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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28. 2022

표절의 역사 (2)

눈이 기억하는 글



   선생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난데없이 엉터리라는 말을 들은 것에 대한 무언無言의 반항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 원고를 내 앞에서 저렇게 인정사정없이 찢어버리다니. 하지만 선생님은 건방진 내 눈빛 따위는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니한테 글을 써오라고 시킨 이유를 알겠나?”

   “……”

   나를 한 번 올려다본 선생님은 곧장 책꽂이에서 무언가를 뽑아 들었다. 그것은 문예부원들이 쓴 글을 모아둔 문집철文集綴이었다. 손때가 묻은 자국을 따라 시커먼 표지 여기저기가 번들거렸다.

   “선생님들마다 니가 글을 잘 쓴다길래 내가 한번 찾아봤다.”

   “……”

   선생님은 표지부터 두어 장 넘기다 말고 책상에 툭 내려놓았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게 말이다. 니가 쓴 글에는 예외 없이, 똑같이 적용되는 구성 방식이 하나 있더만. 소재가 무엇이든 주제가 어떻든 똑같이 적용되는, 말하자면 글쓰기 공식. 니는 그걸 아나?”

   당연히 알지요. 내가 만든 공식이니까요. 누구나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이 있잖아요? 문제를 풀거나, 요리를 하거나. 그것 역시 저만의 규칙일 뿐이에요. 도대체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죠?라고 단박에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담뱃재를 턴 선생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니는 억울하겠지. 그게 니 고유의 글 쓰는 방식이라고 항변하고 싶겠지.”

   순간,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뜨끔했다.

   “우연히 글짓기 대회에 나갔는데 떡하니 상을 받게 된 거지. 근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거야. 니가 왜 상을 받은 건지. 그냥 글을 잘 써서 받았다 싶었겠지. 그때 니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 아하, 이렇게 쓰면 상을 받는구나. 어떤 소재든 이 방식을 적용하면 상을 받는구나.”

   “……”

   “그 방식이란, 말하자면 심사 위원들이 딱 좋아하는 방식이지. 그런 식으로 글을 써서 한번두번 상을 받다 보니 그게 니가 말하는, 니 공식이 되어버린 거지. 상 받는 공식. 안 그렇나, 내 말이 틀맀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다. 백 번 양보해서 그것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채점 기준에 맞춰 글을 썼다는 것쯤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치자. 그럼, 진우 니,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


   선생님은 허리를 숙여 서랍을 열었다. 또다시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것을 내게 불쑥 내밀었다. 원고지였다.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

   “이거, 뭔지 알겠제?”

   “네...”

   “오늘 아침에 교장 선생님이 극찬했던, 최우수상 받은 바로 그 원고다. 보름 전에 동성 고등학교 가서 쓴 것, 맞제?”

   이걸 어떻게 천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니도 눈이 있으면 똑똑히 함 봐라.”


   조심스럽게 원고를 받아 들었다. 틀림없이 내가 쓴 원고였다. 그러나 첫 장, 첫 줄부터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깨끗한 페이지는 하나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줄 아래마다 빠짐없이 적혀 있는, 작은 글씨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문열, 박완서, 이청준, 피천득, 현진건, 김승옥… 작가들의 이름에는 느낌표와 동그라미가 제멋대로 휘갈겨져 있었다.

   “혹시나 싶어서 내가 함 찾아봤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첫 줄은 박완서, 둘째 단락은 이문열…”

   얼굴이 슬슬 달아올랐다.

   “정해진 틀에다 이름만 적당히 바꿔 넣고, 틀을 꾸미는 문장들은 기존 작가들의 것을 하나씩 가져왔다? 그걸로 상을 받았다? 진우야, 니 그거 잘못인 줄은 아나? 남의 것을 허락도 없이 가져오는 것이 범죄인 줄은 아나?”


   범죄? 그럴 리 없다. 내가 기존 작가들의 문장을 베끼다니, 감히 ‘일국’의 고등학생에 불과한 내가 저명한 소설가들의 글을 멋대로 가져와 내 것인 양 했다니, 절대로,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이건 선생님의 억지다. 그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런 핑계로 나를 혼내려는 것이다. 내 기를 꺾기 위해 저러시는 거다.


   “오늘 니가 써놓은 글은 다를 줄 알았더나? 한국 전쟁을 주제로 쓰라고 했더니, 뭐어? 니, 첫 줄 기억나나? 니가 쓴 글, 첫 문장 말이다.”

   바닥에 흩뿌려진 원고 조각들을 발로 짓이기며 선생님이 다그쳤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높아졌다.

   “제목. 잊혀진 날들. 임진우 씀. 첫 문장. 영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 통지서가 왔고, 아무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영수는 살아서 온다는 것이다... 하아, 진우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글 아이가?”

   “아닙니다. 제가 쓴 것입니다.”

   나는 단호했지만 선생님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누가 뭐래도 저건 분명히 내가 쓴, 내가 만든 문장이다. 자연스러운 첫 줄을 써놓고선 혼자서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글의 생명은 첫 문장에 있다. 선생님이 뭐라고 하든 나는 당당하다. 나는 그 누구의 글도 베끼지 않았다. 진짜다.


   선생님은 갑자기 책 한 권을 뽑아 뒤적이기 시작했다. 가운데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책갈피처럼 만들더니 그걸 내게 던지듯 건넸다.

   “첫 문장, 읽어봐라. 소리 내서, 크게.”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난이대, 하근찬. 이게 뭐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서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책 읽는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눈 아래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어떻노? 이래도 할 말 있나?”

   “……”

   “한국 전쟁으로 글을 써오라고 했더니, 뭐어? 동네에 혼자 사는 괴팍한 할배가 사람들의 원망을 듣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도둑놈을 잡는데, 알고 보니 이 할배가 육이오 참전 용사. 모두들, 이런 할배를 살피고 존경하자. 한국 전쟁 글쓰기 끝. 정말 뻔하디 뻔한 줄거리에다 이 작가, 저 작가의 문장을 잘도 가져왔더구만. 재주는 좋더라. 그래, 편집 기술은 인정해주지.”

   비아냥이었고 놀림이 섞였다. 아니다. 수난이대도 낯선 작품이고 하근찬은 더더욱 처음 보는 작가다. 읽어본 적도 없는 글을 대체 어떻게 베낀단 말인가? 이건 억지다. 선생님의 억지다.

   “선생님,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적이 없습니다.”

   “시끄럽다. 그런 문장이 어디 한 두 갠 줄 아나?”

   “……”

   “니는 니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제? 천만에. 착각하지 마라.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글을 쓴단 말이고?”


   억울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쓴 문장이 기성 작가의 것과 똑같은데 왜 그렇지? 그 정도만 확인한 다음, 정말 문제가 된다면 꾸짖어 돌려보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족하다 싶으면 몇 대 때리든가. 심지어 담임도 아니면서 말이다. 김형민 선생님이었다면 하다못해 짜장면이라도 사주며 칭찬하셨을 것이다.

   열일곱 철부지의 억울함은 끝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래도 상은 받았다 아입니까?”

   “뭐라꼬?”

   선생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밀려난 의자가 뒷벽에 쿵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또다시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때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러나…

   “선생님 말씀대로 제가 작가들의 글을 베꼈다면, 그래서 진짜 엉터리 글이라면, 오히려 심사한 선생님들 잘못 아닙니까? 그걸 미리 걸러내야지, 그런 글에다 최우수상을 줬으니, 그건 분명히 선생님들 잘못 아닙…”

   철썩.

   눈앞이 번쩍 했고 몸은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옆으로 넘어질 뻔했다. 내 뺨에 무엇이 다녀갔는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엎드려.

   허벅지에 세 대를 맞은 다음, 교무실 한쪽 구석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꿇어앉아 있었다. 담임 선생님 역시 나를 흘깃 보고 지나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상황이 창피하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저 한 가지, 딱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내가 어떻게 그 문장들을 쓰게, 아니 베끼게 된 것일까? 수난이대를 포함해서 선생님이 책을 찾아가며 보여준 그 작가들의 글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읽어본 기억이 없는데 말이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유철이는 라면이 불어 터질까 봐 자기가 다 먹어버렸다며 미안한 척을 했다. 그리고는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가 놀란 듯이 말했다.

   “진우야, 근데 니 뺨이 와 이렇노? 산적이 때리더나? 니 얼굴에다 장풍을 쐈나, 손바닥 크기가...”

   유철이가 달라붙어 귀찮게 굴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전히 해답을 알 수 없는 질문만이 머릿속에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새도록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다음날이었다. 일교시가 시작되기 전에 교무실에서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또 천 선생님이었다.

   쭈뼛거리면서 자리로 다가갔다. 어제와 달리 자리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선생님, 부르셨습니까?”

   선생님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않고 툭 던지듯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에, 동래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대회한단다. 신청서 냈으니 시간 맞춰 가라.”

   이건 뭐, 병 주고 또 병 주는 것도 아니고, 엊저녁에는 그렇게 야단을 쳤으면서. 아직도 뺨이 얼얼한데, 너무 하신 것 아냐?

   “대… 회라구요?”

   “그래, 임마.”

   달리 더 물어볼 것이 없었다. 보지 않더라도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선생님의 한마디가 등에 팍 꽂혔다.

   “이번에는, 제대로 써봐. 알겠어?”

   

   제대로? 좋다.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내 글쓰기 실력을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말 테다. 교무실을 나서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교실을 향해 르게 걸어갔다.


(계속)



* Image by Yerson Retamal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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