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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21. 2022

국밥 한 그릇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좋아하게 된단다. 왜 그런지 아니?”

   주문을 마친 주성이가 수저를 건네며 내게 물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눈으로 되묻고 있는데, 처음부터 내 대답은 상관없었다는 듯 주성이는 곧장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말이야, 어릴 때는 차고 넘칠만큼 모두들 감성이 풍부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이 바짝 말라 버리게 되지. 그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다시 적셔주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뜨끈한 국물이 좋아진다는 말씀이야.”

   “누가 그래?”

   “누구긴, 바로 나지. 하하하하.”

   주성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헛웃음이 따라 나왔다.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코흘리개 시절,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은 오직 짜장면 때문이었다. 하루 세끼가 아니라 한 끼 세 그릇, 아니 한 달 내도록 짜장면만 먹으며 살고 싶었다. 중국집 막내아들 철구가 그렇게 부러웠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변한 건지 짜장면이 변한 건지, 다른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짜장면은 같은 집안 형제인 우동과 짬뽕에게마저도 그 영광의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들 간의 차이는 분명히 국물의 유무有無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옛날처럼 다시 한번 감성을 촉촉하게 만들어보자는 의미루다가 이 형님이 오늘 맛있는 국밥을 너한테 대접하는 거란다. 알겠니?”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주성이를 보고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주성이는 여덟 살이던 국민학교 일 학년 때의 내 짝이다. 아버지는 외항선 선원이었고, 어머니는 집 근처 회사에 다녔다. 우리 아버지는 목수였고 엄마는 아랫동네 식당에서 일했다. 처지가 비슷했던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그때로부터 사십 년이 넘도록 변함없는 친구로 지내왔다. 

   단무지 한 개를 짜장면 속에 미리 숨겨놓던 뚱보는 어느새 은행 지점장이 되었고, 단무지를 빼앗긴 것이 분했던 나머지, 그만 토라져 집으로 가버리던 밴댕이는 일찌감치 하얀 서리를 머리에 얹었다.


   내가 서울에만 있지 않고 부산을 오가며 일하게 된 것을 주성이가 누구보다 좋아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아 전화로만 겨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뿐이었다. 주성이는 그것이 싫었나 보다. 의절義絶과 절교絶交까지 들먹이는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은 애먼 약속 하나를 취소하고 말았다.

   “시원찮은 것 먹이면 각오해라, 뚱보야.”

   “염려는 붙들어 매라고. 밴댕이 소갈딱지야.”


   주성이가 나를 데려간 곳은, 큰길에서는 조금 떨어진 골목 안쪽에 자리한 국밥집이었다. 작지만 실내는 깔끔했고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손님이 많았다.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두 그릇이 금방 우리 앞에 놓였다. 국물의 매력은 역시나 짜장면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추억을 양념으로 올리고, 근황을 반찬으로 곁들여 모처럼 맛있는 점심을 했다.


   국밥보다 두 배는 비싼 커피를 마시고 말겠다며 주성이가 계산대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의 넉넉한 웃음이 좋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상쾌했다.

   커피점으로 향하려던 우리는, 그러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주성이와 나는 같은 곳을 보았다. 식당 바로 맞은편 담벼락. 거기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남루한 차림새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언제 감았는지 모를 떡진 머리, 여름 볕에 탈 대로 탄 검은 피부. 대충 감아 두른 목도리는 제철을 잊었고, 우장雨帳처럼 커다란 점퍼에는 시커먼 때가 더덕더덕 달라붙었다. 그 옆으로 아무렇게나 놓인 짐가방은 아래가 이미 터졌다. 순서 없이 삐져나온 내용물은 대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노숙자의 행색이었다.

   가을이라지만 그늘에선 쌀쌀함마저 느껴지는 날이었다. 저런 모습으로 과연 얼마나 앉아 있었던 걸까? 식당에 들어갈 땐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리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그는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한 곳 만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식당이었다. 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의 시선은 거기에 닿는 듯했다.

   나를 힐끔 쳐다본 주성이가 주저 없이 그에게로 다가갔다. 나도 얼른 따랐다.

   “저… 실례합니다만.”

   주성이의 말소리에 그가 움찔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 피부 사이에 박혀 있는, 퀭한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채였다.

   “어? 진우야, 여자분인데?”

   뜻밖에도 그는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를 대책 없이 덮고 있는 커다란 점퍼 안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강아진가? 한발 더 다가갔다. 그녀의 두 팔 안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아기였다. 돌은 지난 듯했지만 얼핏얼핏 보이는 팔다리는 그지없이 앙상했다. 몸집은 당연히 작았다. 아기의 상태 역시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자가 서둘러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려고 했다. 주성이가 팔을 내밀어 휘휘 저었다.

   “아, 아주머니. 괜찮아요. 우리,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가방을 끌어안던 여자가 그 말에 슬그머니 동작을 멈추었다. 내가 물었다.

   “혹시 아주머니, 배… 가 고프세요? 그래서 식당을…?”

   대답 대신 여자는 주성이와 나를 또다시 번갈아 쳐다보았다. 두려워하는 기색이 여전했다. 주성이가 다시 말을 얹었다.

   “식사… 하실래요? 저희가 사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우리, 진짜 나쁜 사람 아니에요.”

   물끄러미 우리를 보던 여자의 입술이 살짝 씰룩거리더니 한참만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저는 괜찮은데 우리 아기가… 아무것도 먹지를…”  

   아, 다행히 말은 하는구나.

   

   나는 서둘러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에 매단 방울이 딸랑하고 소리를 냈다. 방금 전 계산대에서 인사를 했던 국밥집 사장이 나를 보고는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손님, 와예? 혹시 두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습니꺼?”

   여자와 아기의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볼 참이었다. 다른 손님들이 당연히 불편할 수도 있었다. 내가 억지를 부릴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만일 사장이 거절한다면 아쉬운 대로 국밥 포장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카드를 꺼내 든 채로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짧은 설명이 끝났을 때 사장의 표정이 뜻밖에도 환해졌다.

   “아이고, 뭐라카능교. 당연히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셔야지예. 어데 보자.”

   문밖을 살핀 사장은 급히 실내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다른 손님들은 오히려 개안심미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다 인심 좋은 분들이라예. 다만 저 애기 엄마가 혹시나 불편할지도 모르니까, 저쪽 구석에 앉으시라카고 거기다가 칸막이를 놓아드릴게예. 그라믄 되겠지예?”

   그렇게 말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주성이를 향해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오케이. 주성이가 가방을 들었고, 여자가 힘든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곧 유리문이 열리고 주성이 뒤로 잔뜩 웅크린 그녀가 따라 들어왔다.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사장이 준비한 자리에 앉았다. 품 안의 아기를 보게 된 사장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하이고, 이기 머꼬? 얼라가 있네.”

   사장은 주방을 향해 얼른 큰소리로 말했다.

   “보소, 주방 이모요. 여기, 국밥 뜨신 걸로 빨리 갖고 오소. 그라고 작은 숟가락하고 덜어먹을 주발도 한 개 챙기고. 퍼뜩!”

   말을 마친 사장은 칸막이를 가져와 탁자 옆에다 세웠다. 우리의 대화를 충분히 들었을 법도 한데 이쪽을 힐끔거리는 손님들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반찬과 국밥이 담긴 쟁반을 든 주방 아주머니가 나왔다.

   “아지매요, 물부터 마시고, 이거 얼른 잡수소. 다진 양념이랑 소금도 넣고,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사장이 측은한 눈빛으로 재촉을 했다. 여전히 눈치를 보던 여자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밥과 국을 주발에 덜어서 으깬 다음, 입으로 호호 불고는 그것을 아기 입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아기는 계속 칭얼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먹으려 들지 않았다.

   “아이고, 아가야. 우리 집 국밥 윽수로 맛있는데 니는 와 안 묵을라 카노. 한 숟가락 묵어봐라. 진짜 끝내준다.”

   애가 달았는지 사장이 또 재촉을 했다. 그때, 곁에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주방 아주머니가 앞으로 성큼 나섰다.

   “보소, 아기 엄마요. 아가를 내한테 주소. 그런 자세로는 아가가 불편해서 아무것도 못 먹는다 아이가.”

   아주머니는 아를 빼앗듯 받아 들었다. 놀란 여자가 엉거주춤 일어나려고 했다. 괜찮다는 뜻으로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어 번 얼러서 아기를 진정시킨 다음, 아주머니는 아기의 입가에 숟가락을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그러자 울음을 멈춘 아기가 그것을 냉큼 받아먹는 것이었다.

   “오오, 묵는다, 묵는다.”

   사장이 오히려 신이 났다.

   “사장님요, 이래 봬도 내가 육 남매를 키웠다 아입니꺼.”

   주방 아주머니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여자에게 말했다.

   “아가는 내가 먹일 테니까 아가 엄마도 얼른 식사를 해요. 우짜다가 이래 됐노. 나이도 아직 어린것 같은데, 참말로 세상이 와이리 됐노?”

   아주머니의 푸념이 끝나자 여자는 우리를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그릇에 숟가락을 담갔다. 그리고 천천히 첫 술을 뜨기 시작했다.

   주성이가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냐? 우린 이제 가자.”

   “어, 어. 그래, 가자.”

   

   계산대에 서서 사장에게 손짓을 했다. 사장이 웃는 얼굴로 걸어왔다. 그가 달리 보였다. 그저 고마웠다.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돈쭐’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딱 알맞은 것이 생각났다. 다음 달로 예정된 동창 모임을 예약했다. 카드를 돌려주며 사장이 말했다.

   “손님, 걱정 마이소. 저 아지매가 식사하는 동안에 제가 구청 복지과에 전화할게예. 요새 그 사람들, 억수로 일 잘합니더. 전화하면 바로 옵니더. 얼라하고 엄마하고 따시고 편안한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잘 도와줄 낍니더.”

   울컥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사장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가게를 나오려는데 주성이가 갑자기 몸을 돌려 여자가 식사를 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뒷 춤에서 지갑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주성이가 무엇을 하려는지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진우 네 오지랖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너는 임마, 고등학교 때 육교 위 할머니…”

   “할머니가 뭐? 나는 기억 안 나는데?”

   “성문 기본 영어 살 돈으로 시금치를 다 사버려서 너희 어머니가…”

   “웃기고 있네. 주성이 너야말로 연산 로터리에서 껌 파는 할아버지, 롯데껌 백 통!"

   “몰라. 난 하나도 기억 안 나.”

   사십년지기의 이심전심에서 시작된 오지랖 공방전攻防戰은 커피가 식을 때까지도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인생의 함정은 세상 곳곳에 뚫려 있다. 무심코 지나칠 땐 아무도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한다. 작은 구멍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무 깊어서 한 번 떨어지면 쉽게 올라오지 못한다. 작정하고 빠지는 사람은 없다. 구멍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왜 빠졌냐고 물어보는 건 나중 일이다. 우선은 손을 뻗어 건져내야 한다. 인생의 구멍이란, 인생의 함정이란 누군가가 손을 뻗어주기만 한다면 쉽게 기어오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인지도 모른다. 지금 중요한 건, 우선 그렇게 손을 뻗는 일인 것이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주성이의 메시지를 받았다.

   ‘진우야, 아줌마와 아기, 편안한 곳에서 잘 쉬고 있겠지? 올 겨울은 조금 덜 추웠으면 좋겠는데.’

   주성이의 말뜻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함께 먹었던 국밥이 내 속에서 다시금 뜨끈하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 Image by eunyoung LE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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