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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Jun 30. 2024

<바다에 가자> 01.

1. 해연 (海聯)

1. 해연 




명희는 뚫어지게 맞은 편 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벽에 걸린 바다의 윤슬을 담은 그림을 보고 있다.


“글은 잘 써져요?”

“일하고 애 보느라 요새는 정말 쓸 시간이 없네요. 변명이지만요.”

“글쓰기, 일하기, 아이키우기 어느 하나 쉬운 건 없어요.”


내내 모니터만 바라보며 자판을 두들기던 의사가 손을 멈추고 명희의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건조하지만 애정을 담은 어투로 묻는다.


“정말 하고 싶은 거 없어요?”


명희는 벽의 윤슬을 바라보다 무심결에 입 밖으로 그 단어를 내뱉었다. 


“해연에 가고 싶어요. ”

“아, 혹시 남쪽 바닷가?”


명희는 의사를 바로 고쳐보며 대답했다. 


“네. 바다요.”


집으로 돌아온 명희는 신경정신과 약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쓰러지듯 부엌 바닥에 앉았다. 

아이 아침밥을 먹인 전쟁의 흔적이 부엌에 한 가득이다. 명희는 쇠망치를 들어올리 듯 바닥에 떨어진 아이 젓가락과 양말 가지들을 집어 올리다 다 관두고 긴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갈까.” 


그때, 현관문이 덜컥 열린다. 명희는 반사적으로 ‘엄마 왔어?’라고 말한다.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현여사가 부엌께에 인상을 쓰고 들어선다. 


“집 꼬라지가 이게…”

“어. 오늘 나 늦게 일어나서, 애 먹이고 준비물 챙기고 나가느라 정신 없었어. 아침에 회의 한다고 또 출근 시간이 빠듯해서…”


명희는 준비된 시나리오 마냥 변명을 늘어놓는다. 현여사는 냉장고 문을 열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항시 식재료들이 뭐가 있는지 알아야 낭비가 없다란 말은 빠지지 않는다. 현여사는 코를 쥐고 냉장고 냄새가 난다며 약간의 과장을 섞은 비난을 퍼붓는데 명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때 명희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 ….준희 태권도 마치기 5분 전이야. 갔다올게.”


산발이 된 명희의 머리를 현여사가 지적하기도 전에, 명희는 현관을 빠져나간다. 현관문을 열자 맞은 편 집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어머 준희 엄마 오랜 만이에요!”


옆집 엄마가 인사를 하자 명희는 애써 밝은 웃음을 지으며 어색한 표정으로 화답한다. 엘레베이터는 21층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명희는 답답한 표정을 짓다 비상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엘레베이터에 남은 엄마들은 그런 명희가 사라지자 한 마디씩 하기 시작한다. 


“얼마전에 이혼했다며?”

“어, 애가 영 표정이 안 좋더라고.”

“어머 어머 진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탄다. 그 시각 명희는 죽을 힘을 다해 태권도장까지 달려간다. 그러나 이미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도장에는 사범님과 준희만 남아있다. 그런데 준희의 꼴이 심상치 않다. 준희의 머리가 삼발이고 입가에는 옅게 터진 자국도 있다. 


“어머. 준희야!!”


사범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명희를 바라본다. 사정은 그러했다. 준희가 동생들에게 장난을 심하게 쳤고 그걸 보던 2학년 형이 준희를 말렸으며, 준희가 형을 세게 밀은 것. 형은 더 심하게 멍이 들었다고 했다. 사범님은 2학년 아이 학부모의 전화번호를 명희에게 전송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명희는 준희가 밉다. 준희는 엄마의 손을 잡아보지만 명희는 준희의 손을 뿌리친다. 준희는 울상이 된다. 


“너. 엄마가 절대 폭력 쓰면 안된다고 했지?”


준희는 고개를 푹 숙인다. 명희는 한숨을 쉰다. 준희는 발로 괜시리 바닥의 조약돌을 차기 시작한다. 


“ 바닥에 있는 돌도 차지마. 튀면 다쳐.” 


그러자 준희는 저만치 앞서 뛰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준희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위험하게 지나가고 그 모습에 명희는 준희를 부르며 뛰어가다 넘어지고 만다. 준희는 그대로 207동 쪽으로 사라지고 없다. 명희의 무릎에 피가 베어나온다. 


저녁 무렵. 아이는 티비를 보며 바지도 입지 않고 낄낄 거리며 웃고 있고 명희는 노트북을 펴 놓고 회사 일과 씨름 중이다. 명희의 무릎에는 반창고가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다. 설거지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 명희는 준희를 잠깐 바라보다 식탁 위의 신경 정신과 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명희의 귓속에 낮에 보았던 윤슬 그림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쏴아. 쏴아. 파도가 치고 그 가운데 해연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낸 명희가 노오란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하고 있다. 명희는 알약을 한 움큼 입에 털어넣고 바닷물 속으로 잠수하듯 컵 속의 물을 마셔버린다. 


눈을 감은 명희는 그 날밤 해연에 가는 꿈을 꾸었다. 차를 몰고 해연 ic를 몇 번이고 통과했다. 그러나 도저히 달리고 달려도 바다에는 다다를 수가 없었다. 답답한 꿈이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난 명희에게는 어제와 다른 명쾌한 답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해연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 것이다. 


정확히 말로 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 다다르면 명희는 무언가를 바로 볼 수 있게 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과거의 명희이든, 명희가 건너왔던 시간이건, 추억이건 지금의 명희는 너무나 오랫동안 바다의 윤슬과 소리를 잊고 지내왔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현재의 명희와 가장 먼 지점에 있는 어떤 빈 칸이고, 명희가 찾아 해메던 정답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해연에 가면, 과거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구제 가능했던 시절의 명희를 조금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명희는 명쾌한 어조로 회사에 연차를 쓰겠다고 말했다. 3일이나 자리를 비운다는 말에 부장의 미간은 찌푸려졌지만 최근 명희의 신상의 변화도 알고 있거니와,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평소라면 명희는 주변의 눈치를 많이 봤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명희에겐 반드시 하고야 말 것이 생긴 것이다. 


집에 돌아온 명희는 3일간 출장을 가게 되었으니 아이를 맡아달라고 현여사에게 부탁을 했다. 현여사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왜 사무직이 3일간 박람회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냐며 따지고 묻는다. 명희는 괜시리 웃음이 난다. 현여사는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며 사실 병원에 갔더니 췌장에 돌이 생겼다며 수술 날짜를 받아왔다고 말한다. 명희는 아연실색하며 췌장에 왜 문제가 생긴 것인지 따져 묻는다. 현여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원래 자신은 만성췌장염이였다고 말한다. 그 말에 명희는 기가 찬다. 


결국 해연에 가기 위해 냈던 3일 연차는 엄마의 병간호로 채워졌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던 날 명희는 준희와 함께 병원 수술실에서 착잡하게 대기를 한다. 병원 복도 끝에는 마치 윤슬같은 빛이 창문 밖으로 넘실대고 있다. 명희의 귀에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따뜻한 바닷물에 내리쬐는 해를 받고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놀았던 학창시절의 내가 저 복도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실루엣만 보이는 한 남자 아이. 멀리 모래사장에는 현여사가 수박을 자르고 있고, 명희는 해안가로 올라가려다 남자아이를 본다. 명희를 뚫어지게 보는 그 아이는 현여사의 말에 일부러 바다쪽으로 멀리 헤엄치기 시작한다. 명희가 잠시 망설이는데 누군가가 명희의 손을 잡고 바다 안으로 깊숙이 잠수하기 시작한다. 남자아이의 손이 명희 손에 단단히 감겨 있다. 바다 아래에는 현무암처럼 검은 암석들이 박혀있고, 작고 투명한 물고기들이 그들을 휘감고 명랑하게 흩어진다. 암석 뒤 쪽으로 돌아 해안가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다다른 남자아이는 명희에게 말한다. 


“이렇게는 안되겠어.” 


남자아이는 명희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리고는 명희를 바닷 속으로 이끄는데


“너네 수박 먹으라는 소리 안 들려!” 


다시 불이 환히 켜지고 누군가가 명희를 흔든다. 해안가의 타는 햇빛인가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수술이 끝나 준희가 명희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명희는 깜빡 잠이 든 자신이 어이가 없다. 수술 침대에선 현여사가 실려나오고, 담당의사는 수술이 성공적이라고 말한다. 


다소 복잡하지만 잘 정리된 6인실 안 Tv에선 vj가 과장된 표정으로 맛을 전달하고, 사람들은 누워 자거나 할 일 없이 tv를 보거나 간병인들은 무료한 표정으로 환자들을 돕는다. 간이 침대에 앉은 멍한 명희 옆으로 준희는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현여사는 연신 신음 중이다. 


3일이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에서 내린 명희는 뒷좌석 문을 열고 현여사를 부축해 집으로 올라간다. 준희는 여전히 핸드폰에서 눈을 못 뗀 체로 그들 뒤를 따라선다. 


정갈하고 깔끔함 십여평의 빌라에 들어서자 매퀘한 냄새가 난다. 명희는 재빨리 창을 양쪽으로 열고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는 준희의 핸드폰을 뺏는다. 준희는 명희를 째려보다 컴퓨터가 있는 건너방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쾅 닫는다. 


명희는 현여사 쪽으로 선풍기를 틀어주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물줄기가 명희의 목을 타고 흐르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계속해서 마시는 와중에 엄마의 식탁 위에 놓인 각종 고지서와 독촉장을 본다. 물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쾅 닫혔던 문이 빼꼼 열리고 준희가 이상한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왜”


말이 곱게 나가질 않는다. 


“엄마. 이거 엄마야?”


준희가 내민 상자 안에는 교복을 입고 어설픈 웃음을 짓는 명희가 서 있다. 그 옆으로는 현여사가 보인다. 그리고 길게 세로로 접힌 사진. 설마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펴자, 동우의 날카롭지만 수줍어하는 얼굴이 보인다. 동우 뒤로는 동우 아저씨도 넉살좋은 표정으로 서 있다. 


“…이거 어디서 났어?”

“저기 장롱 안에 있던데?”


상자 안에는 카드 하나와 낡은 외국 동전들 그리고 필름 한 통이 들어있다. 명희는 상자를 들고 현여사가 누워있는 방으로 간다. 현여사는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는 앓는 소리를 하며 모른체 한다. 명희는 필름 통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다 급하게 핸드폰을 열고 현상소를 찾아 그 중 한 곳에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저기…오래된 필름도 현상이 되나요? 아, 그게 저 이게 한 30년은 된 필름이라서요. 네. 네. 휴가요. 일주일 뒤요? 알겠습니다.” 


명희는 전화를 끊고 상자 안에 담긴 사진을 한 번 더 바라본다. 정말로 동우였다. 이따금씩 동우의 얼굴을 떠올리고 싶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실루엣만 기억날 뿐, 얼굴의 생김새를 도저히 복기할 수 없었다. ‘야.’ 라고 시작했던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도 어느 순간부터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30년이란 세월이 지나고 난 지금 단 한장의 사진으로 동우의 모든 것이 살아난다. 마치 어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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