸 깨닫게 해 준 한 곡의 노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