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간다는 것은
사람도 머리빨이 있듯이 강아지도 털빨이 있다. 빵실 빵실한 둥근 얼굴도, 튼실해 보이는 다리도 털을 자르면 갸름한 얼굴이, 가냘파 보이는 다리가 드러난다. 털 쪘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요새 넌 털 쪘다는 말이 무색하게 털을 뿜고 다닌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내 방에도 털뭉치가 가을 낙엽 굴러가듯 떠돈다. 먼지인 줄 알고 주워보면 회색빛이 도는 갈색 털이다. 이런 털을 모으면 네 손바닥만 한 작은 쿠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푸들은 털이 잘 안 빠지는데 최근 들어 털을 잡는 힘이 약해졌나 보다.
너는 독특하게 수염처럼 턱 부분만 흰색 털이 있는데 점점 흰 털이 자라는 부분이 넓어지는 듯하다. 프린터의 잉크가 줄어들면서 글자가 연하게 인쇄되는 것처럼 네 안의 갈색 잉크가 점점 닳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네가 얼마나 진한 털을 갖고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여전히 어제 파마를 한 것처럼 컬이 살아 있고 어떻게 미용을 하느냐에 따라 이미지가 자유자재로 바뀐다. 털이 짧을 때든 길 때든 어느 옷도 다 잘 소화한다.
사람과 다르게 너는 늙어 가며 모습이 달라지는 것에 아쉬워하지도, 젊어 보이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그 순간의 자연스러움을 예쁘게 보여준다.
늙어간다는 것이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을 담아내는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너에게 배운다.
또한 다행이다. 아직까지 고집부릴 때 힘이 세서.
뛰어 다니는 다리의 힘이 약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