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조 Sep 02. 2022

하늘에서 땅으로 _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33

아내는 항상 책을 끼고 산다. 그런데 한 번에 한 권의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읽는다. 거실에는 소파나 식탁에 앉아 읽는 책이 두어 권 있고 안방 침대 옆 협탁에는 잠자기 전에 읽는 다른 책이 놓여 있다. 이제는 책을 읽어도 머리에 남는 게 없는 것 같다고 구시렁거리면서도 계속 읽는다. 하긴 어제저녁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기도 힘든데 넘겨버린 책장의 내용이 어찌 머리에 남아 있기를 바랄까 싶기도 하다.


아내에 비해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한 는 아내 독서의 '낙수효과'를 보고 있다. 무슨 말인고하니, 내가 읽는 책 중에는 아내가 재미있어하거나 또는 읽어봐야 한다고 추천해주는 책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는 것이다. 


경제 이론으로서는 논란이 많은 '낙수효과'가 나의 책 읽기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이다.



아내가 읽던 책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를 뒤적이다가 조성진이 슈베르트에 관해 인터뷰한 글을 읽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곡에 관한 내용이었다.

맑고 투명하다 못해 하늘이 보이는 착각이 들죠! 어쩌면 슈베르트 음악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것 같아요. 특히 후기 소나타 세 곡을 들어보면 19번 D958은 땅에 있는 곡, 20번 D959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곡, 마지막으로 21번 D960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곡 같고요. 슈베르트는 어떻게 이런 곡들을 30대에 썼을까. 경이롭다는 감탄만 나와요. _[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p.25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라는 책은 저자 이지영이 음악 잡지 기자로 20년 넘게 일하면서 만났던 조성진, 손열음, 임동혁, 백건우, 정경화, 조수미를 비롯해서 영화감독 박찬욱과 풍월당 대표 박종호 등 14명의 아티스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역은 책이다.


다행히 미츠코 우치다와 알프레도 브렌델의 CD가 있다. 잔하게 시작하는 1악장의 첫 동기에 울렁 마음이 넘어간다.

미츠코 우치다가 연주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60>와 브렌델이 연주한  <피아노 소나타 D958, D959, D960>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천재였던 프란츠 슈베르트 Franz Schubert (오스트리아 1797 ~ 1828) 31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1,000여 곡이나 되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눈이 매우 많이 나빴던 그는 잠을 청하다가도 불현듯 떠오르는 악상을 바로 노트에 옮겨 적기 위해서 안경을 낀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천재의 머릿속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쉴 새 없이 솟아 나왔던 것이다.


 슈베르트를 '가곡의 왕'으로 알고 있는 우리는 그의 수많은 작품 대부분이 가곡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600여 개의 가곡을 제외하더라도, <미완성 교향곡>을 비롯한 8개의 교향곡과 피아노곡, 실내악곡, 심지어 오페라 곡 등 수많은 기악곡을 남겼다.


슈베르트는 이렇게 작곡한 곡들을 그럴듯한 콘서트홀에서 발표한 게 아니라 '슈베르티아데 Schubertiade(슈베르트의 밤)'라는 작은 모임에서 발표했다. 이 모임은 슈베르트와 친구들이 자신들의 아지트로 쓰는 작은 살롱에 모여 먹고 마시며 시를 낭송하고 문학을 토론하며 음악을 연주하던 일종의 낭만 동아리였다. 테레제 그로브 Terese Grob (1798 ~1875)라는 한 살 연하의 소프라노 가수를 짝사랑한 적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 이렇다 할 여자 친구 하나 없었던 슈베르트가 외롭고 불우한 삶을 위로받은 곳도 바로 이 모임이었다.

율리우스 슈미트의 1897년 작품 <슈베르티아데>(출처_네이버 이미지)


그런데 변변한 귀족 후원자 하나 없었던 슈베르트의 창작 활동은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자유로웠다. 즉, 항상 귀족 후원자나 청중들의 기호와 반응을 의식해야만 했던 헨델이나 모차르트, 베토벤 등과 달리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신만의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직업적 의무감으로 음악을 했다기보다는 즐기면서 음악을 했다고 할까?


그래서 "슈베르트의 음악에는 연주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전개 수법이 나타나지 않는 대신 풍부한 서정성과 넘치는 감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1)



슈베르트의 만년 이래 봤자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초반이었지만 그 시절의 그의 삶은 더없이 고통스러웠었던 듯하다.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음악가 대신 교사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에서 뛰쳐나와 프란츠 쇼버 Franz Schober(1796 ~ 1882)라는 친구의 집에 얹혀살았었다. 그는 시인이었다. 그런데 쇼버와 슈베르트는 예술에서 뿐만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데에도 의기투합했던 모양이다. 친구와 함께 사창가를 기웃거렸던 슈베르트는 당시 유럽에 창궐하던 매독에 걸리고 말았다. 이후 슈베르트는 이 병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매일 잠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_슈베르트


항생제 치료로 머리카락은 우수수 빠지고 온몸엔 발진이 돋았으며 두통과 관절통 등에 시달리던 슈베르트가 극심한 고통으로 삶을 체념한 듯 내뱉었던 말이다. 결국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1828년 슈베르트는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곡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온 열정을 다하여 작품을 써내려 갔다.


그렇게 작품<19번 C단조 D958>, <20번 A장조 D959>, <21번 B플랫 장조 D960> 등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이다. 그가 죽기 두 달 전이었다. 특히 마지막 21번 소나타는 "슈베르트적인 피아노곡이라는 완벽하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룬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2)


평생토록 베토벤을 동경슈베르트. 그는 베토벤(1770 ~ 1827) 보다 27년이나 늦게 태어났지만 베토벤이 죽은 다음 해인 1828년 서른한 살이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베토벤을 따르기라도 하듯이. 결국 이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는 슈베르트의 유작(遺作)이 되었다.


나는 매일 같이 아프고 힘들지만, 내 음악으로 인해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_슈베르트



엄청난 집중력을 가지고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츠코 우치다(일본 1948~ )는 런던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모차르트의 고위 성직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지만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하다. 


정색을 하고 음악을 들을 필요는 없겠지만, 미츠코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1번>은 아무런 방해 없이 작정하고 들어 볼 일이다. 그녀의 연주는 섬세하고 우아하며 깊다. 


https://youtu.be/l7cc2FD06FM

미츠코 우치다가 1997년 5월에 연주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


1악장 Molto moderato 아주 온건하게 (0:00 ~ 21:55)

"딴 딴딴딴딴 따~" 아련하게 들려오는 도입부를 들으면 마음속 잡다한 것들이 날숨과 함께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니, 언제 그런 것들이 들어있었냐는 듯 이미 순결하다. 슬며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삶에 대한 아쉬움과 초연함이 교차하는 듯 반복되는 주제 선율은 우울하지만 따뜻하다. 한 음 한 음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1악장만 들어도 마음은 어느새 충만해진다.


2악장 Andante sostenuto 충분히 꾹꾹 눌러서 느리게( 22:01 ~ 32:40)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의 서정성이 맑고 투명하게 드러나는 악장이다. 어두울 정도로 잔뜩 흐린 날 내키지 않는 길을 나서는 사람의 발걸음처럼 무겁고 애잔하다. 중간 부분(25:40)에서는 어느정도 먹구름이 걷히고 약간의 가속도와 힘이 붙은 듯 조금은 경쾌해지지만 이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안갯속으로 사라지며 아련히 끝난다.


3악장 스케르초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섬세하고 빠르고 힘차게 ( 32:44 ~ 36:40)

스케르초 악장이란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성격을 띠는 기교적 악장을 이르는 말이다. 해학과 익살에 까지 도달하지는 않지만 스케르초 악장답게 1, 2악장보다는 한결 밝고 발랄한 악장이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 ( 36:40 ~ )

3악장의 스케르초가 계속되는 듯 쾌활한 주제 선율이 이어진다. 마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결국에는 산의 정상에 도달하듯, 멜로디는 빠르게 또는 약간 느리게를 반복하며 격정적으로 고조된다. 이윽고 차분히 앉아 숨을 고르며 잠깐 정지한(44:20) 후, 짧지만 엄청난 크레셴도(점점 빠르게)를 통해 정점에 치닫는 피날레는 이 소나타의 압권이다.


"생의 마지막에 직면한 여행자가 느끼는 생명에 대한 근엄함과 삶에 대한 초연함을 담은 감동적 걸작이다." _ [네이버 지식백과, 클래식 명곡 명연주, 박제성 글]




인용  (1) [나무 위키]_프란츠 슈베르트

          (2)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06p.


참고  [파워 클래식, 조윤범]

          [더 클래식 둘, 문학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박종호]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이지영]

매거진의 이전글 6411번 버스 _ 그리그 <솔베이지의 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