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Breeze Nov 20. 2023

털뭉치

늙어 간다는 것은

사람도 머리빨이 있듯이 강아지도 털빨이 있다. 빵실 빵실한 둥근 얼굴도, 튼실해 보이는 다리도 털을 자르면 갸름한 얼굴이, 가냘파 보이는 다리가 드러난다. 털 쪘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요새 넌 털 쪘다는 말이 무색하게 털을 뿜고 다닌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내 방에도 털뭉치가 가을 낙엽 굴러가듯 떠돈다. 먼지인 줄 알고 주워보면 회색빛이 도는 갈색 털이다. 이런 털을 모으면 네 손바닥만 한 작은 쿠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푸들은 털이 잘 안 빠지는데 최근 들어 털을 잡는 힘이 약해졌나 보다.


너는 독특하게 수염처럼 턱 부분만 흰색 털이 있는데 점점 흰 털이 자라는 부분이 넓어지는 듯하다. 프린터의 잉크가 줄어들면서 글자가 연하게 인쇄되는 것처럼 네 안의 갈색 잉크가 점점 닳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네가 얼마나 진한 털을 갖고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여전히 어제 파마를 한 것처럼 컬이 살아 있고 어떻게 미용을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자유자재로 바뀐다. 털이 짧을 때든 길 때든 어느 옷도 다 잘 소화한다.


사람과 다르게 너는 늙어 가며 모습이 달라지는 것에 아쉬워하지도, 젊어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 순간의 자연스러움을 예쁘게 보여준다.

늙어간다는 것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너에게 배운다.



또한 다행이다. 아직까지 고집부릴 때 힘이 세서.

뛰어 다니는 다리의 힘이 약하지 않아서.

매거진의 이전글 난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