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무슨 언감생심

='감히'가 '능히'로 바뀌는 마법

by 지푸라기

여자 직업은 선생님만 한 게 없다던 엄마의 듣기 싫은 으름장은 외할아버지 발인 후 세워진 묘비에 딸이라는 이유로 첫째의 이름을 올리지도 않은 매정한 집안을 울리는 그녀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절규였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나는 학창 시절부터 만난 선생님들이 선생 같지 않아 그들을 경멸했다.


국민학교 2학년 조회 시간에 오전반 등교 학생들이 앞다투어 마지막 계단에서 실내화를 실외화로 갈아 신기 시작한다. 순간 고민하던 여학생은 이 많은 무리 속이면 괜찮다 속삭이는 누군가의 꼬임에 넘어갈 듯 말 듯 바닥을 코 앞에 두고서야 나름 이만큼 견뎠다며 실외화를 갈아 신자마자 그녀의 머리채가 여선생에게 거머 잡혔다. 그녀는 여학생을 빨아버려 머리의 물 한 방울까지 털어내려는지 잡은 머리채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여학생은 그녀의 손에 잡히지 않은 학생들에게 넌 럭키하다고 증명해 주는 도구로 전락해 머리카락이 뽑힐 것 같은 두피의 한껏 당겨짐 속에 묻힌 치욕스러움을 견뎌야 했다.


"반장 나와!"
회의를 다녀온 담임 선생님이 또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며칠 전 갑자기 들어와 반 전체 아이들 짝꿍 바꾸기를 하라더니 오늘은 어떤 모양으로 여학생을 짜증받이로 만들지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앞으로 나갔다. "바보 흉내 내봐."
어찌할 줄 모르는 6학년 여학생에게 그놈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다며 시범을 보였다. 일단, 다리를 벌리고 목을 쭉 뺀 후 입을 벌리고 혀를 축 밖으로 늘어뜨려 침을 흘리란다. 여학생은 그렇게 서 있는 자신을 보며 웃는 몇몇 친구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짜증과 원망은 그렇게 전가되는 거지 그놈의 가르침에 세뇌라도 당한 듯 말이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겨울방학 눈이 오는 날이었다. 나를 매우 예뻐하시던 화학 선생님이 맛있는 밥을 사주 시겠다며 미끼를 던지셨다. 식사를 마치고 그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시더니 굳이 집까지 걸어서 데려다주겠단다. 갑자기 여학생에게 생리주기를 묻는다. 여학생은 무언가 잘못됐다 느꼈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에 있을 엄마에게 빨리 닿고 싶었다. 아파트에 다다랐을 때, 졸업 축하한다는 인사와 함께 그놈이 여학생 입술에 입을 맞췄다. 더러운 그놈의 침을 닦으며 순결을 빼앗겨 버린 여학생은 딸 단속을 못해 떨어질 호통이 두려워 아빠에게도 말하지 말자 쉬쉬했던 엄마로 인해 그 순간을 피하지 못한 자책을 평생 해야 했다.



선생님은 도나 캐나 하는 게 아냐, 절대!





단단하게 여물고 싶어도 아직은 무르고 여린 미성년자인 내게 성년의 권력을 남발하는 학교 선생님은 이만하면 치가 떨렸다. 내 생애 그런 직업을 갖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때 '학교 선생님은 함부로 업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스스로의 철칙을 세웠다. 내 경험이 아름답지 않다 해서 덮어 놓고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몸부림쳐 본 사람만이 학생들을 최소 인격적으로 대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신이 단련하신 과정이라 생각하면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면, 난 학교 선생님을 하기 위해 그저 참고 참고 또 참았을 뿐이다. 한 생명을 기르는 일만큼 오래 참는 일이 있을까. 보통의 인품을 갖춘 사람으로 키워내고 싶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거기에 나를 결혼 실패자로 만드는 시댁 사람들과의 갈등이 더해져 나는 살아도 산 자가 아니었다. 주양육자로서 도덕적 의무를 몸이 다하고 있지만, 내 뇌와 입은 죽고 싶다를 떠올리는 족족 말로 내뱉었다. 오로지 나만이 제어할 수 있는 추운 구렁텅이에 빠져나갈 궁리조차 없이 그저 한참을 있었다.


어쩌면 육아라는 임무가 내 목숨을 보전해 준 것일 수도 있겠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은 고통의 시간임에도 몸이 모성코드대로 움직여 흘러가는 시간을 유수풀 삼아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으니. 그러다 인내의 과정에 내가 고집한 것들을 내려놓아 봤다. 시댁과 아들에 대한 -좋겠어, 왜-, 어떻게- 의 내 문장들을 하나씩 삭제했다. 해가 뜨면 리셋되어 있는 것들을 지우는 일이 반복되니 어느새 궁리코드로 내 몸에 심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구렁텅이지만, 바뀐 것이 있다. 내 생각들이 앞서지 않으니 화나는 순간을 멈출 수 있다. 그제야 그곳을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비로소 내가 내 감정의 주도권을 제대로 쥔 느낌에 휩싸였다. 일단 밝은 빛으로 몸이 녹여지니 탈출하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의지는 꽤 많은 방법들을 시도하게 함으로써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은 비어있던 나를 오직 '나'로 단단하게 채워주었다. 그 구렁텅이에서 치열하게 나오니 세상 속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내가 학교 선생님 할 수 있을까?'



NOT YET 이 아니라 JUST NOW야!

난 벌써 5년차 초등학교 선생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