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Breeze May 18. 2023

단팥빵

엄마도 ‘아이’였지

우리 엄만 단팥빵을 좋아한다. 화려하고 맛있는 빵도 많은데 투박하고 평범한 단팥빵이 제일이라고 한다.


취향 한번 일관적이라 유명하고 비싼 음식을 사 드려도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더 맛있다고 하고 선물을 하면 이런 거 하지 말라고 말한다.

딸도 돈을 버니까 그냥 편하게 받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부담스러운가 보다.


어렸을 땐 엄마가 굉장한 어른이었는데 요즘엔 아이 같은 모습을 자주 발견한다. 함께 여행 가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할 때나, 꽃을 보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나, 어딜 다녀왔다며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이제 내가 점점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와 가까워진다. 옛날이면 진작에 결혼하고 사회에 일인분을 충분히 수행하던 나이지만 나는 아직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어떻게 이 나이에 그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는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엄마가 아이 같다고 느껴진 건 아마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 명의 인간으로서 엄마의 존재를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그때의 엄마도 좋아하는 것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겠지.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K-장녀라, 살가운 표현 대신 엄마가 좋아하는 작은 것들을 사간다. 꽃시장에서 철을 맞아 파릇파릇해진 예쁜 화분이라든지, 유명한 빵집의 단팥빵이라든지. 즐거워할 얼굴을 상상하며 조금은 멀어도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시간이 흘러도 부모라는 존재는 언제든 돌아가고 싶고 기대고 싶은 든든한 버팀목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아이 같은 모습이 의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팥이 가득 든 빵을 맛있게 먹는 엄마의 아이 같은 모습이 좋다.

엄마가 나한테 해줬던 것의 100%는 못하더라도 이젠 내가 엄마의 어른이 될 차례인 것 같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고요한 평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