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이혼
내가 이혼을 할 수도 있겠다. 고부갈등을 겪어 본 여자라면, 막말로 사람 앞일 모르는 거니 나중에 이혼할 수도 있겠지라고 막연히 내뱉는 여자들과는 달리 이 말의 무게감을 누구보다 느낄 것이다. 사람은 종국에는 죽는 존재임을 우리는 알고 있지만, 우리 몸에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 한 아직은 먼 죽음을 위해 애써 가치 있는 생각과 노력을 더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혼이 내 삶에 없을 단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순간, 마음가짐을 달리했다. 마치 죽음을 몇 년 이내 맞이할 사람처럼 좀 남몰래 부산스러워졌달까.
생각해 봤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듯 이혼을 앞두고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경제적 어려움일 텐데, 나도 그러한가?
아니라고 답할 수 없다. 내가 가장 최근 머물렀던 삼성의 시간제라도 버티고 있었다면 덜했을까. 어쨌든 나와한 계약이 유지되고 보장된 기댈 곳이 있으면야 이혼 앞에 조금 더 당당해지는 건 맞다.
그러다 갑자기 억울해졌다. 나는 양가에서 육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 아래 육아와 살림의 밸런스를 위한 시간과 이사에 따른 지역선택이 자유로운 최선의 선택지인 프리랜서로 전향했던 건데, 신랑은 집 안 사정의 레이더가 전혀 미치지 않는 자신이 선택한 직장에서 마음껏 몰두하며 오랜 시간 버티어 내 이룬 것들이 많다.
내가 가족을 위해 선택했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에 따른 상실은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는 오롯이 내 책임일 뿐이다. 이혼을 염두하고 보니 그와 나의 삶이 이원화되어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혼하자."
시댁으로 인한 우리의 40대 싸움은 30대 보다 더 차갑고 매정했다. 고부갈등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꾸역꾸역 인내하는 나를 그가 더 불쌍하게 생각할 거라는 건 내 과대망상이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10년 전 나와의 약속 때문에 내가 시댁에 더 이상 발걸음 하지 않겠다는 데에 동의했지만, 진심으로 남편 혼자 시댁에 편히 다니라는 내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남편은 70이 넘은 노부모를 당분간 찾아 살피지 못할 할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상심에 빠졌다. 시부모님께 통화로라도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도하려던 우리의 전화가 두 분께 모두 차단당한 후였다.
나도 우리 부모님의 귀한 딸이다.
우리에게 딸이 있었다면, 신랑이 자기 엄마에게 불효한다는 생각보다 나를 위한 목소리를 더 내어 주었을까?
시댁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가슴이 요동치며 뜨거운 불을 삼킨 것 같은 느낌으로 괴로운 지는 고부갈등 이후로 꽤 되었다. 10년이 지나도 난 여전히 환자이다.
남편은 친정 부모님께도 죄송하다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딸이 너무 소중한 우리 부모님은 이제는 자신의 딸을 시댁 일로 우울증 약을 먹는 고통에서 그만 해방시켜 주길 신랑에게 당부했다. 그들의 바람도 더 이상 내가 시댁에 한 번만 더 용서하고 빌기를 바라는 이전 같은 마음이 아니다. 나는 15년 만에 진정한 내 지원군을 얻는 듯했다.
시댁 일이 있을 때마다 한동안은 갑자기 서러움과 가슴 미어짐에 일상생활 중, 특히 설거지하다 툭하면 눈물이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가장 불쌍한 인간이 되어 내가 뭐가 못나서 라며 실컷 성을 내야 잠잠해진다. 그리고 신랑의 위로를 기대한다.
그러나 부모와 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신랑은 이전과는 태도가 사뭇 다르게 냉정했다. 자기 엄마는 며느리에게 평생 그렇게 할 사람이라는 걸 이제 인정하고 보니 삼진아웃을 선언한 내 눈물을 굳이 닦아줄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경쟁이나 하듯 자신의 고통이 제일이다 핏대를 세우고, 마침내 10년 전과 같은 내용의 싸움이 재현되고 우리는 누가랄 것 없이 서로 그렇게 외쳐댔다.
바다가 너무 간절했다. 결혼 15년 만에 혼자 집을 나서 장거리 운전을 감행해 강원도로 달렸고, 그렇게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 없이 아이 없는 첫 외박을 했다. 일탈이 이리 달콤한 것이었나 큼큼 바다 짠 내 따윈 나지도 않았다. 그런 나를 애인과 헤어졌거나 부부싸움 하고 집을 나왔거나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세상 힘든 44세는 전혀 상관없다. 앞으로 나는 이혼을 할 수도 있는 여자라 혼자 무엇을 하든 괜찮아야 하니깐. 혼밥은 이미 여유롭게 할 줄 알고, 혼와인도 즐길 줄 알고, 혼자 눈물콧물 삼키는 것도 제법 익숙하겠는데, 혼자 행복해지는 건 어떻게 하면 되지?
내게 아들, 남편 말고 행복은 어디서 찾아질까?
내게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이지?
내가 해 왔던 일 말고도 숨겨진 재능이 있지 않을까?
50 되기 전에 부지런히 준비해 도전하고 싶은 것은?
다시 사춘기로 돌아간 듯 스스로에게 물으며 잠잠히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고독하지만, 약간의 설렘도 더해진다. 나에게 집중할수록 흩어져 있던 긍정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파워를 형성하는 느낌이다.
보통 사람이 누리는 행복이 없다고
그 사람이 보통보다 못한 사람은 아니다.
누릴 수 없음을 한탄하는 대신
누릴 수 있음에 더 감탄하자.
엄마, 괜찮은 거지? 왜 전화 안 받아.
아직 온전한 가족의 울타리가 소중한 우리 아들의 알람이 가상이혼 중인 나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