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학교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시작한 지도 꽤 지났습니다. 뚝딱뚝딱 만든 17호가 손에 들어온 지도 벌써 몇 주였고요. 학교 곳곳에 배치한 공일오비 17호는 빠르게 줄어들어 금세 여러 사람의 손에 들어갔지만, 어떤 독자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못내 아쉬웠던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여러 어려움으로 지난 두 호 동안 진행하지 못한 독자모임을 재개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1월의 어느 날, 공일오비와 문우의 공동 독자모임이 연희관 지하 15호 자치도서관에서 열렸습니다. 연희관 015B에서는 곤지, 구름, 모자, 심술, 오월, 온, 영원, 퓨가, 문우편집위원회에서는 검은, 노랑, 눙, 야부, 유연, 찌부찌, 포슬이 참여했고, 편집위원들은 모두 <연희관 015B> 17호와 <문우> 66호를 읽어온 후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요?
찌부찌 : 저는 사실 여는 글을 읽기 전에 그냥 전체 소제목을 먼저 읽고 이거 굉장히 신기하다, 파도를 연상하면서 만드신 건가 보다 하고 본문들을 읽고 마지막에 여는 글을 읽었는데요. 뭔가 생존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기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바다, 파도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굉장히 삶의 이미지와 비슷하잖아요. 생동감 넘치고, 부서지고, 유영하고… 내가 지금 살아 있고 계속 얘기하고 있고 소리치고 있다, 이런 걸 파도라는 키워드를 통해 잘 담아냈고 그게 전체 취지를 잘 설명해준 것 같아서 되게 좋았습니다.
포슬 : 저는 지난 호인가 지지난 호인가에 언협지에서 공일오비 리뷰를 맡아서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도 지금도 공일오비가 글을 배치하는 방식이 항상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여기서도 넘실대다, 굽이치다, 부서지다 식으로 전체 구성이 배치되어 있는데, 물론 내용적인 부분에서도 의도적인 구획이 있겠죠? 근데 저는 그것보다도, 파도를 연상시키는 구성이라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교지 자체가 두껍고, 특히 공일오비는 무거운 이야기나 내밀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잖아요. 그것들이 고여 있지 않고 거기에 운동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구획한 게 너무 인상적이었고 이 조그만 책 하나 안에 이만큼 많은 운동들이 들어있다는 것이 너무 멋졌어요.
오월 : 제가 지난 호 편집위원이라 어색해서 말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하는데요… 들어오기 전에 다들 교지를 먼저 읽어볼 거 아니에요. 들어오고 싶은 동아리니까. 그러니 저는 이것보다 더 이전 호를 봤겠죠? 그때부터 공일오비를 보면서 카테고라이징이 정말 잘 됐다, 어떻게 저렇게 포괄적인 주제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싶었는데 들어와보니까 일단 쓰고 맞추는 거였더라고요.
곤지 : 우리의 영업비밀을! (웃음)
오월 : 제가 17호 카테고리를 정하는 회의에 사정상 못 나왔거든요. 끝나고 나서 보니까 물결이라는 큰 대전제 안에서 글이 많이 섞여 있어서 그게 좋았고요. 여는 글이 정말 저희의 이야기들을 잘 담아내고 있었어요. 글을 쓰면서 나의 글이 여기쯤에 배치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썼음에도 원래부터 이쯤에 배치하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고 원래 이런 느낌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했어요. 좋았던 게 맨 마지막 문단이었는데, ‘아픔 없이 건강하기만 했던 과거, 감염병의 영향 없이 자유롭기만 햇던 과거, 예외 없이 규칙적인 계절만을 맞이했던 과거, 시끄러운 투쟁 없이 평화롭고 조용하기만 했던 과거 같은 것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이 문장이 공일오비 이번 여는 글의 마지막 문단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어요.
찌부찌 : 제가 오늘 되게 우연히 듣고 싶은 노래가 생겨서 들었는데 그게 스메타나 <나의 조국> 중 ‘블타바 강’이거든요. 강을 모티브로 쓴 노래니까 그 안에서 굉장히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 느껴지고, 그래서 엄청 듣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걸 듣고 이 구성을 읽으면서 보니까 갑자기 또 그게 생각나는 거예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 안에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이 느껴졌고, 아무것도 안 듣고 있는데 그 노래가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포슬님 말씀처럼 구성을 정말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찌부찌 : 이런 특이한 구성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퓨 : 제가 공일오비에 처음 들어왔던 15호에는 원고 세 개를 실었거든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때는 할 말이 많았었나 봐요. 그런데 학기가 지날수록 큰 품을 들여 할 말이 없어지고, 내 뭘 말할 수 있지, 말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이런 식으로 쌓아가는 구성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걸 하고, 그걸 유기적으로 모아가는 구성이요. 배치를 유심히 보시면 알 수 있는데, <복수의 흐름>은 네 문단으로 이루어진 묶음이 네 개 있어요. 그리고 두 개의 흐름 속 각 묶음들이 모두 같은 곳에서 시작되고 같은 곳에서 끝나거든요. 이렇게 제 나름의 형식을 부여하고 규칙에 맞게 쓰면 무엇이든 쓰게 되니까… 그러면 흘러흘러 써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뻔한 걸 별로 안 좋아해서, 한번 해본 건 다시 안 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찌부찌 : 이것도 궁금해요. 왜 흐름들 2가 먼저 나왔는지, 그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퓨 : 여러 방식으로 읽어주기를 바랐어요. 처음에는 왼쪽 단의 제목이 ‘흐름들 1’이었는데요. 편집회의 때 얘기를 들어보니 다들 처음 단을 먼저 쭉 다 읽고 그 다음에 돌아와서 다음 단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든 깨고 싶었어요. 양쪽 단에서 한 문단씩 읽는 것도 방법이고, 한쪽 단을 다 읽고 그 다음을 읽는 것도 방법이고… 읽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흐름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번을 앞에 둔 건 일종의 트릭이에요. 그럼 누군가는 1번, 그러니까 오른쪽 단부터 읽지 않을까 싶어서요. (웃음) 원래는 숫자를 안 넣을까도 생각했었어요.
노랑 : 두 줄로 이렇게 병치해서 쓰셨잖아요. 저는 이게 되게 흥미로웠던 게, 왜 이렇게 쓰셨을까 생각하면서 읽다 보니까 글 자체가 두 사람의 이야기 같은 거예요. 사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고 병치되어 살아가잖아요. 그걸 그대로 글로 옮겨온 것 같다는 신기한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그럼에도 한 분이 쓰신 거라 그런지, 말하는 투가 어느 정도 통일된 게 있단 말이에요. 그게 아무리 다른 사람이라도 내 삶에 접점이 있다, 이런 의미로 읽히기도 했고, 이 구성에서 여러 사람의 연결과 단절, 그러면서도 공존하는 것들이 느껴져서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유연 : 트리플스트리트 C동 카페 얘기에서… 저도 지금 송도에 살고 잇는데 좋아하는 카페가 있거든요. 열 개 모아야 하는 쿠폰을 다 모아서 매번 새 음료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그래서 글 읽으면서 제 생각이 났던 것 같아요. 나도 언젠가는 상실하게 되겠지, 언젠가는 그 카페도 없어질 거고 음식점도 다 없어질 텐데… 아직 잃어버리진 않았지만, 그 전에 먼저 애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마음이 앞서 나가서. 오히려 이 글을 읽으며 그걸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저는 없어지는 것들에 쉽게 정을 붙이는 타입인데, 그래서 글이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글에서 수영 얘기도 하셨는데 저도 수영을 하거든요. 되게 와닿는 거예요. 이걸 읽으면서 제가 예전에 쓴 일기를 찾아봤어요. 거기서 ‘사는 게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 같다’, ‘파도가 치면 수영을 할 수가 없어서 휩쓸리는데 가라앉으면 죽는 거니까 살기 위해 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나아가게 된다’, 이런 말을 써놨더라고요. 그것도 생각이 나고… 수영장 물의 흐름 얘기를 하셨잖아요. 이번 주 토요일에 수영 가기로 했는데 그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곤지 : 전 사실 편집 과정에서 이 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공유했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말하겠지만, 꼭 독자모임에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어요. 제가 이 글을 굉장히 좋아하고, 가끔씩 뜬금없는 때에 아침에 찾아보기도 하거든요. 이번 17호를 만들면서 되게 우울감, 좌절감, 무력감 같은 것들이 마음 한편에 있었어요. 내가 너무 거대한 미래들을 상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파도 속에서 휩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무력감이 들기도 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14페이지에 있어요. 수영장 한가운데에도 미세한 흐름이 있고, 나로부터 시작해 어디론가 향해갈 흐름들의 방향을 책임감 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부분이요. 그게 왠지 이 17호에 실은 모든 글들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이 글이 좋았고, 가끔씩 오늘 살아갈 힘이 없을 것 같을 때 읽어 봤거든요. 이 글을 읽은 뒤에는 제 일상이나 하루가 가끔 물속에서 흐름을 만든 것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이 글을 굉장히 좋아하고 어쩌면 17호에 실린 글들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흐름 같은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찌부찌 : 제가 쿼드를 보지 않았지만 이 글의 편집 모양이 딱 그걸 표현해주신 것 같아서 되게 신기했고요. 제가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인식적 지도 그리기 미학’ 부분이었어요. 이것도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저는 올초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다른 학교에 있는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그 대학원에서 지금까지 배우던 내용과는 정말 다른 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학생들끼리 경쟁적인 분위기도 있어서 마치 고3을 또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되게 많이 소진되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저절로 제 안에 있는 소리만 듣게 되고 자꾸 땅을 파고 들어가게 돼서 고민했었는데요. 이 ‘인식적 지도 그리기 미학’ 부분을 읽으며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주지하는 과정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는 나를 빼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들을 담은 치열한 고민을 담은 글을 보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찌부찌 : 저는 이런 글이 굉장히 좋습니다. 막판에 온님과 오월님이 쓰신 글을 보고 나서야 결국 이런 움직임, 도시에서의 이동과 나를 쓴다는 것의 취지를 알게 되었는데요. 다들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을 병렬적으로 하고 있는 옴니버스 구성이 전 너무 재밌었고요. 그러면서도 공통적인 주제는 있는 것 같았어요. 이동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서 늘 있어야 하는 거고 어쩌다 보니 하게 되는 거지만, 그게 모두에게 또 똑같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 그게 되게 와닿았어요. 자꾸 개인적인 얘기를 하게 되는데, 제가 대학원까지 통학하는 데 왕복 2시간 반 정도가 걸려요.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두 번을 갈아타서 학교에 가거든요. 급하게 뛰어다니고 조그만 톨게이트를 지나가고 계단으로 오르고 이럴 때마다 늘 생각을 해요. 그나마 내가 두 다리로 걸어다니니까 이 정도이지, 너무 선택지도 없고… 아침에 통학 기준으로 늦게 일어난 적이 있었어요. 1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저는 그 안에 학교까지 갈 수 없고, 택시도 진짜 안 잡히는 거예요. 지각을 무릅쓰고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요즘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핸드폰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 운, 돈, 그런 것들이 있어야 이동을 할 수 있고 그게 없으면 어려워진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됐어요. 이 기획에서 비슷한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들을 읽고, 저도 속으로 얘기를 하는 느낌이었고요. 그리고 퓨님 글이요. 또 수직으로 엄청 세워주셔가지고. (웃음) 중앙정렬을 하셨길래 왜 그랬을까 했는데, 본문에서 지도가 평면이라는 것을 설명해주신 게 되게 좋았어요. 제가 등하교할 때 계단도 그렇고, 학교 다닐 때도 이대부중에서 연희관까지 올라오면서 ‘여기는 골고다’ 이러면서 올라왔거든요. (웃음)
포슬 : 저는 다 너무 재밌게 읽었는데, 두 개 흥미로웠던 걸 꼽자면 하나는 27쪽 느루님 글에서 후쿠치야마선 탈선 이야기요. 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적극적으로 공감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요. 제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면,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기 전 대면수업을 할 것이라는 희망이 존재하던 시절에… 시간표를 짜고 나서 이동거리를 재려고 한 적이 있어요. 과학관에서 교과관까지. 거기는 골고다 언덕에 비해서는 평지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컨디션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분 안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걸 보면서, 이동 수단이 어떻게 기획되었는가의 문제도 존재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그 이동을 강제하는, 특정 시간 안에 가야 하고 지체를 허용하지 않는 시간의 구획 같은 것도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문제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또 심술님의 글이 되게 좋았거든요. 할아버지랑 같이 택시에서 나눈 대화를 구어체로 생생하게 옮겨주셨잖아요. 저 또한 집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서 오는 사람인데, 대학생으로서의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그 시간은 텅 빈 시간이라고 감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택시에서 주워 담은 말>에서는 이동의 시간도 텅 빈 시간이 아니라고 얘기를 해주고 있는 거잖아요. 이야기들이 이렇게 오고 갈 수 있고 그 안에서도 만남이 존재할 수 있고. 주변적인 상황으로 인해 공허하다고 감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사실은 되게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는 걸 실천적으로 보여준 글 같아서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검은 : 전반적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뤄주셨잖아요. 탈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해서 몰랐던 것들이나 공감됐던 것들도 있었고요. 특히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다고 느낀 건, 온과 오월님 글의 50쪽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경기도민과 인천시민들은 매번 약속 상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셈이다.’라는 문장이었어요. 저도 인천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 볼일이 있을 때마다 1호선 타고 신도림에서 내려서 2호선 타고 신촌역 내리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었거든요. 이걸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주셔서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유연 : 저도 온과 오월님 글을 얘기해보고 싶은데, 송도 살면서 자전거를 타고 멀리 카페에 찾아가는 취미가 새로 생겼거든요. 엊그제 공일오비 글 읽으려고 새로운 카페를 찾았어요. 거기가 되게 외진 곳이었고 돌아오는 길이 어두컴컴했는데, 횡단보도를 기다리던 중에 노인분들께서 저에게 술집 있는 거리가 있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도 초행길이라 몰랐고, 네이버 지도를 켜서 보여드렸는데 어떻게 가냐고 하시더라고요. 막막했죠. 이분들께 지도를 까는 법을 알려드린 다음에 하나하나 알려드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글에서 아주머니가 물어봤을 때처럼 장황하게 말씀드렸어요. 막 이 글을 읽은 참이었기 때문에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도전 교통’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와닿았던 것 같아요. 저도 경기도민이었기 때문에 ‘도전 교통’인이었는데, 저에게도 ‘ㄷㅈㄱㅌ’이 ‘대중교통’으로 변화하는 중이거든요. 그때는 누구에게는 평생 도전일 수도 있다…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던 것 같아요. 교통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해주신 글이 많았잖아요. 예전에도 물론 그랬겠지만 요즘에도 더더욱 느껴지는 것 같아요. 티켓 사는 게 다 온라인화되면서 노인 분들이 소외된다든가, 현재 교통에 대해 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글들이었던 것 같아서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오월 : 곤지가 처음에 이런 글을 쓸 거라고 얘기하고 영화 얘기를 해주었을 때 굉장히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곤지 글의 장점은 소제목마다 다른 느낌이 있다는 건데, 다 읽고 나면 그게 정리되고 마음에 딱 들어온다는 게 좋아요. 굉장히 따뜻한 느낌의 글이었고, 그게 제목과 글 모두에서 드러난 것 같아요. 영화를 서술한 방식도 저는 굉장히 좋아했고요. 내지 그림도 너무 예뻐서 딱 나왔을 때 계속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퓨 : 저도 새삼 다시 들춰보면서 생각했던 게, 곤지가 영화 얘기를 하며 ‘우리 잘 싸웠지? 나 정말 행복해.’라는 대사를 자주 발음해본다고 했는데, 그걸 현실에서 적용하고 계속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것을 너무 쉽게 발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서 더 좋았다는 거였어요. 영화는 끝이 나겠죠. 그런데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곤지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걸 잘 감각해내서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멋지게 말해준 게 정말 마음에 들어요.
심술 : 저는 분리된 것들이 이 글에서 연결되고 있어서 좋아하거든요. 대부분이 정치를 서사로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어떤 레토릭으로 막 왕조의 서사나 이런 것들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때 어떤 걸 추구하고 누구의 삶을 지키고 이런 것들이 서사화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고, 그래서 삶에서 투쟁이 분리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넌 언제까지 투쟁할래, 네 삶도 챙겨야지, 이런 말들이 굉장히 익숙하잖아요. 이 글은 어떻게 보면 투쟁이 사랑의 과정일 수 있고, 삶의 과정일 수 있고, 누군가를 비난하고 처벌하고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연결해나가는 과정일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느낌. 그게 이 글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연 : 저는 메모를 하면서 읽었는데, 처음에 이기는 것보다 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는 문장이 있잖아요. 거기서 ‘이기는 게 뭘까? 우리는 투쟁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는데, 나아가는 게 정말 이기는 걸까?’ 이런 메모를 했었거든요. 마지막에 과정이 있는 투쟁에서 세계는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하는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이 이번 공일오비를 꿰뚫는 문장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게 과정이라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한 시선이 느껴져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글이라 좋았어요.
찌부찌 :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지키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지지 않는 것은 내가 나임을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졌잘싸’, 그것도 내가 지금 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똘똘 뭉치는 건데, 저는 마치 현수막이 날아가지 말라고 구멍을 뽕뽕 뚫는 것처럼 제 안에서 통풍이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걸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이기는 데 연연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나를 살리는 데 급급할 때 오히려 나를 이 세계와 연결하고,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 이런 마음이요.
야부 : 살다 보면 이길 수 없는 거대한 것을 마주하고, 그럴 때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일으키려고 해도 쉽게 일어나기가 힘든데, 이 글이 그런 상황에 해답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까 오월님이 말씀하셨지만, 다른 이야기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이런 글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게 너무 놀라웠어요. 어떤 주제에 대해 저는 여러 생각이 들면 하나로 정리할 자신이 없어서 하나의 흐름으로만 쓰거든요. 근데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구나 싶어서… 아까 카페에서 이 글을 읽었는데 대체 이 글을 쓰신 분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고, 이런 좋은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도 제가 정말 좋아하거든요. 올해 6월에 또 봤는데 그때 떠올랐던 생각들이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는 게 놀라웠고 이번 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포슬 : 저는 심술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이 사람은 정말 말과 언어를 사랑하고,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 힘을 믿는 만큼 그걸 읽는 것의 가능성 또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이 정말 좋았어요.
찌부찌 : 개인적으로 읽다가 갑자기 <아가멤논> 이야기가 나와서 너무 반가운 거예요! 들으신 분들은 있겠지만 저는 1학년 때 송도에서 ‘그리스 비극의 영웅세계’를 들었거든요. 혹시 들으셨나요?
심술 : 아니요!
찌부찌 : 우와! 이걸 쓰신 분은 꼭 이 수업을 들으셨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 텍스트를 멋지게 담아내신 것 같아서요. 전 그거에 대한 쪽글을 엄청 대충 써서 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웃음) 이런 ‘법적 판단’이라는 게 꼭 정의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걸 잘 짚어주신 게 너무 좋았어요. 우리는 공명정대함을 얘기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굳어 있는 천편일률적인 법을 꺼내들지만, 그게 정의라고 저는 절대 생각하지 않거든요. 법 자체가 굉장히 불완전한 체계이고, 법 또한 정치적인 힘들 앞에서 목소리를 죽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세미나에 갔는데 거기서 노동조합법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발표하는 친구들이, 어떤 맥락인진 알겠지만 정말 ‘중립적’으로 발표하시더라고요. 노란봉투법이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설명하는데 저는 ‘그래 맞아, 처벌해야지, 이렇게 노동이 다원화되는 시대에!’, 이러고 있는데 ‘하지만 경제계에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면서 설명을 하고. 다들 ‘법대로 하라’, ‘법이 정의롭다’, 이렇게 얘기는 하지만 저는 절대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특히 요즘 같은 사회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줄이고 원래 있던 걸 인용해서 딱딱 자르고 이게 맞다 틀리다 얘기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이 다 허상이고 일단은 많이 말하고 뱉어야 한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들과 엄청난 과거의 텍스트를 무슨 큐레이션처럼 제시해주시는 게 굉장히 흥미롭게 읽혔고, 우리가 ‘인용해도 괜찮은 소스’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허구성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곤지 : 제 입장에서 이 글을 읽게 되었던 것 같은 게, 저는 언론계에 종사하기를 원하거든요. 언론이야말로 대표적으로 말을 다루는 기관이잖아요. 언론은 늘 정제되어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중립이 아니더라도 중립인 것처럼 깔끔하고 단조로운 어투로 거리두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게 권력을 획득하려고도 하고. 언론계에서도 많이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데, 과연 기계적인 중립과 거리두기가 앞으로의 저널리즘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정제된 언어, 권위를 획득한 언어를 썼을 때 얻게 되는 언론의 권력이 굉장히 달콤하고 그게 지배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명빈이 제안한 ‘말 밖의 삶’을 어떻게 불러낼 수 있을 것인지 성찰을 많이 해보게 됐습니다. 저는 꼭 이런 직종이 아니더라도 계속 말하고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세계를 불러낼 수 있을까, 누구의 삶을 담아낼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하게 됐어요. 저도 울퉁불퉁하고 정제되지 않고 기계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바람이 있고요. 그래서 심술이 너무 멋집니다.
포슬 : 결국 심술이 쓰고 있는 것도 말이잖아요. 다들 그러실 것 같지만 저는 글을 쓸 때 ‘무슨 말을 할 수 있지’라는 느낌을 자주 받거든요. 심술의 글은 어떻게 보면 소논문 같은 느낌도 드는데, 이런 말도 존재하고 심술은 이런 말을 쓰고 있구나, 하고 말의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말과 언어와 이야기를 사랑하는, 그걸 읽는 것을 사랑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찌부찌 : 너무 속상해요. 그냥 대화처럼 얘기하자면… 분명히 저 2019년에 여기 자치도서관에서 간담회 열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거든요. 그때 처음 있었던 논의도 아니고 이 일이 엄청 옛날부터 있었던 일인 거잖아요. ‘학생회장 후보’님께서 나오셔서 개선하겠다고 말하시면 될 줄 알았지… 그래서 또 1년을 기다렸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글을 막 쓰고 졸업하면서 음 괜찮겠지 했는데… 우리 학교의 누군가로 인해서 굉장히 핫한 5월이었잖아요. 이미 다 얘기하고 진작에 끝나고도 남았을 일일 텐데 왜 아직까지? 왜 학생마저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을 밀어내고 떼어서 생각하려고 하는지, 좀 화가 났어요. 아직도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구나… 물론 하지 않을 수는 없죠.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그래도 좀 속상하더라고요.
유연 : 이 글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처음 접한 게 아까 찌부찌님이 말해주신 그 뉴스였죠. 그전까지는 송도에 파업이 없었으니까. 그 이후에 송도에서도 파업을 했는데 그 일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이제 저의 능력에 대한 불신과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서 계획하지 못했는데, 그런 점에서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문우에서도 대자보를 쓰자고 얘기했었어요. 근데 막상 친구와 얘기를 해보니 이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건지, 청소경비노동자분들이 원하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역사가 오래되었다 보니 정작 참여하고 있는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아코디언 기획 이야기를 듣고 기사도 찾아봤었거든요. 근데 다른 분들은 여전히 모를 거잖아요. 이 일이 계속되는 이상 또 모르는 분들이 계속해서 학교에 들어오시겠죠. 그래서 이런 글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심술 : 저도 5월에 그분 때문에 굉장히 경악을 하고… 제가 계절학기를 들었는데 계절학기 수업도 마침 관료로 뽑혀 가셨다가 돌아오신 교수님이 개설하신 수업이었어요. 그때가 학내에서 어떤 정치현상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저희가 실제로 기자회견을 할 때 그 옆에 가 있기도 했고, 그건 매우 미약한 연대이겠지만… 그러면서 모자가 이 투쟁의 과정, 그 과정에서 지켜봐왔던 것들을 이렇게 글로 남겨준 것이 저도 굉장히 감사했어요.
오월 : 공일오비 이번 호 글 중에서 글과 말이라는 느낌이 제일 덜했던 글인 것 같아요. 모자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투쟁과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았고, 그게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일들을 알 수 있었거든요. 저는 송도에 있으니까 단절된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나에게 어떤 투쟁이 가까이 있다는 걸 느끼는 시기도 굉장히 늦었기 때문에, 1학기 때 신촌캠퍼스와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자가 알려주었던 게 정말 도움이 되었어요. 그런 것들을 정리한 이 글을 학교 친구들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송도 기숙사에서도 노동자분들이 파업을 하셨다가 학생들을 위해 퇴업으로 바꾸신 걸로 아는데, 그때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아서 벌레가 생긴다든가, 현수막이 자신들의 눈에 불편하다든가. 피 같아서 싫다던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왜 이 사람들이 소리치는지 정말 안 궁금해 했으면서요. 저도 공일오비에 있지 않았더라면, 아예 무신경하지는 않더라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고등학생 때 겪었던 경험들로 인해서 피곤하니까… 좀 쉬고 싶다, 대학에 오면 나태하게 살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그러진 못했지만. 이 사정을 듣고 나서도 관심 가지지 않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특히 문우나 공일오비에 있다면. 그래서 이 글이 굉장히 고맙기도 했고 보는 순간 지난 시간들이 생각났던 것 같아요.
노랑 : 저도 되게 개인적인 토로가 될 것 같아서 횡설수설한데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 본전공이 경영학과예요. 그래서 경제학원론 같은 걸 들어야 하는데, 저희 학과에서 배우는 내용은 전혀 이런 쪽에는 관심을 두지 않거든요. 경제학원론 책에 실제로 나오는 게 뭐냐면, 사실상 최저임금제는 경제학의 원리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이런 거거든요. 상경 쪽은 굉장히 사람이 많은 학과잖아요. 저랑 같은 학과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걸 다 배우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다시 동아리 시간이 되면 청소경비노동자 이야기를 하고 있고… 제가 처음 문우를 찾아봤을 때 제일 처음 나온 기사가 아코디언일 거예요. 최근에 아실지도 모르겠는데, 총학생회 선거 정책토론회에서 문우가 쓰레기통 추가 구비에 대한 청소노동자분들과의 소통 관련 질문을 남겼거든요. 근데 첫 질문엔 아예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추가 질의에서도 물어봤는데 ‘면담할게요’라고만 하고 넘어갔고요.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가 그렇지 않은 환경도 마주했다가, 이런 게 학교 안에서 제가 다 겪은 일이잖아요. 다양한 상황이 이렇게 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이상한 거예요. 내가 공부하는 것과의 괴리감도 느껴지고, 이렇게 우리가 산발적으로 얘기하는 게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근데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이 해소가 되었고요. 우리가 그래도 모자님처럼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다같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가졌다는 게 정말 좋다, 이런 글이 계속 글도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퓨 : 안 그래도 문우 질의 얘기하려고 했거든요. 제가 이번에 정토 질의 요약 기사를 써서… 추가 질의는 못 들었는데 그렇게 넘어갔군요. 상당히 괘씸하네요. 본 질문 때에도 슬금슬금 대답을 안 하고 넘어가는 거 보고 뭐지? 싶었었어요. 아무튼, 전에 친구한테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얘기가 뭐냐면, 어떤 운동을 할 때 당사자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기 쉬운데 노동 문제만큼은 다르다는 거였어요. 모두가 노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그래서 이번 사태를 보며 어떻게 다들 자기 얘기를 이렇게 모를 수가 있지? 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말 신기하게도 모두가 사용자의 관점에 빙의를 하고… 마치 자기가 월급을 주는 것처럼… 제가 특별히 모자에게 고마운 게 뭐냐면, 모자가 이 글을 쓰면서 계속 했던 말이 자기는 그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그들을 납득시키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였거든요. 설명을 위한 기사들은 아까 언급해주셨던 것도 그렇고 이미 많이들 있었어요. 모자의 말이 타자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 아니라, 당신들도 이 안에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글이라 고마웠던 것 같아요.
찌부찌 : 아까 제가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단 말이야? 하고 말했는데… 그게 제가 무지해서 그랬던 것 같네요. 노동은 정말 삶과 직결된 문제잖아요. 저는 어떻게 보면 “다행히도” 그걸 덜 생각해도 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뿐이고, 해결되지 않았으면 계속 얘기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속상하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조금 와닿았던 부분은 83페이지의 ‘차분함과 비정치성이 무해함의 조건이라면, 무해하지 않은 투쟁은 있을 수 없다.’였어요. 학부에서 정치철학 수업 들을 때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시끄러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거기서 매너를 지켜라, 착하게 해라, 하는 말이 정말 더 힘 있는 사람이 멋대로 재단하는 것과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노랑 : 진짜 짧게 생각한 걸 얘기하자면, 저희 문우 이번 학기 세미나 내용이 인터넷과 관련한 내용이 주였어요. 넷상의 페미니즘이라든지… 그래서 이 글이 되게 재밌었어요. 우리가 문우에서 했던 얘기들을 생각하면서 그럼 공일오비는 온라인상의 담화들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을까, 궁금했거든요. 확실히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게 재밌었습니다.
유연 : 노랑 말처럼 저희가 온라인 공론장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많이 했거든요. 그 이야기들을 굉장히 예리한 시선으로 짚어주신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정말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많은 데에 예리하게 분노할 줄 아시는 분이구나, 이런 식으로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쌓인 게 많으시구나! (웃음) 예리하고 치명적인 시선으로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확대되는 논의들을 분석해주신 게 좋았고,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걸 지적해주신 대목도 많았어요. 선택적이라는 레토릭이나 감성과 이성의 양립 가능성도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이게 이런 식으로 반박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신 게 다 보여서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개인적으로 이번 공일오비에서 가장 와닿았으면서 정말 재밌게 읽은 글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한글 파일로 한 디자인 너무 좋아요. 느낌을 잘 드러낸 것 같아요.
심술 : 저는 이 글이, 제가 항간에 떠도는 수많은 담론들에 왜 분노했는가를 역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항상 화가 나고 끝일 때가 많거든요. 안 볼 때도 많고. 이 글이 칼날에 양날이 있듯이 이런 식의 레토릭이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는지, 그래서 이 레토릭이 왜 문제인지를 짚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어떤 수업을 듣다가, 그때가 비대면 첫학기라 자리가 덜 잡혔을 때 카카오톡으로 진행했던 수업이 있었어요. 수업의 질이 놀랍게도 현저히 떨어지진 않았어요. 쪽글을 다 카톡창에 공유하고 거기에 대해 상호 댓글 피드백을 달고 이런 식으로 수업 시간 내내 카톡을 하는 수업이었거든요. 심지어 교수님은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너희가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에 익숙해서 오히려 카톡을 했을 때 생각을 잘 말하는 것 같다고. 물론 저는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고요! 아무튼, 그 수업이 세대론부터 짚고 넘어가는 수업이었는데, ‘세월호 세대’라는 명명이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 싸움이 시작됐는데 정말 에타 댓글창처럼 된 거예요. 누군가가 말했죠. ‘왜 나라를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보상금 액수는 이것뿐인데 세월호 액수는 이렇냐’, ‘세월호는 놀러가다가 그런 거다’… 그때의 분노가 아직도 소름이 돋거든요. 너무 반박을 하고 싶어서 예측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지고 오히려 세월호기 천안함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주장을 했어요. 이것도 지금 제가 굉장히 부끄럽기 때문에 순화를 한 거예요. 저는 그 사람이 말한 걸 뒤집는 레토릭으로 반박을 했던 거죠. 너무 분노해서 그랬는데 어떻게 대응햇어야 더 좋았을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로 그 기억을 넘겼었거든요. 이 글이 약간의 대답이 될 수 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해요.
심술 : 이거 티엠아이를 밝히자면, 문우 편집장님이 이거 너무 좋다고 그러셨어요.
검은 : 부끄러워! 제가 직접 말할게요. 저 이 글을 읽고, 수많은 갈등과 투쟁이 있음에도 인간이 어떻게 다른 존재들과 연대하고 살아야 할지를 알려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곤지 : 편집과정에서 얘기했던 거긴 한데, 공일오비에 이런 형식으로 쓴 글이 실린 게 진짜 신선한 것 같아요. 삼인칭 서술과 등대지기의 메모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쓰인 게 형식적으로도 너무 재미있어요. 스토리를 통한 통찰이 사실은 공일오비 17호의 테마이기도 하잖아요. 바다처럼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러면서도 어떤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고… 그런 공유된 배경을 가지고 있는 테마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끔 하는 글이었던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노랑 : 109쪽 제일 마지막 문단이 저는 읽으면서 진짜 너무 감동적이었거든요. ‘그는 바다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이 없었고, 바다를 잘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의 특징을 기록하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뭔가 곤지님 말씀처럼 공일오비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고요.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을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고 완전히 이어질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글이 좋았고 방금 말씀드린 문단이 정말 와닿았어요. 잘 읽었습니다!
심술 : 한 과정을 완결하고 나서야 다른 걸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이 공일오비 책을 만드는 경험이 그랬는데, 디자인적으로 많은 레이어를 쌓으면 그만큼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선의 글은 디자인도 그렇고 글 자체도 그렇고 층층이 쌓인 레이어가 빛을 발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디자인도 찢어진 종이가 있고, 그 위에 배경이 있고, 그 위에 메모지가 배치되어 있어서 입체적인 텍스트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속에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 등대지기의 이야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이야기, 등대지기의 메모, 그리고 선의 말도 있어요. 이 텍스트들이 따로 놀지 않고 왔다갔다 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 있는 모습들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새로웠어요. 이런 글이 여기에 실리게 되어서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곤지 : 저는 ‘우리는 나아가도 좋고 멈추어 있어도 좋다’라는 제목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고 너무 좋았거든요. 우리는 늘 생산성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미래를 살아가야 하고 발전해야 하는 존재라고 인식되는데, 치매라는 매우 서사화하기 어려운 질병을 곁에서 지켜보고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온의 따뜻한 시선이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어서 감탄했습니다. 치매라는 질병 자체가 기억을 잃어가는 질병이기 때문에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나오잖아요. 그걸 삶을 다르게 감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온의 시선이 너무 좋았어요. 저도 외할아버지께서 치매 증상을 계속 보이고 계시고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데, 이 글을 통해서 위로를 많이 받았달까요? 할아버지의 질병을 지켜보면서도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되게 쩔쩔맨 순간들이 많은데 온은 그걸 굉장히 성숙하게 받이들이고 있다는 게 좋았어요.
야부 : 저도 저희 외할머니께서 치매셨어서 굉장히 이 글이 와닿았는데, 처음 치매 증상을 보이셨을 때가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거든요. 제가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할머니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고 굉장히 온화하신 분이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변하시면서 저희 가족이 다들 공황에 빠졌어요. 다들 당황하고 허둥대고… 저는 그 변화가 무서운 마음이 컸거든요. 저희 가족도 되게 많이 변했어요. 저희 엄마도 직업적으로 치매와 관련한 일을 하시게 됐다거나, 저도 치매라는 병에 있어서 죄책감이 되게 컸거든요. 그 순간에 저희 가족이 다 이걸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시간이 많이 지난 일인데도 큰 위안이 됐다고 할까요. ‘잃어간다고 해서 그의 삶이 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말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저희 할머니께서 기억을 잃으셨을 때 저는 그걸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구나 싶었고, 글 전체에서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많이 묻어나서 굉장히 좋게 읽었습니다.
심술 :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기억을 잃어간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이야기도 잃는 과정이구나, 그래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경험, 혹은 그 사람이 하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는 새로운 소통들이 생기기도 하겠구나. 저는 이런 두 가지 갈래를 이 글이 다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굉장히 잘 읽었습니다.
검은 : ‘세계’라는 단어를 쓰셨잖아요. 그게 되게 공감이 됐어요. 저도 우울증 처방을 받은 당사자로서…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우울증 같은 질환을 진단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세계의 충돌을 겪을 때마다 되게 이질적이고 다르다는 생각을 해왔고, 그럼에도 조울을 겪고 계신 아버님과 연결점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되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술 : 저는 이 글이, 아픔을 함께하고 있는 사람의 아픔이 들어가 있어서 좋았어요. ‘내가 기어코 아빠를 아프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는 문장이 있어요. ‘아픈’ 사람은 누구인가? 하고 물었을 때 진단명을 갖고 약을 처방받고 아픔을 받아들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이 정도가 아픔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그럼 도대체 아픈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이 글이 품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픔을 지켜보고 그 아픔에 함께하는 아픔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아픔을 마주했을 때 아픈 사람 자체에 집중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그걸 함께하는 사람의 고통을 들여다볼 기회가 잘 없다고 생각되는데, 이 글이 그 경험을 나눠주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퓨 : 그래서 개인적으로 ‘돌아가기 대신 나아가기’라는 마지막 소제목을 좋아해요. 그 이야기를 <여는 글>에 인용하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