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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29. 2022

표절의 역사 (3)

마음이 기억하는 글



   그날 저녁, 마침 누나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학교에서 방금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여섯 살 터울의 누나는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다. 그렇잖아도 억울하던 참에 드디어 응원군을 만났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요 며칠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구구절절 일러바쳤다. 누나는 당연히 내 편이라는 전제가 깔린 하소연이었다. 선생님에게 맞았다는, 선생님이 때렸다는 것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누나 역시 교사 임용을 앞둔 부산교육대학 졸업반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냥 내가 싫은 거다, 기를 꺾기 위한 거다, 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억지 트집을 잡는 거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심히 선생님을 비난했다. 그러나 사건의 대략을 들은 누나의 반응이란, 예상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것이었다.

   “음, 진우야. 나는 선생님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현관에 선 채, 삼십 분이 넘도록 누나는 조목조목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사람의 황당한 배신이었다. 에이씨, 내가 속상한 건 그것 때문이 아닌데, 결국은 또 화가 났다.


   “쳇, 누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쾅 소리 나게 문을 닫아 버렸다.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렇게나 가방을 내팽개치고는 책상에 엎드려 머리를 파묻었다. 공연히 짜증이 밀려왔다. 뒷산 어디쯤에선가 산적이 포효咆哮하고 있었다.

   “우워워, 거봐라, 내 말이 맞지, 이 눔아아아아아!!”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 형편 때문에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사 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철이 일찍 들었던지 나는 그것을 두고 딱히 불평하지는 않았다. 돈을 주고 굳이 사지 않아도 누나의 책꽂이에는 공짜로 읽을거리가 얼마든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중학생 누나가 보는 책은, '달, 달, 무슨 달, 남산 위에 떴지' 하는 내 국어책과는 처음부터 그 차원이 달랐다. 이게 정말 학교에서 배우는 책이라고? 중학교에 가면 이렇게 재미있는 걸 교실에서 읽는단 말이야? 소녀는 왜 산 채로 묻어달라고 했을까? 강시로 부활하고 싶었던 걸까?

   재미있기로는 교과서가 으뜸이 아니었다. 참고서가 그 옆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온갖 재미난 이야기가 앞장과 뒷장에서 나를 향해 손짓했다. 진우야, 우리도 좀 읽어줘.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란다.

   어디 그뿐이랴? 누나의 서랍 속엔 또 다른 보따리가 숨어 있었다. 잘 생긴 가정교사가 천사 같은 주인집 딸을 남몰래 사랑하는 말랑 달콤한 로맨스로부터, 구박을 받던 거지 소녀가 알고 보니 백만장자의 딸이라는, 그래서 지금은 비록 가난한 집에 맡겨져 있지만 언젠가는 나도 부자 부모님이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멋진 이야기까지, 별천지가 펼쳐졌다.


   누나가 수학여행이라도 가게 되면 그야말로 행복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혹시라도 들킬까 싶어 마음 졸였는데 그 시간만큼은 누나의 책이 모두 내 것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누나의 모든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날, 누나는 사 학년이 된 나를 시립도서관으로 데려갔다. 이용법을 알려 주면서 여기서는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읽어도 좋다고 했다. 돈을 낼 필요도 전혀 없는 그곳은 내게 있어 또 다른 천국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도서관에 터를 잡았다. 명수가 오락실에 가자고 졸라대도, 현광이가 축구를 하자며 꼬드겨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열한 살 아이의 머리는 한참 싱싱했다. 무엇이든 금방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같았다. 좋은 구절은 눈에 새겨졌고, 멋진 문장은 머릿속에 담겼다. 또한 그것들은 필요하면 언제든 마음대로 꺼낼 수 있어서, 도서관에 다녀온 날의 일기장에는 그날 낮에 읽었던 주옥같은 구절이 고스란히 옮겨졌다.




   누나는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라고 했다. 책을 읽고 읽고 또 읽는 과정에서, 나의 눈과 입과 머리가 책에 등장했던 좋은 문장들을 본능적으로 기억해버렸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기억 아닌 기억이 된 그것들은 머릿속 어딘가에 살짝 숨어있다가 내가 글을 쓰기라도 하면, 저절로 튀어나와 마치 내가 창작했다는 착각과 함께 종이에 옮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언쟁이 끝나갈 무렵에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야, 그라믄 우짜믄 좋겠노? 이게 책에 있던 문장인지, 내가 지어낸 문장인지 잘 모를 때는?”

   누나는 무심한 듯 말했다.

   “별 수 있겠니? 글을 안 쓰거나, 쓰고 나서 야단 맞거나.”

   “야단?”

   “응, 네 사정과는 상관없이 어쨌거나 그건 기존의 문장을 베낀 거니까.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행동이지. 다른 말로 하자면, 범죄?”

   누나의 생각은 선생님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화가 났던 것이다.


   어느덧 토요일이 되었다.

   동래 고등학교 강당에는 책상과 의자가 보기 좋게 줄을 지었다. 대회 때마다 마주치던 학생들은 서로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속마음은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깟 글짓기, 쫌 못하면 어떻노?”

   유철이가 긴장을 풀어주려고 매일 저녁마다 매점을 오가며 애썼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답답했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문장이 아닌 것을 미리 알아낼 수 있을까? 옆에 착 달라붙어서 내가 글을 쓸 때마다, ‘삐익, 그건 기존에 있는 문장입니다. 이범선 작가의 학마을 사람들, 스물일곱 번째 문장과 똑같습니다. 진우님, 정신 차리십시오!’라고 해 줄 로봇이라도 있어 주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동일한 구성이라는 고질적인 질병은 나중에 고민할 문제였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의 글을 가져와 죄를 짓는 것만큼은, 이번에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글제가 발표되었다.

   ‘유월’.

   너무도 쉬운 주제였다. 머릿속에는 첫 문장부터 끝 마무리까지의 글 한편이 좌라락 쓰였다. 그러나 나는 쉽사리 첫 줄을 시작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많은 문장들이 저마다 자기를 앞세워 달라고 졸라댔지만, 어쩌면 그것들 모두는 누군가가 이미 써서 발표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작문을 끝낸 학생들이 하나둘 일어나 단상을 거쳐 강당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뒷덜미에는 진땀이 흘렀다.

   마침내 마감 십분 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원고지는 여전히 첫 장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 선생님이 옆으로 지나갔다. 혀를 차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그날 나는 끝내 원고를 제출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글을 써서 명불허전임을 선생님께 자랑해야 하는데, 제출은커녕 아예 쓰지도 못했으니 이런 낭패가 따로 없었다. 글을 쓴 뒤로, 상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경험하는 낯선 일이었다.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왔다. 대문을 열어주며 엄마가 고생했다고 등을 두드렸다. 누나의 방엔 불이 꺼져 있었다. 역시나 오늘도 잠을 이루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천 선생님이 또 나를 불렀다. 어땠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하지? 원고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말을 해야 할까? 야단치면 그땐 또 뭐라고 하나? 교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선생님은 그러나 별 말이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유월이라 글짓기 대회가 많다. 다음 주 토요일엔 경남 고등학교다. 시간 맞춰 참가해라.”

   그것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던 이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대회 당일이 되었다. 그날의 글제는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마감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고는 당연히 한 장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 그저 불편하고 어색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헛구역질만 나왔다. 결국 감독관에게 몸이 안 좋다는 말을 전한 다음, 도망치듯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뒤로 이틀을 꼬박 앓아누워야 했다. 엄마를 대신해서 누나가 옆에 앉아 나를 간호했다. 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했더라도 내가 대꾸할 거리가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도 몸살 기운은 남아 있었다. 천 선생님은 뜻밖에 의자를 권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의자 끝에 엉덩이를 겨우 걸쳤다.

   “니, 와 그랬노?”

   “……”

   “동래고, 경남고. 두 대회 모두, 니는 원고를 제출 안했다카든데, 맞나?”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해봐라. 와 그랬노?”

   "......"

   "주최 선생님들이, 원고를 아예 안 낼 거면 다음부터는 참가도 하지 말라고 난리던데?"

   "......"


   시선은 피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부지런히 답을 찾고 있었다. 계속해서 묵언수행을 고집했다간 당장이라도 산적의 기습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애먼 뺨을 만지면서 겨우 말을 꺼냈다.

   “그냥... 또다시 남의 글을 베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그라던데? 니가 남의 글을 베꼈다고.”

   엥? 이 양반 보소? 선생님이 그때 그랬잖아요. 내 뺨과 허벅지를 어루만져 주시면서. 하지만 절대로 입 밖으로 내선 안될 말이었다.

   잠시의 사이를 두고 결국 자백하듯 말해버렸다.

   “제가, 제 양심이 그랬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면 안 된다고, 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유철이가 들었다면 멋진 말이라며 당장에 박수를 칠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손이 슬쩍 움직이는 것 같았다. 순간, 몸이 움찔했다. 이부터 꽉 깨물었다. 틱틱. 고맙게도 라이터 돌이 소리를 냈다. 선생님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진우야.”

   “네, 선생님.”

   “니가 잘못한 거는 아닌데, 그건 잘못된 것이 맞다. 내 말, 알아듣겠나, 무슨 말인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잘못된 것은 맞다?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순간,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네, 선생님. 잘은 몰라도,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습니다.”

   “짜식. 니가 알긴 뭘 아노?”

   산적, 아니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선생님의 웃음을 보는 건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았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은 선생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눈이 매웠지만 일부러 부릅 떴다.

   “니, 글공부 제대로 함 해볼래?”

   “……”

   “글쓰기 말이다. 제대로 된 글쓰기. 내가 도와줄 테니…”

   답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대뜸 큰소리로 말했다.

   “서, 선생님. 제발,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간절했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의자가 또 저혼자 벽에 가서 머리를 았다. 쿵.

   “짜식, 오버하지 마라. 남부끄럽구로.”

   역시나 건너편의 선생님이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여름 방학이제? 니, 학교에 맨날 나올 수 있겠나?”

   당연한 조건이었다.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목청껏 대답했다.

   “네, 선생님, 무조건 나오겠습니다.”




   “진우야, 뭐가 그리 좋아서 아까부터 계속 히죽거리노? 산적한테 하도 많이 맞아서 여기가 이상하게 됐나?”

   유철이가 머리 주위로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드디어, 드디어 제대로 된 글쓰기를 배운다. 오직 그것이 중요했다. 어느 해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계속)



*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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