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4호 11화

비로그 #3

아리

by 연희관 공일오비


F유형은 공감을 중시하지만 T유형은 이성적 조언에 능하다.

누군가 ‘나 너무 우울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어’라는 식의 황당한 말을 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은 둘로 나뉜다. 당신이 F유형이라면, 무얼 마셨는지는 나중 문제고 ‘우울함’이라는 감정에 위로 또는 공감의 말을 전할 것이다. 반대로 T유형의 사람이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걸 마셔봐’, 또는 ‘우울한데 아메리카노를 왜 마셔?’라며 둘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살피는 이성적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


일상이 잠시 멈춘 듯했던 2020년 한 해 동안, 우리의 공간과 대화를 가득 점한 ‘핫이슈’ 중 하나로 MBTI를 빼놓을 수 없을 테다. MBTI 성격유형검사 결과에 따라 가상의 상황에서 달리 나타나는 반응을 꽤나 유쾌한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을 시작으로(정말로 위의 상황은 MBTI과몰입에 빠진 이들이 대표적으로 제시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성격분류에 꽃 이름, 과자 이름, 동물 이름을 붙인 각종 리메이크(?)도 탄생했다. 심지어는 성격검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향수, 데이트코스, 선물을 추천해주는 마케팅 전략도 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MBTI는 순수하게 ‘인간의 성격 유형’에 흥미를 가지는 준 심리학자들의 이야기소재를 넘어, 많은 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근래에는 학업, 식습관, 연락, 연애 등 온갖 영역에서 MBTI를 대입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누군가는 MBTI 냄새만 맡아도 이마를 탁 치며 “엠비티아이 얘기는 지긋지긋하다”고 외치고, “MBTI 과몰입은 정말 보고싶지 않다”는 한탄이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짓거나 별자리로 운명을 예측하는 점성학과는 달리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지금의 나는 MBTI 과몰입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지만,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인간의 성격을 둘로 나눌 수는 없다’는 지론 아래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복잡하고 이리저리 뒤엉킨 인간의 특성을 어떻게 두 가지 유형으로 똑 나누어 설명한단 말인가. 또 왕왕 발견되는 극단적인 과몰입 사례들 - 누군가의 행동을 MBTI 유형의 특성으로 특정하거나 모든 상황을 성격유형에 끼워 맞추려는 모습 – 은 반발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ISFJ가 모든 성격 유형 중 가장 매력 없는 성격유형에 해당한다는 (근거 없는) 인스타 게시물을 보고는 MBTI를 영영 믿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내가 ISFJ거든..


그러던 중,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숱한 갈등을 겪어 온 친동생과의 관계에 이를 적용해보기 시작하면서 점차 이 ‘유사과학’의 맹신자로 돌변해갔다. MBTI성격유형검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ISFJ, 동생은 ENTP이다. 모든 요소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우리 둘이 너무나 다르고, 그렇기에 여러 방면에서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태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MBTI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과정은 분명히 이전의 것들과 다른 측면이 있었다. ‘저녀석은 역시 나랑 너무 달라’, 하며 분노하고 절망하며 단념하기 일쑤였던 내가 서로의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들에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떠한 상황을 가정하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반응을 확인하는 과정은, 이전의 숱한 싸움을 통해 좁혀지지 않았던 어떤 간극을 좀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해소하는 과정으로 다가왔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성격유형 결과를 공유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의 차이들에서 흥미를 느끼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 조금 더 애를 쓰는 모습들은 다른 친구들 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자주 발견된다는 점이다. 미움과 갈등에서 끝났던 상황과 대화들이,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낙관일까.


MBTI의 특성이나 그것이 보여준 새로운 소통방식들을 마냥 낙관하고만 싶은 것은 아니다. 우선 가장 보편화된 검사이자 MBTI 자체와 등치되곤 하는 인터넷 상의 무료 검사(‘16personalities’)는 칼 융의 이론과 BIG5라는 성격심리학적 모형에서의 다섯 가지 요인을 차용한 것으로, 우리가 곳곳에 천명하는 mbti 성격 유형은 순수하게 MBTI이론에만 의거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한국판 검사의 경우에는 오역이 잦고, 문항 수도 원래의 것보다 적다는 점에서 무한한 신뢰를 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MBTI를 구성하는 4가지 성격의 차원들이 이분법을 전제한다는 점은 여전히 경계햐야 할 부분이다. MBTI에서 두 가지 구분 사이에 우열을 전제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역사 속의 모든 이분법은 사회가 규정한 주류 가치와 이념에 부합하는 ‘정상’의 것들과 그렇지 않은 ‘비정상’의 존재들을 규정해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나의 걱정을 기우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인간의 ‘타고난 성향’을 전제하여 변화가능성을 차단하는 것과,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가능한 반응을 두 가지로 특정하는 것, 16가지의 성격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나를 비롯한 MBTI 과몰입쟁이들도 겸허히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MBTI에 그토록 과몰입하고, 대화 소재가 떨어질 때마다 서로의 MBTI를 묻기에 여념이 없으며, 성격유형에 기반한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는 모습들에서 조그마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거부감을 느끼고 소통을 단념하기보다, 서로의 묘한 비슷함과 다름에서 재미를 느끼는 모습들은 정말 희망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MBTI를 활용한 우리의 대화가 단순히 인간의 성격을 유형화하거나 구분을 견고히 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고, 서로의 다양한 차이들을 발견하고 궁금해하는 모습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싶다. 서로에 대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반응과 행동에 대한, 다채롭게 존재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성격에 대한 이해들이 소복소복 쌓여 “난 이런데, 넌 어때?”라는 이야기가 좀 더 쉽게 흘러나올 수 있다고 대충 넘겨짚고 싶다. 이러한 경험이 늘어가면서, 성격을 넘어 서로의 삶과 다양성에 대해 궁금해하고 알아갈 수 있는 모습을 기대하고 싶다. 이토록 대책없는 희망을 갖는 것 또한 나의 유구한 MBTI 과몰입의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아주 많이 들지만, 결국엔 실망하고 돌아서더라도 무턱대고 희망을 걸어보는 게 ISFJ의 특징이다! ㅋ




편집위원 아리(ououp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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