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너울 Jan 20. 2021

1. 나의 우울이 심해가 된 날

우울은 바다였다

(* 자살사고(suicidal ideation)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감상 시 유의해주세요. 지금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지만,  우울증 치유의 과정을 쓰는 데 있어 한번은 언급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여겼습니다. 제 글과 비슷하게 느끼거나 생각해 본 분이 계시다면, 상담치료나 정신과 치료 등 전문적인 도움 받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잘만 걷는데, 나 혼자 펄이나 늪에서 걷는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다리를 옮기는 게 힘겨웠다. 걷다가 머리부터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부터 스르르, 먼지나 연기처럼. 그렇지만 스스로 죽어버리면 안 된다고 의무감을 씌웠다. 내 삶이 소중해서가 아니라, 내 죽음이 주변에 민폐가 될까 봐. 그때의 나는 도대체 나를 무엇으로 여겼던 걸까.


 죽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이 무거워서 또 조금 죽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 사라지는 상상 속에서 내 다리는 계속 걷고 있었다. 아무 의미도, 즐거움도 없는데 일상의 껍데기 흉내를 내려고 억지로 움직이던 나 자신이 거기서도 보여서, 또 내가 우스웠다. 죽으면 죄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자꾸 했다. 자기를 부정하는 최악의 단계까지 가 버린 거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도저히 삶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옷을 갈아입는 것도, 걷는 것도, 먹고 자는 것도 너무 힘겨워서 더는 할 수 없다.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미래를 그릴 수 없다. 내가 우울증을 바다라고 느낀 것은 여기서 시작된 일이다.


 처음에는 요행 같은 죽음을 바랐다. 내 책임 없이 갑자기 사고로 죽는 것. 가령 간판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던가.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죽음은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내일이 오는 건 너무 무서워서, 언젠가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바로 ‘언제’ 였다. 내 감정을 계속 뒤로 밀어두다 병이 난 나는 그때를 정하는 기준도 외부에 두었다. 지인들, 친구들, 절친들, 가족. 내가 죽으면 ‘치명적으로 상처 입을 사람들’의 범위를 임의로 줄여나갔다. 이 사람은 그렇게 크게 상처받지 않겠지. 아니면, 적어도 이때 이후로 죽으면 그 사람한테 크게 못 할 짓은 아니겠지. 그렇게 나를 삶에 매어두던 고리를 하나씩 하나씩 끊어 나갔다. 돌이켜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남의 속을 내가 어떻게 안다고. 사실 그건 죄책감의 크기를 줄이는 시도였다.


  그러다 아직 끊어내지 않은 마지막 고리,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생각했다. 그 애는 나보다 많이 어려서, 나는 그 애 인생을 망치지 않을 수 있는 ‘죽을 시기’를 계속 재 보았다. 내가 이 나이쯤 죽으면 걔는 그 나이니까, 인생에서 내가 차지하는 지분도 줄어들 테니 그럼 덜 슬프지 않을까? 그런데 문득 진실이 보이는 거다.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날도 언제 죽을지 시기를 꼽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언제가 되어도, 동생이 몇 살이 되어도 아파할 거라고. 어떤 상처는 흉터로도 변하지 못한다고. 아, 죽을 수 없겠구나. 그럼 나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네. 어떡하지. 그때 어떤 심상이, 눈앞에 틀어진 영상처럼 지나갔다.


  그 심상은 다른 감각까지 동반했다. 순간 내 몸이 한가운데부터 푹 꺼졌다. 가운데가 뻥 뚫린 육체가 버스 좌석에 허물 같이 앉아 있었다. 거기서 빠져나온 더 작은 나를 보이지 않는 실이 끌어당겨서, 나는 뒤로, 뒤로,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았다. 내 알맹이는 바다 아래로 끌려간다. 어두운데 희뿌옇다. 그러나 파도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계속 가라앉는 듯하다가 여기가 심해인 걸 알아차리자 멎는다. 더 가라앉고 아니고가 무의미한 곳…. 내 우울이 이제 늪이 아니라 심해가 된 걸 목격했을 때, 나는 죽을 마음을 잃었지만 기쁘거나 희망이 차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유일한 선택지를 빼앗긴 기분이었다. 삶에서 도망칠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고.


어둡고 어두운 바다 아래 (사진 출처: pixabay)




  한동안 그 깊은 바다에서 살았다. 그곳은 감정의 파도가 철썩이지 않아 어떤 의미로는 편했다. 참 안정적인 우울감이라고 해야 할지. 어차피 감추고 싶은 고통이었고, 나는 나아지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는데, 그조차 아파서 생기는 사고방식이었다. 정신 차리고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었을 때도 꽤 오랫동안 그곳에 가라앉아 있었다. 


  심해를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된 건 눈물이었다. 정확히는, 내 아픔을 말하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내가 빠진 곳은 결국 내 마음이었으니까, 삼킨 것들을 덜어내며 내가 조금씩 가벼워졌나보다. 다시 떠오를 엄두가 날 만큼. 그러나 혼잣말만으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우울이었다. 혼자서 쓰고 말하는 것도 효과가 있었지만, 아주 낫기 위해서는 결국 사람이 필요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우울의 기록, 우울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