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거짓말
유치원 시절 나는 미술 유치원에 다녔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었던 그 유치원은 대부분이 그 아파트에 살던 어린이들이 원생이었다. 그 유치원은 1년에 한 번 가장 큰 이벤트가 있었는데 바로 유치원생들이 원하는 선물을 산타클로스가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 아파트 앞 상가에 슈퍼, 빵집, 방앗간 등등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앞에 산타와 원생들이 쭉~ 서 있다가 한 명 한 명 호명하여 선물과 덕담을 해주는 이벤트였다. 어린 시절 나는 우주인도 있고, 초능력도 존재하고, 하늘을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산타도 존재한다고 믿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엄마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물어봤다. 지금도 내 선물 고르는 것이 어렵지만 어렸을 때는 그냥 눈 앞에 있는 산타가 자전거를 타고 바퀴를 굴리면 산타의 다리도 함께 움직이는 장난감을 가리키며 "이거 갖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이상하게 바로 장난감을 사주지 않고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이였다.
크리스마스날이 됐고 유치원 선생님들 손에 이끌려 우리는 아파트 상가 앞에 나란히 원을 그리며 둘러 섰다. 산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환호를 질렀다. "산타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두근거렸다. 유치원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고 산타는 어떻게 친구들 이름을 다 알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나의 이름이 불리기까지 꾹 참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산타할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산타는 어디서 많이 본..?, 흰 산타 수염 밑에 거뭇거뭇한 털이 나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는데, 원장 선생님이었다. 엄청난 혼란 속에 얼어붙은 나는 내 이름을 부르며 산타가 주는 선물을 받고 덕담을 들었다. 얼떨떨한 마음을 안고 엄마 품에 돌아와 다른 아이들이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는 것을 기다리고 이벤트는 끝이 났다. 당황은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와서 선물을 뜯어보니 엄마에게 말했던 산타할아버지 자전거 장난감이었다. 마치 반전의 반전 영화를 보듯 엄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말했던 장면과 흰 수염 아래 검은 수염이 나있는 원장 산타할아버지의 모습이 교차되며 떠올랐다.
7살이었던 나에게 이 산타와 엄마의 거짓말은 엄청나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아직 산타를 믿어도 될 나이인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산타는 없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었다. "산타는 없어... 그거 원장 선생님이야". 너무 빨리 알아버린 산타 존재의 유무를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지금은 다시 산타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모습이 로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