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
소문은 빠르게 생겨나 퍼지지만, 그 시작은 중요하지 않다. 그 산은 갑자기 나타났다. 아니, 산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맞지 않았다. 낯익은 산등성을 보이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것은 흙이 쌓여져 생긴 산이 아니었다. 어떠한 물질인지 알 수 없었지만 빛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이 달라졌다. 비가 내리면 온 세상의 땅은 걸을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겠지만 그곳의 땅만은 물방울이 소복소복 맺혀있을 뿐, 처음과 같이 매끄럽고 메말라 있을 것만 같았다. 커다랗지만 그에 비례하는 양감이 느껴지지 않아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빛나는 산.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처음에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경계했다. 천문학자들은 하늘 너머에 사는 거대 외계인의 흔적이라고 추측했고, 또 누군가는 땅의 거인이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그 산은 이 마을에서 난 것이 아니었으므로 누구도 쉽게 그 근처로 가지 않았다. 날씨조차 온화한 이곳에서의 잔잔한 평화로움이 깨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암묵적으로 그곳은 금단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번쩍이고 휘황찬란한 존재가 마치 태초부터 그곳에 있어왔던 것처럼 익숙해지기를, 그래서 그것의 기원이나 출현의 이유에 대해 아무도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순간이 오기를 바랐다.
그러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기기 시작한 것은, 간밤에 어떤 이가 그 산에 올라 우여곡절 끝에 신이 내린 선물을 얻었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였다. 소문의 주인공은 같은 지역에 사는 아저씨였는데, 원체 허풍스럽고 시끄러운 성격이었기에 사람들은 그와 거리를 둔 채 지내곤 했다. 사실 그를 먼저 찾는 이는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내가 택배를 전해주기 위해 왕왕 그의 집에 찾아갈 때마다 매번 부담스러울 정도로, 택배보다 나를 더 반겼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먼저 그를 찾게 된 것이다. 그의 집에 들를 때마다 그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었고, 매일 더 많은 사람이 그의 경험담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들을 뚫고 빛나는 땅에 올랐는지, 산에 오르기 위해 치른 대가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들은 신의 음성은 어땠는지, 마침내 얻은 신의 선물이 얼마나 특별하고 값진지…. 이야기는 점점 화려해졌고 그는 확실히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사람들이 은근히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적당히 말을 끌다가 얼버무렸고,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기어이 꺼내 들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그는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진귀한 보석을 가진, 산(山)신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자신의 입을 통해, 또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불현듯 사라졌다. 흔적도 없는 사라짐이었다. 그사이에 비어있는 집은 몇 번이고 털렸다.
- 아 끔찍하다.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아.
랑이가 검지손가락을 빙글거리며 말했다. 그 애는 불안하고 마음이 고동칠 때 고개를 반쯤 내린 채 오른쪽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짧은 머리칼을 몇 번이고 돌렸다. 지금처럼 양손을 들었다는 것은 매우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역사책에서 글로만 봐왔던 강도 사건이 실제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일어났으니, 아마 현실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공포에 휩싸였던 것 같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아가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손가락을 돌려대는 랑이가 신경 쓰여, 슬며시 랑이의 손을 잡아 유리잔에 대주며 나는 답했다.
- 그러게. 다들 며칠째 그 이야기뿐이야. 택배를 배달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소문을 많이 듣는데, 오늘은 뭘 들었는지 알아? 어젯밤에 저 지역에 사는 어떤 여자가 산에 오르는 데 성공해서 밤새 동그랗고 커다란 보석들을 잔뜩 가지고 내려왔다고 하더라고.
- 다들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사람이 사라졌는데 그 와중에 기어코 그 선물인가 보석인가 하는 것을 얻으러 산에 올라갔다고? 아 어쩐지 앞으로 세상은 훨씬 더 달라질 것 같아.
랑이의 말대로 마을은 빠르게 변했다. 낮에는 주인 잃은 보석의 행방에 관한 이야기가, 밤에는 산에 오르는 데에 성공한 어느 지역 아무개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마을 전역을 돌았다. 얼핏얼핏 듣는 이야기들은 날이 갈수록 부풀려졌다. 여전히 산은 금단의 영역이었지만, 밤만 되면 모두가 남몰래 산에 오르고자 하였다. 신의 선물을 서로 몰래 차지하기 위해 산을 금단의 영역으로 불리게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랑이의 추측이긴 하지만 그 애는 이런 쪽에서 나보다 훨씬 똑똑하니까 아마 맞을 것이다. 강도 사건을 넘어, 기록으로도 잘 읽어보지 못한 살인사건도 점점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전히 따뜻한 날씨는 계속됐지만, 마을은 더 이상 안전하고 평화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 지역의 사람들 중에서도 며칠씩 집을 비우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겼다. 부재시 택배를 잘 맡아달라고 부탁하던 이들은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내게 집을 비우는 이유를 말해주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묘하게 고양된 표정들이 거짓임을 보여주었다. 보고싶지 않은 가짜 얼굴들만 계속 마주하게 됐다. 유대와 신뢰는 사라지고, 의심과 경계가 늘었다. 알 수 없는 소문만이 생기를 가지고 차고 넘쳤다. 이렇게 사람들이 떠나게 되면 결국 고요해진 마을에 나와 랑이만 남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것대로 퍽 괜찮겠다. 실없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배달을 마치고 건물을 나와 모퉁이를 도는데 어스름한 저녁 공기 사이로 소란이 느껴졌다.
랑이네 집. 그쪽에서 비명이 퍼졌다. 랑이도 함께 사는 형제들이 자꾸만 밤만 되면 슬쩍 슬쩍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 같다며 언젠가 걱정 섞인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스쳤다. 다행히 랑이는 다치지 않았지만 몹시 지쳐보였다. 상황이 마무리된 뒤에도, 강도가 든 이유를 알게 된 이후에도 랑이는 계속 그러했다. 일하며 들었던 수많은 소문의 주인공이 돌고 돌아 랑이가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게 끔찍했다. 며칠 동안 일을 쉬고 랑이와 함께 지냈다. 하루가 다르게 점차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결국 몇 년만에 큰 비가 내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기간만에 태풍이 몰려왔다. 심상치 않게 며칠 동안 내린 비에 사람들은 다시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고 간만에 동네가 조용했다. 랑이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바람이 점차 거세지고 빗줄기가 무서운 속도로 방 안쪽까지 들이닥쳤지만 랑이는 줄곧 창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다가 별안간 밖에 나가 걷자고 말했다.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동네를 둘이 나란히 걸었다. 세상에 둘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축축한 상태로 걷다 보니, 빛나는 산 근처까지 왔다. 이제 산은 꽤 크게 잘 보였다. 상상처럼 산은 비에 젖지 않았다. 그때였다. 꼿꼿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심한 돌풍이 연달아 불었고, 산은 양옆으로 일렁이더니 흙과 연결된 부분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와 맞잡지 않은, 랑이의 다른 쪽 손가락이 분주해졌다. 가장 강한 돌풍이 휙 불자 놀랍게도 산은 포개어진 형태에서 옆으로 뒤집혀 들렸다. 랑이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산의 안쪽을 보게 되었다. 그것의 안쪽은 텅 비어있었다. 그제야 산을 바라볼 때마다 느꼈던 이질감이 설명되었다. 엎어진 컵처럼, 원래부터 그 안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 어쩌면, 어쩌면 처음부터 신의 선물 같은 건 없었을지도 몰라.
그것은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사라져갔다. 처음 생겨났을 때와 같이 순식간에, 그리고 비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밤마다 몰려든 걸 깔보듯 가볍게 날아가는 저 텅 빈 것을 올려다보며, 문득 파다했던 소문은 쉽게 날아가지 않았을 것 같다는 감각이 스쳤다. 비는 멈추고, 혼란하던 마을은 곧 다시 조용해질 테다. 앞으로도 퇴근 후에는 랑이와 종종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지. 하지만 우리가 딛고 살아가는 곳이 이전과 같은 공간일까. 어쩌면 세상은 바뀌어버렸을지도.
글 편집위원 연자 (candella9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