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조 Jul 01. 2022

같지만 다른 _ 베토벤 <월광>, 드뷔시 <달빛>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31

어릴 적엔 달을 보며 크고 작은 소원을 빌었었. 특히 정월 대보름 밤은 새해 첫 보름달을 맞이하며 온 식구들이 소원을 비는 날이었다. 이른바 달맞이. 이 날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남들보다 먼저 떠오르는 보름달을 맞이하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이미 마당에 큼지막한 달집을 쌓아놓고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붙였다. 그러면 식구들은 활활 타오르는 달집 앞에서 주문을 외우듯 "달님~  달님~ "하면서 밝고 둥근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불이 사위어갈 때쯤이면 마지막 의식을 치렀다. 한 살 더 먹은 나이 수만큼 달집을 뛰어넘어야 소원이 달에 가 닿는다고 믿었던 우리는 거의 재가 되어가며 작아진 달집을 호기롭게 껑충 뛰어넘었다.


대보름 밤 달집 앞에서 달에게 소원을 비는 아이들_이나은 그림


'달나라에토끼가 방아를  있다'는 신화를 말하 시절에 우리의 삶은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들로 풍성했었다. 그 시절 달은 주술적 힘을 가진 신비체였우리의 소원을 빌어 보내는 의지처였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의지하는 곳은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며 난무하는 인터넷 정보이다. 하지만 지금도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면 마음속으로 원하던 무언가를 되뇐다.

 


<비창> 소나타에서 잠시 했듯이 <월광 Mondshein>은 베토벤이 서른한 살에 작곡한 14번째 피아노 소나타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도 같은 이름이다. 하나는 한자어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 제목일 뿐이다. 사람들은 두 곡을 구분하기 위해 그러는지 베토벤 <월광>을 '달빛'이라고 부르지 않고 드뷔시 <달빛>도 '월광'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무튼 같은 '달빛'을 두 작곡가가 어떻게 느끼고 표현했는지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사해 활동하기 시작했던 1792년부터 1802년까지, 즉 스물두 살부터 서른두 살까지 10년 간을 '빈 초기 시절'로 구분한다. 베토벤은 이 '빈 초기 시절'에 음악가로서 이름을 날리며 막 출세가도에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던 14살 연하의 귀차르디 Guicciardi (1784~1856)라는 여인과 열렬한 사랑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즈음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c샆 단조'를 그녀에게 헌정할 정도였다. 이 곡이 바로 <월광> 소나타다. 베토벤이 작곡하며 붙인 제목은 '환상곡풍 소나타'인데, 음악 비평가인 루드비히 렐슈타프 Rudwig Rellstab(1799~1860)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 1악장을 듣고 "달빛이 비치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물결에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다"고 이야기하면서 붙여진 제목이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이미 불행을 품고 있었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 장애인 '청력 이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으며, 귀차르디와의 사랑도 결혼까지 가지는 못하리라고 예상했던 듯하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에서 "유감스럽게도 그녀와 나는 신분이 다르다네."라고 실토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베토벤과는 달리 귀족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월광>의 서정성은 사랑과 행복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악화하고 있는 귓병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예견하며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곡을 발표한 이듬해인 1802년에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베토벤이 죽은 뒤에 발견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1802년 10월 6일 베토벤이 빈 근교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여름을 보내던 중 동생인 칼과 요한에게 유서를 썼던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이 유서는 음악가로서 청력을 잃어간다는 참담함에서 작성된 것이었겠지만 죽음을 작정하고 쓴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유서를 씀으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열정을 예술 창조에 쏟아붓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다짐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또한 결과론적이다.



<월광>은 서정적이면서도 열정적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1악장으로 시작해서 두 악장을 연결하는 조금 빠른 2악장을 지나 빠르고 격렬하게 상승하여 열정을 토해내는 3악장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알고 들으면 좋다.


https://youtu.be/CEb8brQHcGk

임동혁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1악장 Adagio sostenuto 느리게 음 길이를 충분히 끌어서 (0:42~6:33)

보통 소나타 1악장은 빠르게(Allegro) 시작하지만 베토벤은 이런 틀을 파괴하고 느리게(Adagio) 시작한다. 1악장 감상 포인트는 '한 음 한 음을 깊이 눌러서 길게 끌고 가라'는 의미의 지시어 '소스테누토'에 있다. 귀차르디에 대한 사랑이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는 듯 길게 끌고 가는 '딴따다~ 딴따다~' 멜로디가 끊질기게 반복되며 제자리를 맴돈다. 베토벤 자신이 붙인 제목 '환상곡풍 소나타'답게 환상적이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서정적인 악장이다.


2악장 Allegretto 조금 빠르게 (6:37~9:00)

1악장보다는 빠르고 경쾌해졌다. 리스트가 "두 심연 사이에 핀 한 다발의 꽃"이라고 비유했듯이 서정적인 1악장과 빠르고 격렬한 3악장을 이어주는 짧은 악장이다.


3악장 Presto agitato 매우 빠르고 격렬하게 (9:00~)

이제까지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이 1악장의 서정성과 2악장의 점잖은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분노와 광기마저 느껴지는 거친 감정을 격렬하게 토해낸다. 마지막 코다에서 잠시 쉬어가는 듯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격정적으로 복귀하여 끝난다.




드뷔시 Claude Debussy (프랑스 1862~1918)는 인상주의 작곡가이다. 알다시피 원래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회화에서 시작된 흐름이다. 이들은 자연이나 사물의 색깔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빛의 강도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상주의 미술가들은 '빛의  변화가 주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네(1840~1926), 마네(1832~1883), 피사로(1830~1903), 르누아르(1941~1919) 등의 그림이 대표적이다.


'인상파'라는 이름을 만들어내게 된 클로드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출처_핀터레스트)


클로드 모네의 작품 <포플러 나무 밑에서 햇빛의 효과> (출처_핀터레스트)


음악에서의 인상주의도 그렇다. 자연에서 받은 순간적인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 일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감정을 묘사하기보다는 시시각각 변하는 아름다운 자연 그 자체의 순간적 인상을 음악으로 나타냈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과 촉각 등 다른 영역의 감각에까지 자극을 주는 효과를 추구한 것이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이다.

다시 말해 음악의 시간성뿐 아니라 공간성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중략)  인상주의 화가들이 붓으로 화면을 툭툭 터치해 미묘하고 몽환적인 효과를 얻어냈던 것처럼, 드뷔시의 음악에서도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점묘적 수법’이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_[더 클래식 셋, 문학수 39p.]



1905년에 출판된 드뷔시의 <달빛>은 <프렐류드> <미뉴에트> <달빛> <파스피에> 등 4곡으로 이루어진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Suite Bergamasque> 중 세 번째 곡이다. 드뷔시는 1890년부터 이 모음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세 번째 <달빛>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 Paul Verlaine (1844~1896)의 시 '달빛'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빛_폴 베를렌

그대(달빛)의 영혼은 빼어난 풍경화
화폭 위를 광대와 탈춤꾼들이 홀리듯이
류트를 연주하고 춤추며 지나가지만
그들의 가면 뒤로 슬픔이 비치네…

행복을 믿지 못하는 그들의 노래는
달빛에 스며드네…

고요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달빛
달빛은 나무에서 새들을 꿈꾸게 하네…

                                                             


드뷔시는 <달빛>을 통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달빛에서 받은 순간적인 느낌을 손에 잡히지 않는 미묘한 음색으로 표현했다. 뭐라고 말하기 힘든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가 느낌을 묘사했듯이 우리도 그냥 편하게 듣고 그 느낌과 분위기에 빠지면 된다.


https://youtu.be/97_VJve7UVc

조성진이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


[더 클래식]의 저자 문학수의 표현대로 드뷔시의 <달빛>은 "귀로 듣는 회화"이다.



커버 이미지  [Moonlight on Lake Lucerne with  the Rigi in the Distance,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841] 출처_핀터레스트


참고  [더 클래식 셋, 문학수]

          [최신명곡해설, 삼호뮤직]

          [위키백과_인상주의 음악]


매거진의 이전글 백건우 섬마을 콘서트_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비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