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노란 우산만 보면 돌아보게 만드는 그 시트콤.
자, 우선 한국 넷플릭스 관계자님, 사랑합니다. 절 받으십시오. how i met your mother은 대체 언제 서비스되나 매일매일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왓챠 관계자님 조금 더 힘내십시오. 시즌이 9개인데 왜 5개만 있는 겁니까? 힘내십시오 파이팅.
이 시트콤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나의 행복했던 남미 여행을 한순간에 지옥으로 보낼 뻔했다. 때는 남미를 여행하던 당시, 여행을 싹- 마무리하고 샤워를 상큼하게 끝낸 나는 맥주와 치킨 조각 몇 개를 가지고 로비에 앉았다. 나의 그날 계획은 여행을 끝내면 밤에 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숙소로 돌아와 넷플릭스로 how i met your mother을 봐야지. 였고, 상상만 해도 너무나 행복했다. 그렇게 상큼한 마음으로 한 손에는 맥주 다른 한 손에는 치킨을 들고 넷플릭스를 켰는데 젠장, 없다. how i met your mother이 없다.
분명 미국에서는 있었는데, 왜 없지?! 안돼!!
젠장. 나 지금 테드가 얼마나 멍청한 일을 더 하는지 봐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너무 분하고 급한 마음에 넷플릭스 고객센터에 문의했다. 물론 영어로. 있잖아, 내가 how i met your mother을 봐야 하는데, 갑자기 보이다가 안 보여. 혹시 갑자기 서비스를 중단한 거야? 아니지? 제발 알려줘! 구구절절 이야기하니 상담원은 '알아, 미안해 근데 넷플릭스는 나라별로 서비스하는 콘텐츠가 달라. 지금 네가 있는 남미에서는 어디 어디만 서비스를 하고, 지금 있는 나라에선 이 콘텐츠를 서비스 안 해. 미안'이라고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하고 상담을 끝마쳤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남미를 여행하는 걸 후회했다. 젠장, 봐야 한다고!!!!!!!!!!!!!!
요즘 재미있는 거 뭐 없어?
나의 사랑 how i met your mother을 만나게 된 건 한 미국 대학생 덕분이었다. 미국 동부에 있다가 서부를 여행할 겸,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때였다. 당시 3명과 함께 룸을 셰어 했는데, 그중 한 명은 샌디에이고에서 대학을 다니는 여대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회사 면접을 왔다는 그녀에게 요즘 뭐 볼만한 것 없어?라고 물어봤고, 그녀는 자기는 안 보지만 'How i met your mother'이라는 걸 다른 친구들이 재미있게 본다며 내게 추천했다. 아 그래? 고마워, 하고선 핸드폰 메모 어딘가에 적어뒀고, 그렇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언제였을까? 연수 생활이 지겨워지던 언젠가부터, 넷플릭스에 자주 접속하던 그때부터 나는 주야장천 How i met your mother을 보기 시작했다.
참,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시즌 9까지 있는 길고 긴 이 드라마를 왜 3번씩이나 돌려봤을까? 싶다. 뭐 어디 하나 제대로 이해가 되는 등장인물도 없고, 제 정상인 인물도 없을뿐더러 한국 막장 드라마 못지않게 '시트콤'인데 막장 요소가 한가득이다. 친구들끼리 서로 돌려 사귀는데 여전히 친구고, 어른스러운데 아이 같으며, 다들 하나같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찌질하다. 아, 이게 내가 이 시트콤을 좋아하는 이유구나?
대학교 동기인 테드/마셜/릴리 그리고 사회인이 되고 난 후 친해진 로빈과 바니, 이 다섯이 시트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드라마의 초반부터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법이 참 특이한데, 2030년에 테드가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내가 너의 엄마를 어떻게 만났냐면(how i met your mother)'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즉, 아빠의 멍청한 20대의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해주면서 내가 너희 엄마를 어떻게 만났냐면~으로 본인의 러브스토리를 가감 없이 다 이야기한다. (본인이 누구와 사귀었는지, 얼마나 멍청하게 사랑했는지, 찌질했는지 등) 테드의 내레이션을 기점으로 움직이는 이 시트콤은 멍청하고 찌질하기 그지없는 이 이야기에 교훈과 생각할 거리 그리고 고민을 같이 얹혀준다.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난 누가 뭐래도 '바니'다. 바니가 여자를 갈아 치우는 (이런 표현 정말 안 좋아하는데, 정말 갈아치운다) 모습을 보면, 와 진짜 뭐 저딴애가 다 있지? 싶지만 그의 유년시절을 보거나 첫사랑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바니가 진지한 사랑을 무서워하고, 피하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항상 모든 게 장난스럽고 가벼운 그가 뒤에선 얼마나 친구를 진정으로 아끼고 대하는지 에피소드를 보면 볼수록 바니 캐릭터에게 더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본 미드 캐릭터 중 단연 내 마음속 1위 중 하나다. (1위 중 하나다. 내게 내 마음속 1등은 여럿이다.)
개인적으로는 로빈과 그냥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100000000이었지만, 결말까지 보면 또 그 마음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에 마음을 조금 접어둔다. (게다가 이 둘은 현실에서도 불가능하다. 바니를 연기한 닐 패트릭 해리스는 게이에다가 이미 입양한 자녀 두 명이 있는 어엿한 가장이다. 인스타그램으로 종종 보는데, 참 행복해 보인다.) 이 뒤의 이야기를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 것 같아 그만 두지만, 꼭 사람들이 힘든 하루를 끝낸 후, 초콜릿 꺼내 먹듯 하나씩 보며 잠들었으면 좋겠다. (아마 너무 재미있어서 잠 못 들지도 모르지만)
이 시트콤의 단점?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너무 길다. 물론 시리즈가 9까지 나왔다는 말은 그만큼 인기가 있고 재미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길긴 길다. 그렇지만 에피소드당 30분 내외 정도로 짧아 보기에 편하고, 내용도 무겁지 않아 금방 소화할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아무래도 비 오는 날 길거리를 계속 쳐다보는 게 아닐까? how i met your mother에 나오는 mother은 시즌 후반쯤부터 노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온다. 그녀가 비 오면 항상 들고 다니는 노란 우산, 테드는 그녀와 생각보다 자주 만났지만 테드에게 그녀는 항상 노란 우산일 뿐이었다. 계속 노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다가 후반부에 우산을 걷어내며 얼굴을 보여줄 땐 정말 내가 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생각보다 노란 우산 mother (이름이 mother은 아니다)은 너무나 멋진 여자였고, 현명했다. 그래서 왜 테드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사실 의문이 들진 않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커플이어서 계속 이어졌으면 하고 기도했을 뿐.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에 노란 우산만 지나가면 계속 시선을 두게 된다.
아무튼, 내게 이 시트콤은 시들 시들거렸던 나의 생활에 활력을 넣어줬을 뿐만 아니라 그냥 인생이 지치고 피곤할 때 그들을 보며 용기를 얻을 수 있던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래서 넷플릭스에 시리즈 전편이 올라왔을 땐 친구들이 내게 축하한다고 연락했을 정도로 항상 기다려왔고, 올라오자마자 다시 또 정주행을 시작했다. 인생이 무료한 요즘 혹시 나를 깨울만한 시트콤을 찾는다면 이 시트콤만 한 게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