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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서 May 01. 2022

일주일 산책 결산

신발 신기가 어렵지 않으면 밖으로 튀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

일주일 간의 걷기. 나는 그 길 위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요즘 나는 걷기에 진심이 되었다. 오늘로서 일주일이 되었다. 일주일치 걷기의 결산을 내어 적어보려고 한다. 일단, 처음은 참 고되었다. 집을 나와서 바로 보이는 언덕을 (꽤 높다. 눈이 내리면 차가 올라가지 못할 정도는 되는) 힘겹게 올라가면 항상 했던 생각이 있다.


'아... 내가 왜 또 나왔지.' 그러나 그 작은 장벽을 넘기면 새로운 감각들이 나를 깨운다. 아직은 선선한 바람. 약간 몰아쉬는 숨날에 들어오는 산 공기. 두리번거리게 되는 약간 더 넓어진 시야. 또 나왔구나, 하고 나 자신에게 뿌듯한 마음에 히죽 웃게 되는 얼굴 근육 풀림 현상까지.


우리 집은 야트막한 고지대에 있어서 집 밖은 나가면 바로 낮은 산이 보인다. 집안에 있어도 늦은 오후 나절까지 새들이 어찌 열심히 예쁘게 지저귀는지. 사실 우리 집은 3면이 산 공기 환기가 가능하다는 것 이외에도 채광 때문에 선택한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새들의 오케스트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은 사실 하지 않았더랬다.


집에서 그 소리가 음- 마치 라디오처럼 들린다면, 집 밖으로 나가자면 콘서트 홀에 초대받은 느낌이 된다.


얕은 산자락 맞닿은 동네 뒷길을 걷다 보면 어르신들이(아마도) 비탈에 일구어 놓으신 작물들이 보인다. 파도 심겨 있고, 이름 모를 풀들이 정갈하게 심겨 있는 것을 보자면 무언가 먹는 것이 확실한 것이다. 생각보다 오르기 힘든 비탈에 흙을 떠내려가지 않게 깎아 다진 그 다부진 밭이랑이 '부지런함'이라는 단어를 시각화해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매번 감탄하며 쭉 일자로 이어진 그 길을 걸으며 아카시아인가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청량한 향기를 맡는다. 봄 산책의 특권일 것이다.


길의 마지막 모퉁이에는 작고 예쁜 주택이 있다. 이전에는 꽤 큰 개를 집에서 키웠던 것 같은데. 우리 개 두 마리를 산책시킬 때면 꼭 그 집 담장 대문 안에 존재하는 어떤 개를 상대로 우리 오복이가 마구 짖고는 했다. 물론 그 개도 응수를 했는데, 짖는 소리의 울림이 장난 없는 걸 보아하면 꽤 덩치가 큰 개인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오복이의 공허한 도발에도 마주하는 개의 소리가 없다. 그 (상상 속의) 큰 개는 어디로 간 것일까? 붉은 집 대문을 보며 어김없이 그 생각에 빠져 코너를 돌아간다.


신도시로 나있는 길에는 어여쁜 야생화들이 그득하다. 어제는 마치 반짝이는 귀고리 같은 작은 보랏빛 야생화를 보았는데, 한참을 서서 조심스럽게 꽃 머리를 만져보았다. 어찌 이리 예쁘지? 마치 사실 세상에서 가장 이쁜 존재는 그 무엇도 아닌 나라며 새침하게 군락을 지어 피어있는 그 생명에게 그저 미소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너는 참 아름답구나.


쭉 걸어가다 보면 중학교 하나가, 조금 지나 초등학교 하나가 연달아 나타나는데, 시간이 시간인 듯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음에도 학교는 인적의 자취 없이 싸늘하다. 왠지 아이들의 깔깔댐이 유령의 그림자처럼 지나가듯 하교 후의 학교는 애잔하게 다가온다.


걷고 또 걸어 구시가지를 통과해 신시가지에 다다르면, 간혹 지나다니는 산책인들과 모자와 마스크 뒤에 숨어 무심히 지나치고 줄줄이 서있는 아파트들 너머 저수지가 있는 곳에 다다른다.


그  직전에 큰 스타벅스 DT점이 있는데, 얼마나 조명이 찬란한지. 오전 7시부터 저력 9시까지는 마치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란 듯 위용을 뽐내며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 장사가 잘되는 집이다. 언제나 꽤 넓은 주차장은 한 두세 칸을 남기고 만석이며 통유리 안에 휴식과 수다를 하며 앉아 있는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마치 컬러 무성영화처럼 지나가지만, 나는 그곳을 마지막 지점으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도 여기까지 온 딱 그마만치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익숙하고 안온한 동네 길을 밟고 있겠지.


항상 비슷하지만  새로운 산책을 일주일간 반복하고 오늘은 일요일. 모두가 새로울 한주를 준비하며 쉬는 날이다. 약간의 신체적 피로감이 느껴져 하루 종일 집에 머무는 일요일을 보냈다. 대략 하루의 반은 잠옷조차 갈아입지 않고 널브러져 있다 옷을 겨우 주섬주섬 바꿔 입고 책상에 앉았다.


갑자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금의 게으름에도 때가 끼는 게 느껴진다. 고인 것에는 생생한 향기가 나지 않는다. 고이지 않아야 한다. 쉼도 흘러야 한다. 오늘 나의 쉼은 고임이었던가 흐름이었던가?


만일 전자였다면, 지금, 선택해야 한다. 매 순간 발생하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언제나 생을 택하는 훈련을 해왔다. 그 선택이 자동반사적인 것이 되는 순간을 위해서. 그 순간이 영원히 오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매 순간 애쓸 것이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목적과 의무일 것이므로.


그래서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커서가 남겨가는 단어들과 문장들을 보니 왠지 내 눈앞에 존재하던 커다란 벽에 사실 문이 나있었음을, 그저 약간 힘을 주어 밀면 되는 것이었음을 느낀다. 아마도 다시 어떤 장벽을 마주하겠지. 그래도 그때는 내가 내 눈을 스스로 가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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