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유나이티드를 이끈 아르헨티나의 광인
[ 프리미어리그 감독 열전 ] 네 번째 편의 주인공은 2018-19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의 승격을 이끌고 자신만의 독특하고 집착적인 축구철학을 프리미어리그에서 증명시켜보려했던 ' 마르셀로 비엘사 ' 감독이다. 과르디올라는 왜 비엘사의 전술 철학에 감명을 받았으며, 그는 EPL에서 어떤 축구를 보여주었을까?
마르셀로 비엘사 / 리즈 유나이티드
1955년생, 70세의 노령이지만 현재까지도 우루과이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 중인 비엘사 감독. 그는 왜 남미 최고의 전술가라고 불렸고, 과르디올라는 그로부터 무엇을 배우려고 했을까? 그렇다면 비엘사는 리즈 유나이티드 부임 전 어떤 커리어를 가진 감독이었고, 어떤 전술을 구사하였는지부터 알아보자.
" 그는 역대 최고의 감독들 중 하나 " - 펩 과르디올라 -
비엘사는 1990년 CA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당시 아르헨티나 리그의 양강체제를 부수며 리그에 강한 인상을 남겼고, 199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준우승시켰다. 이 과정에서 비엘사는 ' 메노티즘 ' 의 신봉자가 되어간다. 이후 1998년 조국 아르헨티나 축구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고, 2001년에는 올해의 국가대표팀 감독에도 오르게된다. 하지만 2002 한일월드컵에서 잉글랜드/나이지리아/스웨덴과의 조별예선에서 1승 1무 1패로 탈락한다. 그러나 이후 2004년까지 감독직을 유지했고 코파 아메리카 준우승,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등의 업적을 남긴다.
*메노티즘이란 무엇인가? 아르헨티나의 감독 ' 세자르 메노티 ' 의 이름을 따온 축구철학으로 축구는 공격적으로, 창의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노티의 철학은 1978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모습을 통해 알수 있다. 4-3-3 포메이션을 펼쳤던 당시 아르헨티나는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했고, 수비보다는 공격 중심의 점유축구를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미드필더와 공격진의 창의성을 존중했고, 스트라이커 마리오 캠페스는 특정 위치나 역할에 얽메이지 않고 본인만의 공격리듬을 살려 플레이를 했다.
메노티즘의 반대편에는 빌라르디즘이 있다. 1986 월드컵 당시 마라도나를 앞세워 우승을 달성한 카를로스 빌라도스 감독의 철학인 빌라르디즘은 실용주의적 노선으로 철저한 역할 분담으로 조직적인 축구를 하며 승리 그 자체에 집착하는 축구를 추구했다. 마르셀로 비엘사는 이 중 메노티즘의 신봉자였다.
이후 칠레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2010 월드컵 16강을 견인했고, 2011-12 시즌에는 스페인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직에 오른다. 그의 철학적 색채가 뚜렷했던 빌바오에서의 전술을 알아보자.
[ 아틀레틱 빌바오 / 비엘사의 전술혁명 ]
2011년 마르셀로 비엘사가 빌바오의 감독으로 부임했을때 많은 팬들은 반신반의한 반응을 보였다. 이유는 비엘사의 이전까지의 유럽 커리어는 에스파뇰에서의 1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엘사는 첫 시즌 그러한 반응을 100% 뒤집어놓았다. 그는 빌바오의 ' 바스크 순혈주의 ' 를 받아드리면서도 3-3-1-3 포메이션을 유럽축구에 이식하려고 했다.
비엘사의 빌바오 공격 전술은 조직적 구조 속의 자유로운 움직임이라는 역설 위에 세워졌다. 그 중심에는 3-3-1-3 포메이션과 빠른 전환, 위치 플레이, 전방 압박 후 재공격이라는 세 가지 원리가 있었다. 빌바오의 공격은 항상 후방 빌드업 > 중원 전개 > 전방 침투라는 3단계 과정을 거쳤다.
먼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려선 하비 마르티네스가 센터백처럼 내려와 빌드업의 첫 축을 담당했다. 그는 단순한 수비수가 아니라 플레이메이킹 센터백이었다. 이로써 빌바오는 3명의 수비수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후방 전개를 확보했다. 양쪽 풀백은 중앙선까지 전진해 폭을 넓히고, 상대의 측면 압박을 분산시켰다. 이후 안데르 에레라가 하프스페이스에 위치해 후방과 전방을 연결하는 ‘엔간체’ 역할을 수행했다. 에레라는 공을 받으면 곧바로 전진 패스를 시도하거나, 좌우 윙어에게 각을 열어주는 짧은 원터치 패스를 구사했다. 이 순간이 비엘사식 공격의 핵심이었다. 공의 속도보다 공간 점유의 리듬이 중요했다.
양쪽 윙어 무니아인과 수사에타는 측면에 붙는 전통적 윙어가 아니라, 안쪽으로 좁혀 들어가는 인버티드 윙어였다. 그들이 중앙으로 파고들면 풀백이 바깥을 오버래핑하며, 공격 폭을 유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삼각 구조(풀백–에레라–윙어)는 상대 수비 라인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며, 중앙에 공간을 창출했다.
최전방의 페르난도 요렌테는 전형적인 타깃맨이지만, 단순한 피니셔가 아니었다. 사자왕이라는 별명의 요렌테는 후방 빌드업 시 2선으로 내려와 ‘포스트 플레이’를 통해 볼을 지탱하고, 에레라나 무니아인에게 원터치 리턴을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빌바오의 공격은 3-3-1-3 형태에서 3-2-4-1로 일시적으로 변형되며, 전방에 숫자적와 위치적 우위를 동시에 형성했다. 비엘사의 빌바오는 전환 속도가 매우 빨랐다. 공을 탈취하는 순간, 가장 가까운 3명이 전방으로 즉시 전진했고, 나머지는 그 삼각형을 지원하며 연쇄적으로 전진했다. 이때 패스는 단 2~3번이면 상대 박스 근처로 도달했다. 즉, 점유가 목적이 아닌, 전진이 목적인 점유축구였다.
결국 비엘사의 빌바오 공격은 정형화된 패턴이 아닌, 위치와 타이밍의 언어로 짜인 자동 플레이였다. 모든 선수는 자신이 아닌 공간이 주인인 시스템 안에서 움직였고, 그 결과 빌바오는 유럽의 어떤 강호보다도 빠르고 유기적인 공격 전개를 보여주었다.
비엘사의 빌바오 수비는 전통적인 라인 수비가 아닌, 전원 맨마킹을 기반으로 한 능동적 탈취 시스템이었다. 그는 수비를 공을 되찾는 공격 행위로 정의했으며, 빌바오의 모든 필드 플레이어는 상대의 포지션이 아닌 상대 선수를 기준으로 수비했다.
빌바오는 일반적으로 하비 마르티네스를 중심으로 한 3-1 라인 수비를 유지했다. 하비는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를 오가며 라인을 조정했고, 좌우 풀백은 상대 윙어를 전담했다. 미드필더들은 상대 중원에 밀착하여 전방 압박을 유도했으며, 공이 중앙으로 들어올 경우 안데르 에레라가 즉시 전진 압박을 걸었다. 이로 인해 상대는 빌드업이 차단되고, 롱패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 간격은 매우 압축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해 세컨볼 회수율을 극대화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조직적 커버였다. 만약 한 선수가 압박 실패 시, 후방 라인 전체가 슬라이드 이동하며 즉시 보완했다. 두 중앙 미드필더는 전진적 수비로 상대 롱볼을 차단했고, 풀백들은 높이 올라가 상대 윙을 미리 견제했다. 결과적으로 빌바오의 수비는 단순히 막는 구조가 아니라, 공간을 공격적으로 줄이며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압박형 방어 시스템이었다.
*빌바오의 이런 축구가 가장 빛을 보인 경기는 유로파리그 맨유와의 16강 1차전이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웨인 루니의 선제골이 터졌지만 빌바오는 맨유의 수비진에 1대1로 강한 압박을 붙었고,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맨유는 빌드업 체계가 붕괴되며 내리 3골을 내주게된다. 이어진 홈에서의 2차전에서는 더욱 더 높은 강도의 압박을 보여주었고, 이에 맨유가 최전방으로의 롱볼을 시도하자 중앙 미드필더들을 루니와 경합시켜 맨유의 시도들을 사전차단했다.
해당 시즌 빌바오는 코파 델레이와 유로파리그 모두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각각 FC바르셀로나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의 쓴 맛을 봐야했다. 이후 비엘사는 2012-13 시즌이 끝나고 성격부진으로 사임하고, 마르세유-라치오-릴을 거쳐 챔피언쉽의 리즈 유나이티드에 부임한다.
*아르헨티나의 광인은 라치오에서 부임 후 이틀만에 사임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유는 새로운 이적생들이 자신의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 리즈 유나이티드 ]
2018-19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는 4명의 차기 감독 후보를 꾸린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스티브 브루스, 마티아스 알메이다가 후보에 올랐지만 리즈는 비엘사를 선임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한다. 그렇다면 1부리그로 승격한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술은 어땠을까?
마르셀로 비엘사의 리즈 유나이티드는 빠른 전환, 높은 위치 점유, 유기적 패스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공격 전술을 구사했다. 기본 포메이션은 4-1-4-1이지만, 실제 경기 중에는 공격 시 3-3-1-3 형태로 전환되며, 이는 그의 전술 철학인 공격적 구조의 핵심이었다.
중심축은 칼빈 필립스로, 그는 빌드업 시 센터백 사이로 내려가 3백을 형성하며 안정된 후방 전개를 돕는다. 이를 통해 양쪽 풀백 달라스와 에일링은 전진해 폭을 넓히고, 공격 폭을 확보한다. 필립스의 패스 선택은 전진을 전제로 하며, 항상 라인을 끊는 세로 패스를 지향했다. 중앙에서는 미드필더 두 명이 하프스페이스에서 움직이며 전진 패스의 중계자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은 위치를 바꾸며 상대 중원을 교란시키고, 윙어 잭 해리슨과 코스타에게 빠르게 공을 연결해 측면에서 공격을 시작한다.
전방의 패트릭 뱀포드는 단순한 피니셔가 아니라, 공간을 여는 타깃맨으로서 2선 침투를 유도한다. 그는 수비 라인을 끌어내거나 볼을 지탱하며, 양 윙어가 안으로 좁혀 들어와 슈팅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 리즈의 공격은 볼을 오래 점유하기보다 속도와 구조에 집중했다. 패스 간격은 매우 좁은 폭으로 유지되어, 공을 잃더라도 즉시 압박해 재탈환할 수 있는 거리였다. 결과적으로 리즈의 공격은 3~4번의 패스만으로 박스 접근이 가능한 직선적 전개, 그리고 유기적 위치 교환을 통한 혼란 유발로 요약된다.
마르셀로 비엘사의 리즈 유나이티드 수비는 공격적이고 대인 마크 중심인 구조로, 수비는 공격의 시작이라는 철학이 반영되어 있었다. 즉, 상대의 움직임을 억제하기보다 공을 탈취하기 위한 적극적 방어가 핵심이었다.기본적으로 리즈는 4-1-4-1 형태로 수비하지만, 상황에 따라 3-3-1-3으로 전환된다. 중앙의 칼빈 필립스는 항상 수비와 미드필드 라인 사이에 위치하며, 상대 공격형 미드필더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2차 압박의 출발점 역할을 맡았다. 그의 포지셔닝은 리즈 수비의 안정성과 압박 타이밍을 모두 조율하는 중심축이었다.
비엘사식 수비의 핵심은 전원 맨마킹이다. 각 선수는 자신의 대응 상대를 지정받고, 상대가 움직이면 함께 따라간다. 이는 개인의 피지컬과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상대가 공을 소유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다. 라인 간격은 좁은 간격으로 압축되어 있어, 공이 중앙에 들어올 때 3~4명의 선수가 동시에 접근해 볼을 탈취했다.
또한 리즈는 압박의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했다. 즉, 상대를 측면으로 몰아넣어 압박을 가하거나, 롱패스를 유도해 공중볼 싸움으로 이끌었다. 이는 쿠퍼,코흐 등 공중 경합에 강한 센터백들이 이점을 가질 수 있게 했다.공을 빼앗기면 즉시 빠르게 재탈환을 시도했고, 성공하면 곧바로 공격 전환이 이루어졌다. 결국 리즈의 수비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공격적 탈환 시스템으로, 상대의 공격 리듬을 깨고 팀 전체의 에너지를 경기 전반에 걸쳐 유지시키는 구조였다.
리즈의 공격적이고 강한 압박을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은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고 전술적인 충격을 주었지만, 전술적 취약점 또한 존재했다. 리즈의 얇은 선수층과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선수단 퀄리티는 경기 중 상대가 로테이션을 자주 사용할 경우 공간이 쉽게 비게 되는 문제가 발생시켰다. 특히 하프스페이를 공략당할 때, 대인마킹 시스템은 대응이 늦어지며 중앙 수비수가 과도하게 끌려나가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라인 붕괴가 발생했고 , 실점이 늘었으며 패배가 쌓여갔다.
수비진의 과도한 체력부담으로 부상자가 늘어갔고, 이에 따른 큰 점수차의 패배가 늘어나며 2021-22 시즌 중반 비엘사는 경질된다. 그의 공격적 축구철학이 다시 한 번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냉정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맨시티의 과르디올라, 본머스의 이라올라 등, 비엘사의 전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감독들이 프리미어리그에 있다. EPL 무대에서 비엘사의 철학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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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새로운 거너스의 수장 ' 미켈 아르테타 '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