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지.
코로나가 우리 집에도 드디어 상륙했다. 2년간 선방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어디서 걸려오신 건지, 내가 돌아다니며 나름 조심한다고 했지만 역시 허술함으로 당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태연자약하게 근거나 찾으며 골몰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내가 무증상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초에 며칠 기력이 없고 자꾸 자고 싶고 난데없이 뭐가 자꾸 먹고 싶어 우울감이 들었다. 그 전 한주를 열심히 걷기도 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의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빠르게 붕괴될 수 있다니,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자꾸 자고만 싶으니 열심히 잤고, 뭐가 자꾸 먹고 싶으니 난데없이 치킨도 당겼다가 피자도 시키고, 아--- 나는 왜 이렇게 자기 절제가 안 되는 걸까. 책을 펼쳐도 집중도 안되고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엄마도 나와 같이 몸살 기운이 있어서 판콜을 슈퍼에서 사 와 몇 통을 드셨는지 모르겠다. 왠지 판콜은 묘한 중독성이 있어 엄마가 드시면 나도 따라서 호로록 마시기를 며칠. 엄마 감기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졸지에 효녀가 되었다. 청소며 설거지, 안 하던 요리까지 해서 너무 아파서 우울하다는 엄마의 원기회복에 공을 들였지만 어째 점점 상황이 좋지 않았다.
불현듯, 코로나가 우리라고 피해 가겠냐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 자가 키트 한번 해보자.
아냐. 좀 있으면 없어져. 좀만 참으면 돼.
(검색 좀 하는척하다가) 엄마 코로나 확진자들 지원금 준대 한번 해보자.
지원금? 그래 하나 사 와봐.
겨우 엄마를 꼬셔서 진단키트로 엄마 코를 찌르는 데 성공했는데, 5분도 안되어 뜬 선명한 두줄...
나는 코로나 아니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엄마가 이렇게 아프다 하는 건 내가 평생 본 적이 없어, 엄마 코로나 맞아.
같은 집에서, 엄마 코 푼 휴지도 치워드리고 급하면 물컵도 같이 쓴 나는?
나는 왜 안 아프지?라는 생각 끝에 아마도 무증상일 것이라는 심증이 굳어졌다.
그 기운 없이 온갖 잡다한 번뇌에 시달리며 자고 또 자던 며칠이 증상의 다였던 것이다. 그 이삼일간, 나는 너무 불안했다. 가까스로 손에 넣은 귀한 일상의 조각들이 일거에 무너진 기분이 들었고, 몸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에 화가 났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데 가장 가까운 인물 둘, 엄마와 친한 친구에게 짜증도 버럭 내는 나를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자책감이 들었다.
긴밀하게 마음을 나누는 지인분께,
이게 나 자신에 국한된 문제구나 했어요.
라고 이야기를 하니,
서영쌤은 자책이 너무 쉬워요.
그럴 수 있죠 ~.
라고 답이 왔다.
코로나 확진일 것이다 생각을 하니 내가 굳이 자책할 것 까지는 없었구나 싶기도 하지만, 저 이야기를 나눌 때의 시점은 내가 아픈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도 모르던 때였기에 뜨끔한 마음이 지나갔다.
내 책임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럴 수도 있다는 말.
그럴 수도 있다는 말.
그럴 수도 있다. 마치 번호키를 알려줬는데, 자물쇠가 어디 있는지, 어디를 열라고 하는 것인지 도통 어리둥절 어벙해진 느낌이다. 너무나 쉬운 한국말인데 나에게는 마치 수수께끼를 한 개 얻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