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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jee Jul 17. 2023

03 나중에 볼 영화 목록같은 것

밥 한번 먹자는 약속같은 것

독자님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또 일주일이 지났네요. 일할 때는 그렇게 시간이 더디게 가더니.. 할머니께서 자주 쓰시던 말처럼 얄궂습니다.


며칠 전에 드디어 영화 '너의 이름은'을 봤어요. 왜 '드디어'냐 하면 꽤 오랫동안 '나중에 볼 영화'목록에 자리 잡고 있던 영화였거든요. 개봉 당시부터 보고 싶어 적어놨던 게 2017년이니까 무려 5년이 훌쩍 지나서야 보게 된 셈입니다. 사실 그것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만약 이번이 아니었다면 10년, 20년이 지나서 보거나 아니면 평생 못 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목록이었다면 그전에는 봤으려나요)


메모장에 지나가는 생각부터 후회의 반성문, 자주 잊어버리는 비밀번호, 신기한 꿈까지 온갖 것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중에는 나중에 읽을 책, 나중에 볼 영화, 나중에 갈 여행지와 같은 리스트들도 많습니다. 언젠간 꼭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글로 남기면 마치 적기만 해도 벌써 이룬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요. 바로 그게 함정이었나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선택의 순간에는 적어놓은 목록들이 당기지 않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나중에 할 목록'은 다른 말로 '절대 지금은 하지 않을 목록'인 것 같아요. 확인하는 매 순간 또 다른 나중으로 밀려날 테니까요.


이제부터 보고 싶지 않은 영화는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목록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언젠가 만날 사람 목록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나중에 할 일에 적어놓아야겠습니다.


독자님도 저처럼 나중을 약속한 목록들이 있나요? 그중에 얼마나 지웠나요? 저와 달리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는 재미를 느끼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오늘도 별 거 없는 편지였습니다. 나중으로 미루고 싶은 수많은 일들 사이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구독자님의 행운을 빌어요. 



수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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