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님, 프라하에 가면 다 사랑에 빠질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저 사람 내가 전부이던 사람이에요.
칼에 찔려 병원 가면서도 내 감기 걱정하던 사람이에요.
전재산 탈탈 털어 날 프라하행 비행기에 태우고는
더 일찍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다던 사람이에요
김은숙 작가를 도깨비, 상속자 드라마 작가가 아닌 파리의 연인의 작가로 아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들어봤을 것이다. 전도연, 故김주혁, 윤세아가 주인공이던 이 드라마는 로맨틱한 도시 프라하에서의 로맨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도 그러한 망상과도 같은 로망이 있었다.
다른 데는 몰라도 체코에서 만큼은 나에게도 로맨스가 찾아올 거라고.
직접 간 체코는 정말 로맨틱한 곳이었다. 야경은 너무나 멋졌고, 커플과 함께 건너면 영원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다리까지 있다. 로맨틱한 콘텐츠가 가득한 체코는 정말 커플로 가면 너무나 좋을 곳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솔로였고, 옆에 사랑하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저편이 외로웠다. 친구와 거닐던 프라하의 밤은 모두 그 로맨틱한 밤을 함께 하려는 커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젠장, 우리랑 눈 맞을 놈이 한 놈도 없구나 싶어 그대로 우리는 체코의 숙소로 걸음을 향했다.
체코에는 밤늦게 도착했다. 너무 한식이 먹고 싶어 한인 민박으로 향했고, 영국에서 날씨 복을 다 써서 그런지, 네덜란드에서 비를 쫄딱 맞고 카메라까지 고장 난 상태에서 도착한 프라하에서 나는 로맨스고 뭐고 젠장 그냥 어서 씻고 침대에 눕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침대가 간절했다. 그렇게 곧장 숙소로 향했고, 어떤 한국인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여기서 나는 인생 처음으로 나이를 속여봤다. 단연코 나는 의도적이지 않았으며, 어떠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음에 맹세한다. 나는 그저 조금 늦게 알아차렸고, 망설였으며, 그 상황을 즐겼다.
문을 열어준 한국인은 나를 딱 보자마자 짐을 대신 들어주더니 방과 침대를 안내하고, 이름을 확인하길래 처음엔 스태프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나와 같은 여행자였다. 장기 투숙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태프 룸에도 왔다 갔다 하면서 내 짐과 내 침대를 챙겨줬다. 아무튼 그 덕분에 편하게 짐을 풀 수 있었고,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네덜란드에서 비 폭탄을 맞아 전원이 꺼진 카메라를 꺼내 그 앞에서 기도했다.
'제발 카메라만은 살려주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겁니다 하나님'
카메라의 안녕을 기원하고, 깨끗하게 샤워를 마쳤다. 샤워하고 젖은 머리를 말리며 주방 쪽으로 나오니 그 한국인 남자는 대뜸 반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약간 전문가라도 되듯 내 카메라 이곳저곳을 보더니 괜찮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약간 어설프지만 뭔가 그 자리를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하는 듯한 말투와 대화에 '뭐지, 여기 스태프라 아이스브레이킹 하는 건가?'싶어 나도 그 무리에 섞여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했다. 그 후 야경을 보러 가자 하길래 숙소에 오기 전에 보지 못한 야경을 보기 위해 같이 나갔고, 술 한 잔 마시자하길래 다 같이 마시자며 숙소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같이 마셨다.(왜 다 같이 마시자고 했을까 과거의 나야..) 그리고서는 자기가 아는 몇 군데 좋은데가 있다며 가이드를 자청해주는 덕분에 프라하를 재미있게, 정말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후에 합류한 네덜란드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저 사람 너보다 어린 거 같은데 왜 너한테 반말이냐?’라고 했고, 그때서야 '그러게?' 싶었다. 약간 그을려서 그렇지 확실히 어려 보였다. 그렇지만 이미 며칠을 나는 그 사람에게 존댓말을 그리고 그 사람은 내게 반말을 해온 터라 인제 와서 바꾸기도 모호하고, 꼰대 같아 보일 것 같고, 또 곧 헤어질 사람인데 뭐하러 호칭 정리를 다시 하나 싶어(네, 변명 중입니다. 격하게 변명 중입니다.) 그냥 나는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은 장난 그리고 의도적으로 난 친구에게 존댓말과 언니라고 불렀고, 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미친것 하며 진절머리를 쳤다. 참, 여행 중 로맨스가 하고 싶어 얼떨결에 나이를 속였으면, 배짱이라도 좋아서 계속 끌고 가던가 뭐 달달한 로맨스 하나 만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큰 애라 이미 머릿속으로는 대하드라마를 집필했지만, 현실에선 인터넷 소설 첫 단도 만들지 못했다. 그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날, 그분은 나중에 한국에서 보자 했지만 나이 속인 게 들킬까 연락을 못 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아 설마 난가?' 싶다면, 그 모든 분들에게 미안하다. 어린 친구야…. 군대 간다고 했는데 군대는 잘 갔니? 그러려고 그랬던 건 아니야. 그냥 네가 오빠인 척하는 게 재미있었을 뿐이었고, 로맨스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 안녕 오빠 난 지금도 오빠라고 부를 수 있어. 원래 잘생기면 다 오빠랬다.
누나 그 정도로 꽉 막힌 사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