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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un 12. 2024

뉴욕 좋좋소 체험기

*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좋은 회사

때는 2013년, 앳된 목소리의 인터뷰어는 나와 인터뷰 내내 질문은 않고, 마치 내가 쇼미더머니 심사위원인 마냥 이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속사포로 설교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터뷰인지 스타트업 데모데인지 헷갈릴 무렵, 그는 회사 위치가 참 좋다며 당장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라고 했다.


맨해튼 23번가와 브로드웨이가 맞물리는 곳에 비대한 다리미같이 생긴 플랫 아이언 빌딩이 있다. 그 빌딩이 홈페이지에 떡하니 있네. 당시 순수한 청년이던 필자는 오 ‘이 빌딩이 회사건물이구나’ 했다. 웹사이트에 회사 주소조차 없었으니까. 그러며 인터뷰어 왈:


"무급 인턴이야. 괜찮지?"


아무튼 그때 난 뉴욕에 가보고 싶어서 잽싸게 승낙했다.

"네 괜찮아요."


첫날이었다. 출근 30분 전 플랫 아이언 빌딩에 도착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어떤 걸쭉한 뉴욕 악센트의 흑인 아저씨가 전화를 받았다.


“뭐땜시 전화한 겨? 아직 영업시간 아니여!”


오늘 시작하는 인턴인데 입구를 못 찾겠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저씨 왈:

 

“그 건물을... 잘못 찾아간 것 같은디? 거기 아니고, 그 쫌 몇 블록 들어가면 4층짜리 아파트가 있는디...입구 엘리베이터 타고 3층에서 내리소. “


내 귀를 한번 후볐다.

“아파트라고요?”
“어, 아파트여, 아파트!”

아, 뉴욕에서는 상가건물을 아파트라고 하나 봐. 애써 침착했다. 도착하니 외형은 1920년대 위대한 개츠비에 나올법한 건물이었다. '다행히 관리는 잘 되어 있군' 애써 위로하며 가슴을 한 번 쓸고 3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대략 70여 평 정도 되는 공간이었는데, 안내데스크를 기준으로 왼쪽 크게 트인 거실을 전체 사무실로 개조해 쓰고, 3개의 방은 각각 작은 회의실로 보였다.


전화로 인사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한 손엔 벤티 사이즈의 아르고 티 (Argo Tea) 녹차를 들고 있었고, 뉴욕 메츠 캡을 이마가 훤히 보이게 올려 썼으며, 윌 스미스 턱수염과 거대한 근육질을 가진 인상 좋은 아저씨였다. 그는 자신을 빌딩 관리인 토미라고 소개했고, 우린 힘찬 악수를 나눴다.


“사장님 좀 있으면 오실 거여. 저기서 기다려.”


그는 족히 1L는 되어 보이는 녹차 컵을 안내데스크에 내려놓고 총총 사라졌다. 나는 녹차를 한참 쳐다보며 빨리 사장실로 소환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10분 지났을까.


딩동-소리와 함께, 60대는 족히 넘었을 살짝 구부정한 목에 시퍼런 안광을 쏘아내는 단발의 여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나타났다. 그녀는 샤넬 백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화려한 목걸이를 하고, 핑크색 블라우스에 광태가 철철 나는 검정 정장을 입었다.

“토미, 토미! 내 녹차 어디 있어?”

그녀는 하루이틀이 아닌 듯 샤우팅을 날렸다. 그러자 허둥지둥 달려오는 토미. 멀뚱히 안내데스크와 거실 사이에 기대어 있는 나. 그리고 그제야 나를 발견한 과격하게 엘레강스한 이분.


토미 아저씨가 헉헉대며 말했다.


“신입 인턴이여유. 그리고 녹차는 자리에 놔뒀어유.”


그렇다, 놀랍지만 사장님이었다. 그리고 그 안내 데스크가 사장님 집무실이라는 사실이 뒤통수를 누가 세게 프라이팬으로 갈긴 느낌이었다.


토미는 내 자리로 안내해 주었다. 20여 평 남짓의 거실 가운데 긴 책상 두 대를 붙여 그 양방으로 사람들이 4명씩 다닥다닥 앉는 구조였다. 창가에는 두 대의 컴퓨터가 별도의 책상과 함께 놓여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타 (Rita/가명).


리사장은 1970년대 20대 중반 당시 맨해튼 최고 사립대에서 심리학 박사를 마치고, 시티은행에 입사했다. 이후 30대 초반의 나이로 시티은행 본사 여성 임원자리에 올랐다. 당시 소비심리학에 기반한 마케팅 기법이 주목받자 그녀는 소비자 조사가 시대적 기회라고 판단했다. MBA를 마치고 그녀는 마케팅 회사를 세웠다.


왕년에 그녀는 최연소 ‘00’ 타이틀이 많아서 꽤 유용했단다. 이를 이용해 프록터 앤 갬블 등 미국 유수 소비재 및 의약 기업에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해주며 돈을 대차게 벌었다고. ‘내 밑에서 잘 따라오면 돈은 굴러 들어온다’며 호통하게 웃으셨다.


30여 년이 지난 2013년, 그녀는 회사는 입소스, 닐슨리서치 같은 대형 조사 회사가 고용하는 조사업무 대행 협력업체로 전락했다. 연 수익의 90% 이상이 좌담회, 설문조사 막일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탈을 쓴 공장이었다.


어느덧 그녀의 의식의 흐름은 자신이 보유한 부동산에 가 있었고, 나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열심히 경청했다. 그녀는 5번대로(Fifth avenue)에 위치한 트럼프 타워 최고층에 살고 있다며 미소와 함께 액자에 걸어놓은 도널드 트럼프와 악수하는 사진을 가리켰다. 한 채당 50억에 달하는 콘도형 아파트 두 채를 매수한 후 외벽을 뚫어 확장공사를 했는데,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파티를 여니 너도 초대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그녀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 이야기를 꺼낸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눈이 초롱초롱해 보였다. 그는 뉴욕 프레스비테리언 병원의 유명한 시니어 암 전문의라고 했다. 매년 수십억의 연봉을 받아 이젠 엄마보다 ‘잘’ 번다며 너무 대견하다고 했다. 대견함의 포인트가 엄마보다 돈을 더 잘 번다는 거에 나는 전혀 공감할 수가 없었지만, 사장님 앞이니까 일단 맞장구를 쳐주며 둘째분은 뭐 하시냐고 물었다.


잠깐 몇 초의 정적이 있었다.


"똑똑해. 아주 똑똑하고, 그리고 효자야.
어린 나이부터 엄마를 도와주는 효자거든."


처음에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으나, 그 의미를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정확히 이해했다.


토미는 내가 앉을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거실 중앙에 긴 책상 두 대를 붙여 양방으로 4명씩 앉게 해 놨다. 그 간격이 얼마나 좁은지 앉은 채로 팔을 돌리면 옆사람의 몸에 닿았다. 창가에는 두 대의 컴퓨터가 별도의 책상과 함께 놓여 있었다.


9시부터 10시 사이 엘리베이터로 직원들이 우르르 출근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미국인은 3명, 나머지는 20대 초반의 외국인 인턴들이었다. 정직원으로 보이는 미국인들은 바로 착석하고 바삐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누군가 사장 이름을 샤우팅 하기 시작했다.

“리타! 리타!!”


그 목소리와 톤에 순간 ‘사장님이 돈을 안 갚았나?’ 하고 착각했는데,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던 목소리였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금발에 초롱초롱한 비취색 눈. 그리고 사장님을 똑 닮은 얼굴의 깔끔한 프레피룩을 입은 20대 청년.

“리타!! 아니 내가 이 신문광고 계약서 어제 결재해 달라고 했잖아! 나 이 신문에 기고해야 된단 말이야. 잘 보여야 되는데 벌써 하루가 늦었어!”
“매튜? 엄마는 회사 은행 대출부터 갚아야 돼! 기고는 나중에 해 이놈 자식아!”

내 인터뷰어였으며, 리타 사장 둘째 아들이자 이 회사의 유일한 임원인 매튜(Matthew/가명). 이놈의 샤우팅은 유전인가 생각했다.


리타 사장은 타고난 철인이었다. 낮 시간엔 음식을 일체 손에 대지 않는 대신 아르고 티 (Argo Tea) 녹차 1L를 2시간에 한 번씩 비웠다. 그녀는 퇴근 후 저녁 8시쯤 54번가/5번대로에 위치한 사교 클럽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밤 10시까지 천천히 위스키로 적신 다음 다시 취중업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새벽 4시경 술에서 깰 때쯤 3시간 파워숙면을 취하고, 아침 러닝 후 8시 반경 미드타운으로 출근하는 식. 이런 기괴한 루틴을 30년 하고도 큰 병치레를 겪은 적이 없다고 했다.


리타 사장의 경영원칙은 모두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 믿었고 이는 회사 운영방식에 여실히 드러났다.


각 직원 이메일 계정을 회사 대표 이메일 계정에 종속시켜 매일같이 몇 백개의 모든 대/내외 회사 이메일이 대표이메일 계정에 쌓는 방법이었다. 심지어 문서를 만들면 무조건 대표 이메일로 메일을 쏴서 기록을 남겨야 했다. 인턴들은 매일같이 대표 계정 아래 폴더 만들고 이메일 옮기고 정리해야 했다.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리타 사장의 대표적 취중업무 중 하나는 저 이메일 정리였다. 직원들은 가끔 취하신 리사장으로부터 새벽 3시에 URGENT FROM RITA: CALL “X” RIGHT NOW (영미권에서 대문자는 샤우팅을 의미) 같은 취중이메일을 받곤 했다. 모친의 취중샤우팅이 부끄러운 매튜 이사는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음주 이메일 좀 그만하라고 대판 싸우곤 했다.


회사는 크게 입찰 데스크와 운영 데스크로 나뉘었는데, 입찰 데스크에서 프로젝트를 수주받고 > 운영 데스크에서 각종 설문조사 및 현장 노가다를 했다. (매튜 이사는 홍보총괄로 실무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9:00 이메일 정리로 시작해, 9:30부터 반나절은 반백명에게 <설문조사 혹은 인터뷰 참석하시겠습니까?> 콜드콜을 걸고 스크리닝을 했다. 참석 보상이 쏠쏠하다 보니 거짓말쟁이, 떼쟁이, 욕쟁이 등 별 진상들을 전화로 만났다. 보통 점심 이후에는 설문조사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미드타운과 42번가 근처를 돌아다녔다.




뉴욕은 무급인턴에게 정말 살인적으로 비싼 도시였다.


당시 22세 필자는 맨해튼으로부터 40분 떨어진 퀸즈 우드사이드의 작은 하숙집 지하실을 개조해 만든 방에 월세 40만 원을 주고 살았다. 낮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점심 (이라고 쓰고 근처 마트에서 최저가에 파는 슬라이스햄과 빵 몇 쪽)으로 연명했으며, 저녁에는 맘씨 좋은 필리핀계 하숙집 아주머니가 가끔 해주시는 무료 식사나 신라면으로 한 끼를 때웠다. 당연히 아침은 스킵했다. 그렇게 한 2개월 고생했을까.


회사는 어느 한국 대기업 고객님으로부터 4개 도시 현장조사를 수주하게 된다. 현장조사 참관 출장 오시는 한국 고객님들은 영어 하는 한국인이 그들을 접대해 주는 조건을 걸었다. 리타 사장은 현장에 (대체 뭘 믿고) 경력 2개월짜리 인턴인 나를 투입했다. 그렇게 출장 오신 대기업 고객님 및 그들의 1차 수행사 직원들을 모시고 동/서부 다양한 도시를 돌아다니며 현장 노가다와 여행사 가이드를 뛰었다.


한 번은 고객님이 애틀랜타 코카콜라 본사에 견학을 가는데 당연히 필자가 운전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셔서, 장롱면허였던 난 그날 9인승 카니발 운전사가 되었다.


몇 분 후 저 카니발은 고속도로 120km 구간에서 옆에서 질주하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뻔한다. 한 순간 저세상 간접체험을 하신 수행사와 대기업 고객님 총 4명은 그날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아마 호텔에 돌아가서 고객사는 수행사에게 한바탕 대난리를 치지 않았을까? 그다음 목적지인 LA에서는 디즈니랜드 가실 때 조용히 별도로 운전기사를 고용하시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 짜릿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비즈니스가 끊겼다고 생각했었는데, 2주 후 그 수행사가 다시 나를 지명하여 몇 건의 추가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했다. 당시 내 무급인턴 3개월 기간은 거의 끝나 있었는데, 리타 사장은 나를 매우 잡아두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어느 날 그녀가 나를 따로 호출했다.


텅 빈 회의실에 리타 사장님과 단 둘이 앉았다. 그녀는 마치 한 마리 가젤을 쳐다보는 사자의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고 계셨다. 잠시 어색한 정적을 깨고 그녀가 운을 띄웠다.


“그래, 곧 인턴십이 종료된다고. 참 아쉽겠네…?”


'사장님이 더 아쉬우시겠죠'라는 말이 연구개까지 올라왔으나 차마 내뱉지 못하고, 난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너무 귀중한 인생 경험이었요. 하하하!!”


지난 3달의 경험은 내 배짱, 얼굴의 철판 두께 그리고 능청스러움을 배로 늘려주었으니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호호호호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그럼 귀중한 경험 좀 더 해보는 건 어때? 유급 <인턴>으로 말이야.”


사자가 입을 벌렸구나. 하나 평생 가젤의 마음으로 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 입에 내 방식대로 머리를 들이기로 했다.


“제가 인턴이면 아쉬우실 텐데요.”


음, 사장님은 이해를 못 한 눈빛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정직원으로 일하면 회사에 더 이득이라 그렇습니다 사장님. 유급이라지만 <인턴>이 고객을 상대하면, 한국 정서상 급이 안 맞는 대접을 받는다고 불편해하실 텐데… 그럼 좀 잘 돼 갈 법 한 코리안 비즈니스 키울 기회도 사라질 수 있지 않습니까? 오퍼레이션 데스크에서 코리안 데스크를 분리해서 키울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고객 입장에서 앳된 22세 필자는 인턴이건 직원이건 똑같은 느낌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땐 뭔 배짱이었는지, 내가 <코리안 비즈니스>를 손수 키워드리겠다고 피칭을 했다.


“매니저 명함부터 파 주시죠.”


리타 사장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씩 웃었다.


“정직원은 안돼.”


역시 안 되는구나. 베팅에 실패했나 싶었다.


“나랑 매튜 빼고 다 계약직이거든. 우리 회사 비용구조 때문에 이건 네가 이해를 해줘야 돼. 대신 급여는 여느 직원이랑 동일하게 연 기본급 3만 불로 쳐 줄게.


이제 프로잖아? 너 말대로 이제 너 하는 만큼 버는 거야. 수행 성공 건당 영업이익의 5%씩 떼줄게. 그니까 이제 열심히 해봐.”


확실히 리타 사장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마치 ‘코리안 가젤인 줄 알았더니 사자새끼였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녀에게 조금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당시 보스턴에서 명문대를 마치고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입사하신 비슷한 또래의 한국 직원분이 계셨다. 저 날을 기점으로 둘이 회사의 코리안 데스크가 되어 물심양면 회사를 위해 프로젝트 수주하고 고객님들 모시고 미국 이곳저곳 다녔다. 10개월 간 보스턴, LA/오렌지 카운티,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애리조나, 시카고 등등 미국 국내출장을 발바닥 땀나듯 다니며 델타항공 마일리지 쌓은 게 뉴욕-LA 이코노미 편도 하나 끊을 정도.


이제는 담당자가 되니, 새벽에도 이메일 칼답이 오는 리타 사장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한 번은 LA에서 1시간짜리 좌담회 10개를 당일치기로 진행했다. 밤 9시쯤 되었을까. 미국인 좌담회 진행자가 한국인 고객님의 매우 직설적이고 인신공격적인 피드백을 받고, 홧김에 고객 면전에 쌍욕 날리고 즉석에서 그만둔 것이었다.


고객님은 천장이 떨어지랴 소리를 지르셨고 난 리사장님께 즉시 전화를 걸었다. 본인의 최애 사교클럽이자 그녀의 퍼스널 위스키 바 <유니버시티 클럽>에서 뉴욕 새벽 1시에 전화를 받으신 그녀는 고객에 빙의해:


“아니 그 자식 근성머리가 없네?

일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날 호구로 아나?

일단 빨리 대체 진행자 고용하고 고객님 즐겁게 해 드려! 걱정 말고 내가 준 법카로 싹 긁어! 뒷일은 내가 다 책임진다.

넌 일이 되게 만들어 (Just make it happen!) 필요하면 은행 대출 더 당기지 뭐.”


이는 대초원의 사자로 살아온 그녀의 문제 해결 방법이었다.


돌이켜보면 뉴욕에서 연봉 3만 불은 쥐꼬리만큼 작은 돈이지만, 불티나게 출장 다니다 보니 매번 호텔생활에 먹는 건 풍족하게 먹었다. 나중에는 숙소도 퀸즈에서 맨해튼으로 거취를 옮겼고 말이다. 그때 참 재미있었다.

10개월 계약이 끝날 무렵 받은 총급여를 계산해 보니 대략 $40,000를 살짝 넘었다. 대략 $15,000 정도 커미션을 받은 셈인데, 회사에 순이익 $300,000 정도를 가져다준 셈이다.


당시 내가 가장 뿌듯했던 건, 미국을 떠날 때가 되어 어머니가 뉴욕에 놀러 오셨는데, <유니버시티 클럽>에 다른 한국인 직원과 어머니 그리고 나를 초대해 주신 것.


제목을 매우 자극적으로 달았지만, 난 이 1년의 인생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리타 사장과 저 회사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필자가 느낀 몇 가지 교훈:   

회사가 구조적으로 문제 투성이고 언제 망할지 모르게 생겼어도, 몇 십 년 버텨온 건 누군가가 멱살 잡고 끌고 왔다는 거다.

보통 멱살 잡고 끌고 온 사람은 대표다.

시스템과 환경이 열악하다고 탓하지 마라. 누군가는 그 환경에서 죽어라 버티고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다.

음주 이메일 쓰지 말자.

필자도 이때부터 밤 12시에 이메일을 받아도 급한 일이면 회신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상황이 더럽게 안 좋아도 필자는 항상 ‘멱살 잡고 끌고 갈 사람’을 자처한다. 그게 대초원에서 뉴욕의 사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방법이었으니까.


2024년 현재, 리타 사장과 회사는 40주년을 맞이하여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리타 사장님, 약주 적당히 하시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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