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존재
넌 겁이 많다.
근데 겁이 없었으면 우리가 가족이 되지 못했을 거다.
사실 푸들을 키울 계획은 없었다. 부모님이 어떤 강아지를 키우고 싶냐고 물었을 때 동생은 하얀 몰티즈를 키우고 싶어 했고 나는 다리가 짧은 닥스훈트나 활발한 비글을 키우고 싶어 했으니까.
지금은 입양을 해야 한다는 걸 아주 잘 알지만 그땐 지식이 없어서 펫샵을 갔었다. 엄마 말로는 깡총깡총 뛰면서 데려가라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 사이에서 구석퉁이에 위축되어 있는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명절 전이어서 연휴가 끝나고 강아지를 키울 계획이었지만 부모님은 그 강아지가 계속 눈에 밟혀서 집에 데려오셨다.
너는 치킨 박스보다 더 작은 갈색 박스에 담겨서 집에 왔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박스를 무서워한다. 지금까지도 싫어하는 걸 보면 유리창 안에 있었던 때가 많이 겁났던 것 같다.
상자 말고도 무서워하는 것들이 많다. 인형처럼 푹신한 것 말고 처음 보는 것들은 우선 피하고 본다. 간식을 넣은 오뚝이 장난감도 처음엔 이상하다고 꼬리를 내린 채 냄새만 맡았다. 가지고 노는 방법을 알려줘도 익숙해지기 전까지 한동안 거리 두기를 했더랬다.
밤에 산책을 나가는 것도 깜깜해서 무섭다고 볼일만 보고 나면 바로 집에 돌아가자고 엉덩이가 무거워진다.
다른 강아지들이 반가워서 짖으면서 다가오는 것도 부담스러워 도망간다. 같은 강아지인데 가끔 보면 자신이 강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람이 많은 것도 마찬가지. 오히려 자신을 보고 달아나는 고양이나 새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무서워서 자리를 비켜주는 게 아닐 텐데 고양이나 새를 쫓고 나면 어깨가 으쓱해져서 칭찬해 달라는 눈빛으로 뒤를 돌아본다.
이런 너도 씩씩할 때가 있는데 배달이 올 때다. 띵동 소리 만나면 누가 왔다고 힘차게 짖는다. 알았다고 이야기를 해도 낯선 사람이 왔다고 문 앞에 서서 웅얼거리며 말을 한다. 겁은 많아도 집 지키는 건 확실하다.
밖에서 숨던 모습은 어디 가고 집에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 기세등등하게 꼬리를 흔들며 용감해진다. 가장 약했던 점이 같이 있으면 강점으로 변한다.
네가 우릴 든든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많이 의지한다. 내 감정은 어떻게 눈치채는 건지 슬플 땐 먼저 다가와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지칠 땐 손과 얼굴을 핥으며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
겁쟁이라고 쭉 놀렸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인간관계에서 오는 상처가, 도전의 실패가 두려워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약점이지만 너에겐 다 털어놔도 괜찮을 것 같다. 똘망똘망 맑은 눈에 부모님이 마음을 뺏겼던 것처럼 검은콩 같은 까만 눈은 무슨 말이든 다 이해해 줄 수 있을 편안함이 담겼다.
넌 작고 여리지만 누군가를 보듬어 줄 수 있는 큰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