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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Oct 07. 2022

첼로 소나타? _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34

작년 10월에 갔었던 옥정호의 쓸쓸한 빈 집을 1년 만에 다시 방문했다. K가 새로 구입한 수소차를 타고. 깜깜한 밤에 도착해서 해 저무는 옥정호를 보지 못했던 지난해의 아쉬움 때문에 서둘러서 3시쯤 출발했다. 하지만 금요일이라 그런지 수도권을 벗어날 때까지는 군데군데 밀렸다. 짧아진 가을 해는 여지없이 기울었다.


한여름의 초록을 품고 노랗게 물들어가는 들녘은 어느새 뉘엿해진 햇살을 아쉽게 붙잡고 있었다.


옥정호로 향하는 도로변 들녘과 물이 많이 빠진 옥정호 모습


물결치는 넓은 들판과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드디어 옥정호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어스름 저녁이 되어 있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마을과 옥정호는 작년 그대로 변함없었다. 수위가 상당히 낮아진 것을 빼고는. 작년에 같이 오지 못해 아쉬워했던 P가 만사를 제치고 합류했는데 물 빠져 앙상한 호수를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빈집이지만 마치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온 주인을 맞이하는 듯 여전히 깔끔한 S의 처가는 정겨웠지만 쓸쓸하고 안타까웠다.


해가 산 아래로 뚝 떨어지자 주위는 금방 어둡고 쌀쌀해졌다. 만찬 장소인 옥상으로 전기선을 연결하여 식탁을 세우고 불과 고기를 준비하여 저녁을 먹었다. 모닥불도 피웠다.


작정하고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준비해온 K는 이내 가을 가득한 노래를 틀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시원한 올갱이 국으로 해장을 한 후, 전날 내려오면서 읍내에서 산 장화를 신고 밤을 주우러 나섰다. 나지막한 야산에 우뚝한 감나무들은 서둘러 잎사귀를 떨궈내고 노란 감들을 가득 매달고 서었다. 산에 웬 감나무들인가 했더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탈밭이 있었던 자리였다.


산속 밤나무 밑에는 떨어진 밤송이가 지천이서 한 그루 밑에서만도 몇 되 이상의 알밤을 주울 수 있을 듯했다. 네 명이 한 자리에서만 시간 반 정도를 주웠는데 족히 한 말은 될 정도였다. 산짐승들이 겨우내 먹을 먹이도 충분히 남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고즈넉한 가을 저녁에 분위기 잡고 듣기 딱 좋은 곡이다.


슈베르트 Franz Shubert(오스트리아 1797~1828)는 1824년에 이 곡을 작곡했는데, 이때 그는 경제적으로나 육체적, 정신적으로나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헤매고 있었다. 앞의 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에서도 얘기했듯이 한밤중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날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그의 나이 기껏 27살이었는데 죽기 4년 전이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탄생한 곡이 그지없이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다.


슈베르트 음악의 특징이 맑음과 여백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이 곡이 그렇다. 전체적으로 쓸쓸함과 우수로 가득한 곡이지만 감미롭고 우아한 멜로디가 감동적이다.



그런데 아르페지오네가 무엇일까? 슈타우퍼 Staufer(오스트리아 1778~1853)라는 사람이 1823년에 고안해낸 악기 이름이다. 기타와 같이 6개의 현을 가지고 있으며 음색도 기타와 비슷하지만 첼로처럼 세워놓고 활로 연주했다고 한다.


원래 슈타우퍼가 악기에 붙인 이름은 '기타 첼로'였는데, 슈베르트가 이 악기를 위한 소나타를 작곡하여 <아르페지오네>라고 이름 붙인 이후 '아르페지오네'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기타와 비슷한 6현 악기 '아르페지오네'


그런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쟁쟁한 현악기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아르페지오네는 곧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에 이름만 남기고.


그럼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가 사라졌으니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무슨 악기로 연주할까?


이 악기의 음역대가 첼로와 비올라의 중간(첼로보다는 높고 비올라보다는 약간 낮은)이었다고 하니 답은 뻔하다. 첼로 아니면 비올란데 대부분 첼로로 연주한다. 그래서 요즘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첼로 소나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파블로 카잘스 Pablo Casals(스페인 1876~1973)에 이은 20세기 첼로의 거장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구 소련 아제르바이잔 1927~2007)는 뛰어난 기량과 호쾌한 연주로 유명한 첼리스트이다. 또한 그는 민주와 평화의 가치를 지지하고 몸소 드러낸 첼리스트로도 유명했다.


1968년 그는 '수용소 군도'를 집필하던 솔제니친을 숨겨주고 옹호한 이유로 연주 금지와 공산 당국의 감시를 받다가 1974년에는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는 장벽 아래 의자 하나를 달랑 놓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해 전 세계인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아래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로스트로포비치


1960년 로스트로포비치는 스승인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러시아 1906~1975)가 자신을 위해 작곡해 준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런던에 갔다가 20세기 영국 최고의 작곡자이자 행동하는 평화주의자였던 벤자민 브리튼 Benjamin Britten (1913~1976)과 친분을 맺게 되었다. 이후 로스트로포비치는 브리튼이 고향 근처인 영국 동쪽 어촌 마을에서 올드버러 음악제(Aldeburgh Festival)를 시작하자 수시로 이 음악제에 참가하여 그를 응원하며 우정을 쌓았다.


로스트로포비치(왼쪽)와 브리튼, 1964년


1968년 이 두 사람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녹음하여 명반으로 남겼다.



첼로의 미덕은 깊은 저음이지만 이 연주에서 로스트로포비치는 고음 영역마저도 미덕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음반의 백미는 두 악기의 앙상블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오랜 친구와 발맞춰 걸어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로스트로포비치와 브리튼이 연주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CD (재킷 사진은 프랑스의 화가 까미유 코로의 풍경화이다)


https://youtu.be/8CW6S4gRahY

통곡하는 듯 거침없는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와 차분하고 우아하게 이를 달래주는 브리튼의 피아노가 잘 어우러진 명연이다


1악장 Allegro Moderato 조금 빠르게

피아노의 단아하고 깔끔한 연주를 바로 이어받아 첼로가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마음속에 모아둔 눈물을 당장에라도 터트릴 듯한 우수 어린 맬로디다. 조용히 가끔은 격정적으로 주제를 반복하다가 슬프지만 단호하게 악장을 끝낸다.


2악장 Adagio 아주 느리게 (13:32~)

마치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 듯한 느낌으로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인 악장이다. 끝부분에서는 첼로가 가슴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곧바로 3악장으로 이어진다.


3악장 Allegrotto 조금 빠르게 (18:07~)

2악장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3악장은 숲 속 오솔길을 걷다가 빠져나와 시원한 대로를 만난 듯 약간은 쾌활한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한다. 중간쯤(19:46)에는 빠른 춤곡풍의 리듬이 이어지지만 어느새 다시 애수 어린 주제로 돌아와 끝난다.   



사진 출처 _ 네이버 이미지


참고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박종호]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더 클래식 둘, 문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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