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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미 Jun 14. 2023

아이를 키우는 일은 때론 치사하고, 때론 별스럽다.

소동 한바탕


수요일이라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니 서늘함이 느껴져서 집에 오니 달달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평소에 좋아하던 ‘오사쯔’를 뜯어서 그릇에 조금 덜고, 토마토 주스를 컵에 따라 두었다. 딸들에게 과자를 같이 먹겠냐고 물었다. 큰딸은 먹겠다고 해서 같이 식탁에 앉았고, 둘째 딸은 방 안에서 먹지 않겠다고 대답하고 숙제를 하는 모양이었다. 큰딸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오사쯔를 하나 입에 넣는 순간, 방에서 숙제하고 있던 둘째 딸이 나와 성큼성큼 나를 향해 걸어왔다. 걸어오는 소리부터가 뭔가 묵직한 것이 손에 든 오사쯔 한 알을 입에 넣을 타이밍을 놓쳤다.


“으앙~~~ 으허헝~~”


둘째 딸이 빨갛고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나타났다. 큰딸과 나는 순간 놀라서 타이밍을 놓쳐버린 오사쯔를 집어던지다시피 하고 둘째 딸을 바라보았다.


“학... 교...에...서”

둘째는 울음을 삼키며 말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진정, 진정, 진정하고 말해 봐. 빨리 말 안 해도 돼. 천천히, 천천히.”

둘째 딸은 앙앙 소리를 내며 크게 울어 대더니 조금 안정이 되자 말을 이어갔다.


“우리 반에 박땡땡이라는 남자애가 있는데, 그 애가 자꾸 내 가방을 뒤져. 내 가방 뒤져서 내 필통을 가져가. 그리고 프린트 같은 걸로 자꾸 내 머리를 때려. 너무 자존심 상해.”


조금 진정했나 싶었더니 말을 쏟아내고 나서 또 앙앙 울었다. 둘째 딸은 자존심이 매우 센 아이다. 첫째도 자존심이 상하면 안 되고, 둘째도 자존심이 상하면 안 된다. 박땡땡이라는 아이의 행동에서 자존심이 상했거나 뭔가 큰 창피함을 당했던 일이 있었지 싶어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친구가 너를 창피하게 한 일이 있어?”


그러더니 또 앙~ 하고 운다. 그러더니 한참을 쉬었다가 또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생리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 둘째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학교에 있을 때 갑자기 놀라운 손님이 찾아올까 봐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예비용으로 가방에 넣고 다니게 했다. 아직 놀라운 손님을 반갑게 맞을 시기는 아니어서 까만 봉지에 잘 싸서 가방에 넣어 주었다. 평소에는 가방을 뒤져도 하지 말라고 잠시 화를 내고 말았는데 오늘은 그 아이가 그 까만 봉지를 아이 가방에서 꺼낸 모양이다. 아이는 그 까만 봉지 안의 내용물이 공개될까 봐 꽤 두려웠던 거 같다.


그 아이가 가방 안을 열어보는 게 언제부터였는지 물어보니 일주일쯤 되었다고 했다. 아이의 물건이 없어지거나 그 아이가 악의를 가지고 한 건 아니지만 곧 사춘기가 시작되는 여학생의 가방을 함부로 뒤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그 남학생은 모르는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통화가 가능한지 문자를 보냈다. 30분쯤 뒤에 아이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내일 따끔하게 주의를 주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더 어렸다면 “그 애가 너 좋아해서 그런가 봐”하며 웃으며 넘길 일이지만 사춘기가 시작되는 아이라 더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 큰딸이 5학년 때는 이런 일로 선생님께 전화를 걸 일이 없었는데 둘째 때는 이런 일을 겪어 본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때론 치사하고, 때론 별스럽다. 내가 이상한 부모가 되는 것 같아서 민망스럽기도 하고, 해야 할 말은 해야지 싶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요즘 학교 폭력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도 많으니 아이가 하는 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큰딸 때와는 또 다르다는 느낌이다. 중3인 큰딸은 큰딸대로 모른 척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둘째 딸은 둘째 딸대로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어렵고 복잡하다. 박땡땡이라는 아이가 내일 담임 선생님께 꾸중 들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한편으론 장난을 하는 사람과 장난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니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그냥 내 아이의 마음이 덜 상하도록 해주는 게 가장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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