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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타자기 Jul 01. 2024

<바다에 가자>02.

2. 첫만남 

2. 첫만남



교복 치마를 입은 명희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어서 빨리 가야 영화관 매표소 교대 시간에 맞출 수 있다. 명희의 옷에는 담배불로 생긴 자국들이 여러 개다. 명희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길을 걷는다. 


해연에는 딱 한 개의 극장이 있다. 해연극장. 남쪽 끝 시골 마을에 왠 극장이냐 싶지만 무려 일제시대부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곳으로 영화 뿐 아니라 행사장으로도 유용되는 마을의 살아있는 역사관 중 하나였다. 명희가 재빠른 걸음으로 해연 극장 앞마당에 들어서자 마른 오징어를 파는 김씨가 명희를 아는 체한다. 김씨의 뒤로는 중경삼림 영화 간판이 그럴싸하게 그림으로 그려져있다. 


“어이. 현희가 입이 댓발 나왔어~ 얼른 가서 바톤 터치!”


명희는 빠른 걸음으로 극장 안으로 들어선다. 한 여름의 열기에 비해 극장 로비는 매캐하지만 선선할 정도의 공기가 감돈다.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선 것만 같다. 감도는 적막. 아직 손님은 없다. 현희는 팔짱을 끼고 서 있다. 명희가 들어서서 꾸벅 절 같은 인사를 하자 현희는 그녀의 어깨를 치고 나간다. 명희는 주섬주섬 가방을 내려놓고 매표소 안 의자에 앉아 어설프게 하복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그러다 교복에 난 담배 자국을 보고는 한숨을 쉰다. 아직도 3학년 선배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니 엄마 사채 놀음 때문에 우리 집이 이렇게 망했어! 넌 더 당해도 싸.”


명희는 매표소 안의 표들을 살펴본다. 중경삼림. 명희는 입으로 영화의 이름을 한 번 더 읽어본다. 그때 누군가 재빨리 매표소 안을 스쳐 지나가는 인기척을 느낀다. 명희는 매표소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복도 쪽을 바라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기분이지만 명희는 기분 탓으로 여긴다. 시간이 흐르고 영화 시작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들어서지 않는다. 


명희는 손목시계를 보다 결심한 듯 영화관 문을 빼꼼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위를 올려다보니 박씨 아저씨의 실루엣이 보인다. 명희는 가까운 좌석에 앉는다. 그때, 앞쪽 중앙 자석에 누군가가 앉아있다. 자세히 보니 까까머리 학생 머리 하나가 불쑥 나와있다. 분명히 표를 끊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다. 귀신인가? 명희는 괜시리 무서운 생각이 든다. 명희는 복도를 스쳐 지나간 인기척을 떠올린다. 혹시 국민학생이 몰래 들어와서 보면 안되는 영화를 보는 것은 아닐까? 명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까까머리 쪽으로 다가선다. 화면에 반사된 빛에 까까머리의 옆모습이 보인다. 영화를 보는 모습이 사뭇 진지해서 명희는 섣불리 말을 건네지 못한다.


“저기요.”


명희의 말에 까까머리는 그제야 고개를 돌린다. 명희와 눈이 마주치자 올게 왔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보인다. 


 “표를 끊고 보셔야죠.”

“어차피 손님 없는데, 전기 낭비잖아요.”

“…손님 없으면 저희 영화 안 돌려요.”

“쉿. 중요한 부분이에요. ”


끽해봐야 명희 정도 되어 보이는 까까머리는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적반하장으로 명희를 나무란다. 명희는 좀 더 애를 쓰려다 한숨을 짧게 쉬곤 영화관 밖으로 나간다. 다시 매표소에 앉는 명희. 시계 바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우레처럼 느껴진다. 지겹다. 아까 영화에서 봤던 여자 주인공과 경찰관은 어떻게 되었을까. 에라이 모르겠다. 명희가 다시 일어서서 영화관 안으로 들어선다. 영화 속 화면에 한 남자는 비가 오는데 운동장을 달리고 있다. 2분 후면 스물 다섯이 된다고 했다. 스물 다섯과 운동장을 달리는 것과의 상관관계가 뭐지? 명희는 바보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스크린 속 남자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산다. 그의 독백이 이어진다. 


‘ 기억이 통조림에 들었다면 유통기한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만일 기한을 적는다면 만년 후로 해야겠다.’


명희는 극장을 나와 다시 매표소 의자에 앉으며 정말 바보 같은 영화가 다 있다고 중얼거렸다. 1994년 7월 한 여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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