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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31. 2022

표절의 역사 (4)

글이 기억하는 글



   “진우야, 니는 기자와 작가의 차이를 아나?”


   운동장을 빙 둘러싼 나무에선 여름 매미들이 쉴 새 없이 울어댔고,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여전히 후텁했다. 바람과 타협할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칠월의 햇살은 마음껏 더위를 내리퍼부었다.

   팔뚝이 공책에 쩍쩍 달라붙었지만 그런 것 따위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목덜미의 땀은 흐르거나 말거나 내버려 둔 지 오래였다.

   체크무늬 반바지에 하와이안 셔츠를 대충 걸친 선생님은 슬리퍼 끄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며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맨발이 되었다. 이유 없이 산적이 아닌 것이다.


   방학한 지 벌써 일주일, 천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서 매일 한 시간씩 내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첫날, 난데없는 선생님의 등장에 적잖이 긴장을 했던 유철이와 반 친구들 몇몇도 이젠 마음 놓고 코를 골았다.


   “기자는 뉴스를 쓰는 사람이고, 작가는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입니다.”

   “당연하지. 하지만 그렇게 쉬운 걸 내가 물었겠나?”

   선생님은 교탁 앞으로 가서 칠판에다 커다랗게 한자漢字를 썼다. 힘을 많이 줬는지 글자의 끄트머리에서 분필이 뚝 부러졌다.

   “기자는 기록할 기記, 놈 자者를 쓰고, 작가는 지을 작作, 집 가家를 쓴다. 이것도 알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서둘러 큰 소리로 답했다.

   “네! 선생님. 알고 있습니다!”

   “기記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적는다는 의미이고, 작作은 전에 없던 것을 빚는다, 또는 새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자者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거나 일상적으로 부를 때 쓰는 말이고, 가家는 화가, 음악가처럼 특정한 일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를 말하는 거다.”

   “그럼 기자라는 말은…?”

   “맞다. 어떻게 보면 직업적으로 뉴스를 쓰는 사람은 기자가 아니라 기가記家가 되어야 하지. 반면에, 글을 쓴다고 해서 아무나 함부로 작가라고 불러선 안 되는 거다. 기껏해야 작자作者 정도? 물론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만.”

   “네.”

   “여기서 우리는 기와 작에 주목을 해 보자. 글을 제대로 쓰려면 기와 작이 가장 중요한데, 다시 말하자면 기記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일반적인 서사를, 작作은 글쓴이의 창의성이 드러나는 문학적인 묘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서사와 묘사를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유기적으로 결합하는가가 글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것이라는 그런 말이다. 알겠제?”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진우 니가 이때까지 잘 쓴다고 착각했던 글은, 작이 아니라 기에 불과했던 것이지. 너만의 창작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으니 냉정하게 말해서 글이 아니라, 뭐다?”

   “공장에서 만든 조립품입니다.”

   “그렇지. 이제 잘 아네?”

   선생님이 껄껄껄 웃었다. 머쓱해진 나는 공연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미 삼십오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제처럼 생생하다.




   선생님의 훈련 과제는 매일 바뀌었으나 목표는 한가지였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나만의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와 작을 잘 다뤄야한다고 했다.


   "기記가 많으면 글이 밋밋하고, 작作이 넘치면 글이 어지럽다."


   처음 며칠 동안은 아무런 조건없이 자유롭게 글을 썼다. 주제는 내가 고르되, 대신 어떠한 경우라도 한 페이지가 넘어선 절대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글의 뼈대가 튼튼하면, 길이는 나중에 얼마든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특별한 내용 없이 길기만 하면 그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글 쓰레기라고 했다.


   내가 글을 쓰면 선생님은 다음날 내가 보는 앞에서 첨삭을 했다. 역시나 빨간 줄이 죽죽 그어졌다. 기성 작가들의 이름도 그 옆에 적혔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으면, 선생님은 책상에 있던 산더미에서 뽑아온 책을 내밀었다. 접혀있는 페이지를 펼치면 거기에는 희한하게도 내가 창작했다고 믿었던 문장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또는 이종교배된 모양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대체 그 문장들이 누구의 어떤 작품에 등장하는지 선생님은 어떻게 다 아는 걸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떤 날은 모든 문장에서 주어를 빼고 글을 쓰라고 했고, 다른 날은 부사어가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라는 말씀도 했다. 무조건 단문으로만 기승전결을 맞추기도 했고, 복문이나 중문으로만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도 있었다. 삼행시, 사행시는 기본이고 한글은 물론, 에이비씨의 발음을 운韻으로 해서 행시行詩를 적어오라는 숙제도 받았다. 당연히 첫 행 에이는, ‘에이, 뭐 이런 숙제가 다 있어?’였다. 마찬가지로 빨간 줄의 대축제였다.


   천편일률적인, 이른바 나만의 글쓰기 공식을 과감히 버리는 연습도 반복되었다. 한 편의 글을 다양한 구성으로 바꾸라는 숙제를 며칠 동안 되풀이해야 했다. 그리고 달라진 구성마다 효과적인 표현을 덧대는 법도 배웠다.  


   선생님이 내게 글을 가르치는 모습은 마치 홍콩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코가 빨간 소화자小火者 사부가 철부지 성룡에게 별의별 무술 훈련을 시키는 것처럼, 과연 체계가 있는 것인지, 이렇게 하면 과연 글이 더 좋아질 수 있는지 의심충만, 불신가득한 숙제가 이어졌다. 과제의 결과가 시원찮다 싶을 때는 불호령을 내리기도 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못 알아들을 때에는 뒤통수를 얻어맞기도 했다. 하지만 습작 노트가 두꺼워질수록 선생님의 꾸중은 점점 줄어들었다.


   옆에 놓인 성문 기본 영어와 수학의 정석에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해 여름, 나는 쓰고, 읽고, 또 쓰고, 또 읽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재미있게 글쓰기 공부를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방학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시락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은 혹시나 내가 나쁜 곳으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누나를 통해 몇 번씩이나 확인을 하곤 했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었다.

   모처럼 비가 오던, 아마도 광복절이었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날 무렵에 손을 번쩍 들었다.

   “니 밖에 없는데 손은 뭐할라꼬 드노? 뭐가 궁금한데?”

   “그때 말씀하시길, 제가 글을 쓰다가 자신도 모르게 기존 작가의 문장을 가져온다, 베낀다 하셨잖습니까? 그것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습니까?”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선생님은 말꼬리에 이어 답을 했다.

   “그건 두가지 방법이 있다. 첫번째는, 책들을 다시 읽어서 그 문장들이 네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이고..."

   "네, 다음은요?"

   "글이 기억하는 글을 쓰면 된다. 손이나 머리가 아닌, 글이 글을 불러와 쓰이도록 하면, 그때는 누가 보아도 니 스스로 만든 문장이 될 거다.”

   글이 기억하는 글을 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난처해하는 내 눈빛을 선생님도 읽은 것 같았다.

   “일단 공책에 써놔라.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 의미를 알게 될 날이 올 거다. 그때까지는 꾸준히 쓰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일기를 쓰건, 연애편지를 쓰건, 낙서를 하건, 무엇이든 문장으로 남기는 습관을 들여라.”

   “……”

   “또, 다른 건, 궁금한 것 또 없나?”

   물론 마음속에는 더 중요하다 싶은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물어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수업을 마치는 날이 왔다. 개학 하루 전이었다. 되짚어보니 선생님의 개인 일정이 있던 날과 주말을 제외하면 방학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 공부를 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를 학교 아래 시장통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졸지에 덕을 본 것은 유철이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다른 친구 하나였다.

   짜장면과 우동, 탕수육과 함께 맥주도 두 병 따라 나왔다.

   “받아라.”

   엉겁결에 선생님이 부어주는 술을 받았다.

   “맥주는 묵을 줄 알제?”

   “네!”

   유철이가 먼저 대답을 했다. 선생님이 싱긋 웃었다. 엉터리 글을 쓴다고 막무가내로 혼을 내던 그때의 선생님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고맙다는 생각만 마음속에 가득했다.


   그릇에 코를 박고 있는데 선생님이 또 담배를 꺼내 물었다. 유철이가 재빨리 성냥을 그어 불을 붙였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의 역사인기라. 그래서 한 줄을 쓰더라도 진심을 담아서 써야 된다. 상? 그까짓 것 안 받으면 어떻노? 대회? 안 나가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 눈에 잘 보이려고, 마음에 들려고 쓰는 글은, 처음부터 거짓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진실되게, 참되게, 시간이 지나서 자기가 다시 읽어보더라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게 말이다. 언제나 참된 글을 써야 된다. 알겠제, 진우? 유철이 니도?”

   양볼에 짜장이 가득 들어있는 채로 우리는 할 수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나 ‘참된 글’이란 말이 휙 날아와 가슴에 푹 박혔다.


   “진우야.”

   “예, 선생님.”

   “그라고, 행여나 글 써서 묵고 살 생각은 첨부터 하지 마라. 니가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해도 지금처럼 그냥 취미로만 생각해라. 생업生業이 되면 글쓰기가 얼마나 싫어지는지 아나? 지금이 딱 좋은 기라.”


   담배 연기가 긴 꼬리를 흔들며 창을 타고 넘어갔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말을 끝낸 선생님의 아련한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구월이 지나고 제대로 가을이 되자 문예 대회와 백일장이 앞다투어 열리기 시작했다.

   일 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비롯한 몇몇 문예부원들은 천 선생님이 지정해준 대회에 열심히 참가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무슨 대회든 참가만 하면 우수상 정도는 늘 기본으로 받았던 내가, 좀처럼 상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이어졌다. 심지어, 연습했던 것과 똑같은 글감이 주어진 대회에서도 철저한 사전 준비 따위는 아랑곳없이 입선조차 못하는 ‘변고’까지 생겼다.


   그것은 교내 문예부 안에서 이슈가 되었다. 선배들은 앞다투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상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내 마음은 편했다. 아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유철이는 그 이유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진우야, 니 와 그라노? 여름 방학 때 산적한테 특별 과외까지 받았다 아이가?”

   “괜찮다. 그까짓 상, 못 받으면 어떻노? 그냥 내 마음에 들도록 편하게 썼다. 그래서 기분은 좋다.”

   “음… 산적이 가만 안 있을 텐데…”


   예상대로 천 선생님이 불렀다. 이번에도 의자를 권했다.

   “니가 요새 전혀 상을 못 받네? 와 그렇노?”

   선생님의 손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대회에서 제출한 원고가 들려 있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다른 애들이 더 잘 쓴 모양입니다.”

   “말은 맞다. 그러니까 니가 상을 못 받는 거지. 그거 말고, 니가 스스로 생각하는 진짜 이유 말이다. 뭐 땜에 상을 못 받는다 생각하노?”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문득, 여전히 마음속에 담고 있던 두 번째 질문이 떠올랐다.

   “선생님, 그것보다 저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

   “일 학기 때는 불러서 혼을 내시다가 여름 방학에는 글을 가르쳐 주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게 왜 하필 저였습니까?”

   “머, 머라꼬?”

   선생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화가 난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과 함께 선생님이 말했다.

   “허허, 이놈 보게. 내가 그걸 머할라꼬 니한테 말해주겠노?”

   “알려 주십시오.”

   “알려 주면?”

   “말씀해 주시면, 다음에는 상 받아오겠습니다.”

   “머어? 이 놈이 상도 못 받아오는 주제에 도리어 공격을 할라카네. 니는 일단 엎드리라.”

   선생님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띈 채, 무언가를 서둘러 찾는 시늉을 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이후로도 크고 작은 글짓기 대회에 계속해서 참석했다. 상을 받을 때도 있었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한결같았던 것은, 대회가 끝날 때마다 선생님은 빠짐없이 내가 쓴 원고를 다시금 봐주셨다는 점이다. 칭찬보다는 대체로 꾸중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그날처럼 매를 들지는 않았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싶을 때마다, 하고많은 학생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나를 콕 찍어서 글을 가르쳐 주셨냐고 수시로 물었지만 역시나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난 뒤, 부산 검찰청이 주최하는 제5회 월천 문예 대회가 부경 대학교에서 열렸다. 일등 상금만 백만 원, 총상금은 천만 원이 넘는 큰 대회였다. 나는 천오백 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서 일등상 장원을 차지했다.

   시상식은 검찰청에서 진행되었다. 수상 소감을 말할 차례가 되었다. 미리 준비했던 말로 소감의 끝을 맺고 싶었다. 부모님과 여자 친구가 맨 앞자리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끝으로, 남의 글을 함부로 베껴 쓰던 철부지에게 제대로 된 글쓰기를 가르쳐 주신 천 정국 선생님, 영원한 산적 천 정국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이 기억하는 글을 쓰기 위해 앞으로 더욱더 노력......”


   마무리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울컥했다. 억지로 참았지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어디선가 껄껄껄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부끄러운 표절의 역사가 드디어 끝났음을 그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표절의 역사.   끝.



* Image by Dean Moriarty from Pixabay 


* 천 정국 선생님은 그 후 부산대학교 학생처장, 부산 동래고등학교 교장, 부산시교육청 교육국장, 부산시 교육연수원장, 부산시 영재교육원장을 역임하셨고, 깨어있는 민주 교육을 위해 지금도 산적 본연의 자세로 거친 들판을 훠이훠이 누비고 계십니다.


부산 동래고등학교 교장 시절의 천 정국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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