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불라불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Oct 27. 2022

표절의 역사 (1)

손이 기억하는 글


   “엎드려!”

   짧은 한마디였다. 나는 책상 끝을 양손으로 짚고 엉덩이를 뒤로 쭉 뺐다.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진우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나?”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젓지도 않았다. 반항은 결코 아니었으나 억울함이 전혀 없었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일 것이다. 잠시의 틈이 주어지나 싶더니 휘익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퍽. 

   허벅지를 타고 찌릿한 통증이 전해졌다. 

   "정말로 모르겠나?"

   "......"

   퍽, 퍽. 

   정확히 세 대. 거기서 일단 매는 멈추었다. 선생님의 다그침이 이어졌다. 여전히 성이 난 채였다.

   “니, 정말로 이걸 니 글이라고 할 수 있겠나? 진심이가?”

   여전히 답을 할 생각이 없었다. 교무실 유리창 너머를 흘깃 보았다. 수업을 마치고 삼삼오오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의 모습이 저 멀리서부터 흐릿해지고 있었다. 




   전교생이 모인 아침 조례 시간에 상賞을 받았다. 얼마 전 고교생 글짓기 대회가 열렸었는데 최종 심사 발표에 이어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학교로 상이 도착한 것이었고, 결과는 최우수상이었다. 

   단상壇上에 올라가 상을 받고 자리로 돌아올 즈음, 문예 대회 일등상은 개교 이래 처음 맞는 경사라며 교장 선생님이 뜻밖의 칭찬을 보탰다. 그러자 친구들의 놀림 섞인 감탄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옆에 선 유철이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지난주에도 일등, 그 전에는 장원. 니, 진짜로 대단하데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유철이를 보며 피식 웃어 주었다. 그리고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겨우 지역 대회쯤이야, 그 정도는 우습지 뭐.’


   열일곱 살의 나는 그렇게 기고만장했다. 전국 단위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산 경남 지역에서는 내가 글을 제일 잘 쓴다고 자부했다. 대회에 나가 상을 받는 횟수와 상장에 찍힌 순위가 그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것이 곧, 자타가 공인하는 나의 글 실력이라고 믿었다. 


   국민학교 삼 학년 때였다. 어느 국어 시간. 몸을 배배 꼬아가며 원고지 일곱 장을 겨우 채웠을 뿐인데 뜻밖에도 우수상을 덜컥 받게 되었다. 제일 큰 의미가 있다는 개근상은 그 전에도 두 번 받았지만 글짓기 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보다도 부모님이 더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 말로는 개근상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런 상을 더 좋아하시는구나.’ 

   그날 이후로 '다른 상'에 대한 본격적인 극성이 시작되었다. 교내는 물론, 지역 관청, 신문사, 대학이 주최하는 문예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하나도 빠짐없이 기를 쓰고 참여했다. 선생님이 먼저 추천하는 것은 당연했고, 어떨 땐 내가 입수한 정보를 근거로 선생님을 조를 때도 있었다. 

   “선생님, 저 그 대회 나가게 해 주세요. 반드시 일등상 받아 올게요, 네?”


   지역 방송국이 발행하는 문예지에 투고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매번 결과는 좋았다. 입선은 기본이었고 장원도 심심찮았으며, 하다못해 공책 몇 권을 받아오더라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상을 받으면 부모님이 기뻐한다는 이유로 시작된 글쓰기는 점점 내 학창 생활의 일부가 되어갔다. 대회에 지원하고, 참여해서, 수상受賞하는 일상은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변함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문예부로 활동하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천 선생님이 찾는다며 교무실로 오라신다는 말을 전했다. 유철이와 매점에 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짜증이 났다. 보나 마나 뻔한 일일 것이다. 상을 받았으니 칭찬을 하시려는 것이겠지. 문예부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쩝쩝 헛입을 다시는 유철이를 진정시키고 교실문을 나섰다.


   국어 과목을 담당하는 천 정국 선생님은 오월이 끝나갈 무렵 우리 학교로 부임했다. 갑자기 전근을 가게 된 전임前任 김형민 선생님의 후임으로 천 선생님이 왔고, 김 선생님의 역할을 이어 받아 문예부 역시 천 선생님이 맡게 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정情이 많이 들기도 했지만, 언제나 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늘 격려해주던 김 선생님이 떠난다는 소식은 그래서 내겐 꽤나 아쉽고 서운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김 선생님에 비해 덩치는 곰처럼 큰 데다 말투 역시 그저 투박하기만 한, 그래서 별명마저 ‘산적’이라는 천 선생님에게는 쉽사리 마음이 갈 것 같지 않았다. 

   ‘저런 양반이 무슨 글을 가르치겠어? 대충 자습이나 시키겠지.’


   선생님의 자리는 교무실 한쪽 구석이었다. 앉은키보다 높게 쌓인 책더미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흐음, 여러 가지 책을 읽으시나 보네. 잡독雜讀은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던데, 역시나…


   “니가 진우가? 임진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나도 작은 키는 아닌데 선생님은 적어도 나보다 머리 두 개 반은 더 컸다. 부리부리한 눈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가 한 번 본 적이 있었던가?”

   “그, 그렇습니다. 선생님.”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번 문예부 첫인사 시간에...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선생님이 나를 옆으로 살짝 밀치고 의자에 앉았다. 삐그덕 소리가 났다.

   “니, 글 좀 쓴다메?”

   역시 소문을 들으셨구나. 하지만 잘난 체할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아닙니다. 그, 그냥.”

   선생님은 내게 시선을 주지도 않은 채 혼자서 분주하게 책더미 여기저기를 뒤적였다. 

   가만히 서있자니 왜 부른 건지 점점 궁금해졌다. 수상에 대한 칭찬을 하기 위함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새를 참기 어려웠다.

   “저, 선생님. 저를 왜 부르신 건지…?”

   그제야 선생님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음… 니를 머 때문에 불렀더라. 아 맞다.”

   선생님은 주머니를 뒤적여 곧 담배를 꺼냈다. 당시는 교무실에서도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었다. 이번엔 라이터가 없는지 선생님이 바지춤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결국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서 선생님이 말했다. 여전히 눈길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니, 내일 아침까지 글 하나 써 온나.”

   “네? 글 말입니까? 작문을 하라시는 말씀입…”

   “그래, 맞다. 주제는, 음… 그래, 곧 유월이니까, 주제는 한국전쟁. 알겠제? 이제 그만 가봐라. 곧 자율 학습 시간 아이가.”

   선생님이 내 등을 툭 쳤다. 솥뚜껑 같은 손이 다녀간 자리에는 꽤나 인상적인 울림이 남았다. 교무실을 나서는데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럼 그렇지. 김형민 선생님께도 이미 들었을 테고, 요 몇 주 동안 조례 시간마다 상을 계속 받았으니 이번엔 직접 내 글쓰기 실력을 확인하고 싶을 테지. 멋지게 한 편 써서 실력도 인정받고,  확실하게 눈도장도 찍어야겠다.’


   십 분이면 충분하다며 유철이는 계속해서 라면을 졸라댔지만 나는 꿈쩍도 않고 연습장부터 펼쳤다. 한국 전쟁? 그까짓 것, 식은 죽먹기지 뭐. 


   저녁 자습이 끝나기 전에 초고草稿가 먼저 끝났다.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본도 금세 마련되었다. 이제 원고지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아니 이 글을 정말 네가 썼단 말이야? 너 진짜 대단하구나.”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있을 선생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흐뭇해졌다.




   다음날은 평소보다 일찍 등교했다. 

   원고지를 선생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제 칭찬받을 일만 남은 것이다. 빈자리에 대고 인사를 꾸벅했다. 

   그날 오후, 매점에 있는데 교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역시나 천 선생님이 나를 찾으신단다. 라면 국물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노라 유철이에게는 관운장 코스프레를 했다. 교무실로 향하는 내내 콧노래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끼이익 의자가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예상대로 선생님의 손에는 내가 쓴 원고가 들려 있었다. 만약에 칭찬을 하시면 어떤 답을 해야 겸손하게 보일까? 아닙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입니다. 선생님께서 더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임진우.”

   낮고 굵은 목소리였다

   “네, 선생님.”

   선생님이 천천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기대에 부푼 나머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선생님의 두꺼운 입술이 움직였다.

   “엉터리 같은 자식.”

   귀를 의심했다. 뭐라구? 엉터리? 그때 갑자기 선생님이 원고를 북북 찢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칭찬은커녕 내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서, 선생님."

   근처에 앉은 선생님들이 놀란 눈으로 이 쪽을 쳐다보았다. 밤새 정성 들여 한자한자 옮겨 쓴 원고는 내가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졌다. 몇 조각은 이미 바닥으로 흩뿌려졌다. 

   눈앞이 어질했다. 대체 선생님이 왜 이러시는 걸까? 

   손에 남은 원고지를 마저 내던지며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몹시 화가 나 있음은 분명했다.

   “니도, 니 글도 순 엉터리란 말이다, 알겠나?”

   갑자기 눈이 매워졌다. 그것이 담배 연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계속)



* Image by Pexels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국밥 한 그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