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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Jun 06. 2023

분명 마음이 달라진 거다

시아버지 생신 기념

      

시아버지 생신날이 다가와서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했다. 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신다. 며칠 전부터 남편과 어떤 음식을 사 드릴까 고민했다. 우리 집 가까운 곳에는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이 있다. 그 동네에 옛날식 불고기를 파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모시기로 했다. 코로나로 밖에서 식사하지 못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하는 외식이다.      


남편, 아이들과 시가로 가서 시부모님을 모시러 갔다. 아버지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신다.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가게에 들러 여러 맛이 들어있으며 하나씩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샀다. 아버지의 연세에 맞는 숫자 초도 샀다. 언젠가부터 케이크에 숫자 초를 꽂아 드렸는데 부모님들이 좋아하셔서 늘 숫자 초로 사 간다. 케이크에 꽂힌 숫자 초를 보고 “내가 벌써 이렇게 나이가 먹었나?”라며 아버지는 겸연쩍어하신다. 내가 결혼했을 때 아버지는 60대였는데 내년이면 벌써 팔순이 되신다. 예전엔 케이크 위에 켜진 촛불을 단번에 끄셨는데 숫자 두 개만 켜져 있는 초도 이제 여러 번 후후 불어 끄신다. 세월의 무색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낱개로 떼어낼 수 있게 나누어진 케이크를 하나씩 똑똑 떼어다 먹고 집을 나섰다. 시부모님은 아들, 며느리, 손녀들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가는 기분이라며 행복해하셨다. 식당에 도착해서 충분한 양을 주문했다. 주문한 고기가 나오자 입이 떡 벌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양이 엄청 많았다. 고기로만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몇 개월 동안 치과 치료로 잘 드시지 못했던 어머니도 맛있게 드셨다. 치과 치료가 다 끝난 줄 알고 고깃집에 갔는데 치과 치료가 아직 세 번이 남았다고 하셨다. 다행히 고기가 매우 부드러워서 어머니가 드시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경치가 좋은 커피숍을 검색해서 자리를 이동했다. 어른들은 자식들이 모시고 가지 않으면 커피숍을 잘 가지 않는다. 노후에 친구들과 풍경 좋은 커피숍에서 재미난 이야기 나누며 즐기셔도 될 텐데 돈이 아까워서 못한다고 하신다. 

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 커피숍에 갔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들이 몇몇 모여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였다. 요즘 ‘노시니어 존’이라는 말로 나이 드신 분들의 출입을 막는 커피숍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진상 손님들 때문에 좋은 어른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커피숍 안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창밖으로 넓고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연신 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으셨다. 배가 너무 불러서 음료수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마시니 또 쭉쭉 들어갔다. 정말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사진을 찍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외식을 삼갔는데 앞으로는 자주 모시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부모님은 시부모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느새 아버지, 어머니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모든 순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점점 시부모님의 나이 듦에 서글퍼지는 걸 보면 분명 마음이 달라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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