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조 Nov 06. 2022

슬픔 _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35

이태원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소개하는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5]에서 '운명'이라는 말은 '새로운 삶'을 살 아갈 힘을 주는 주술과 같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생때같은 자식을 하루아침에 앞세운 부모에게는 다 부질없는 말이다.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주술도 위로가 될 수 없다.



느닷없이 아버지를 잃어버린 나에게 "다 '운명'이라 생각해야지 어쩌겠냐"는 말은 정말 주술과 같은 힘이 되었을까? 어른이 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나는  아버지가 몹시 보고 싶었고 텅 비어버린 자리를 느낄 때마다 가슴 시렸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시나브로 그리움만 남게 되었다.


아버지를 잃은

나는 결국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의 자식을 잃어버린 나의 할머니도 그랬을까? 우리집과 200여 미터 남짓 떨어진 큰집에 사시던 할머니는 작은 아들(나의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집에 사시다시피 하면서 아들을 갈구하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아들추억하그리워하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아무도 운명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자식을 앞세운 

나의 할머니는 끝내 '새로운 삶'을 지 못하셨다.



교향곡 6번 <비창>을 작곡할 당시인 1893년 차이콥스키 Tchaikovsky(러시아 1840-1893)는 러시아 최고의 음악학교인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였으며 러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곡가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병적일 정도로 소심하고 비관적이기까지 했던 그는 자기 작품에 대해 항상 자신 없어했었는데, 유독 교향곡 6번에 대해서 만은 ‘나의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거라는 자신감을 보였었다.


하지만 작곡을 마친 같은 해 10월 28일 차이콥스키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교향곡 6번을 직접 지휘하여 초연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실패는 아니었지만 기대에는 못 미치는 절반의 성공이었던 것이다. 곡이 너무나 어둡고 절망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교향곡 6번>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차이콥스키는 동생이자 매니저 역할을 하던 모데스트와 의논하여 작품에 표제를 붙이기로 했다. 모데스트는 "tragique(비극적)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차이콥스키는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궁리 끝에 모데스트가 "pathetique(비장)은 어떨까?"라고 말하자 차이콥스키는 "그래, 바로 그거야!"라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렇게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은 <비장(悲壯)>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어 'pathetique'는 '비장한, 감동적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곡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일본에서 붙인 이름인 <비창(悲愴)>으로 소개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비장'이란 '슬프지만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하다'라는 뜻이고, '비창'은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프다'는 뜻이다.

 


그런데 차이콥스키는 <비창>을 초연하고 9일 뒤 돌연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죽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오염된 물을 잘못 마시고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비소를 넣은 물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설이다. 요즘에는 후자의 설이 더욱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알다시피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다. <비창>을 작곡할 당시 차이콥스키는 귀족의 자제와 내연 관계로 지냈는데 이를 알아챈 귀족 가문에서는 가문과 국가의 명예를 위해 차이콥스키를 처벌해 달라는 투서를 황실에 보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재판이 열렸고 '명예로운 자살을 택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한다. 당시 러시아 국교인 정교회에서는 동성애를 철저히 금지했는데 발각되면 사형을 면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130여 년 전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했을지 추측해 보면 차이콥스키가 받았을 엄청난 고통과 압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높다. 타살적 자살. 하지만 이 또한 정확한 것은 아니다.


<비창>의 4악장 피날레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듯 처연하게 끝난다. 그의 삶도 그렇게 소멸했다.

차이콥스키가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의 죽음의 사연을 알게 되었고, 이후 재연된 <비창> 연주회장은 초연 때와는 달리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항상 우아하고 세련된 음향을 자랑하는 카라얀의 <비창>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반이다. 


요즘 내가 듣는 음반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생하고 러시아에서 공부한 테오도르 쿠렌치스 Teodor Currentzis(그리스 1972~)의 <비창>인데, 카라얀과는 많이 다르다. 젊고 빠르며 짱짱하다.


굳이 말하자면 <비창>의 감정이 아닌 <비장>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는 음반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씩씩하고 장하게' 승화시킨다. 심지어 그 슬픈 <비창>에서 쾌감마저 느낄 수 있다.


우아하고 세련된 음향을 자랑하는 카라얀의 <비창>(왼쪽)과 슬픔을 슬픔으로 끝내지 않고 씩씩하고 장하게 승화시키는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비창> 음반



 차이콥스키는 작곡하면서 죽음을 염두에 두었던 걸까? 본능적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비창>은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찬 자신의 진혼곡이 되었다.



https://youtu.be/iSWeDgCXQDU

카라얀이 지휘하는 <비창>



https://youtu.be/bPjQXMcoa6s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하는 <비창> 1악장

https://youtu.be/TuwwHeqHyNs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하는 <비창> 2악장



https://youtu.be/yKbo59n70sE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하는 <비창> 3악장


https://youtu.be/w9nj4p4vJsc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지휘하는 <비창> 4악장


*아래 (   ) 안의 시간은 모두 카라얀의 연주 영상 시간이다.


1악장 Adagio, Allegro non tropo 느리고, 빠르게 그러나 과하지 않게 (00:52~)

들릴 듯 말듯한 약저음의 콘트라바스 위에 바순이 무겁고 느린 멜로디를 얹으며 서주를 시작한다. 이어서 바순 멜로디를 이어받는 주제가 제시되면서 빠르게 고조되었다가 다시 확연히 느려지면 현악기들이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제2 주제(5:28~)를 연주한다. 악장 중간 부분에서는 갑자기 관악기가 쨍하고 팡파르를 울리며 격렬해지는 부분(10:26)이 나오는데 맨 처음 들릴 듯 말듯할 때 볼륨을 높여놨었다면 깜짝 놀라지 않도록 조심해야 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현악기들은 피치카토로 현을 뜯고 관악기들이 감미로운 가락으로 평온하게 끝낸다. 슬픈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악장이다.


2악장 Allegro con grazia 빠르면서도 우아하게 (19:22~)

1악장에서 드러냈던 애절하고 슬픈 감정을 바꿔보려는 듯 러시아 민요풍의 빠르고 우아한 왈츠 선율로 시작한다. 마치 당장이라도 발레리나가 무대에 등장하여 춤출 것 같다. 하지만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끝으로 갈수록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 불안함이 가시지 않은 채 조용히 끝난다.


3악장 Allegro molto vivace 빠르고 매우 생기 있게 (28:18~)

비장(pathetique)의 뜻 '슬프지만 감정을 억눌러 씩씩하고 장하다'에서 '씩씩하고 장하다'는 뜻에 딱 맞는 악장이다. 2악장과 마찬가지로 빠른 춤곡 리듬이 전개되는데, 마치 다른 교향곡의 4악장 피날레와 같이 점점 고조되며 달려 나가다가 마침내 격렬하게 터져버린다. 가끔 몰입한 청중들이 자기도 모르게 박수를 치기도 하는 악장이다.


4악장 Finale, Adagio lamentoso 피날레, 탄식하듯 아주 느리게 (37:02~)

마지막 피날레 같았던 3악장의 격렬한 흥분이 가시기 전에 무거운 탄식을 토해내는 현악기가 심연의 문을 연다. 코 앞에 다가온 죽음을 인식한 듯 절망에 찬 탄식과 체념이 전 악장을 지배하고 있다. 마지막 엔딩 부분은 인생의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지기로 작정한 듯 '둥~ 둥~ 둥~' 스르르 떨어지며 조용히 끝난다.



참고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3, 박종호]

          [더 클래식 둘, 문학수]

          [열려라 클래식, 이헌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