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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Jul 28. 2023

아스라이 멀어진 추억을 소환하는_브람스 <교향곡 3번>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40

지난봄에 브람스 <교향곡 3번> 여러 번 들었다. 그중에서도 3악장, 언제 들어도 아스라이 멀어진 추억을 소환하는 매력적인 곡이다.


'브람스는 가을'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서 봄에는 거의 듣지 않곡이었다. 그런데 웬걸 봄에 들어도 참 좋았다.


피아스트 조성진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에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되었다.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음악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에 브람스 <교향곡 3번>을 여러 번 듣게 된 것은 조성진의 내한 공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조성진이 독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휘자는 정명훈이었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Dresden Staatskapelle)'는 1548년 독일 작센주의 주도 드레스덴을 본거지로 창단된 궁정악단(현재는 국립관현악단)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특히 브람스가 자신의 교향곡 4번을 직접 지휘한 역사도 갖고 있는 유서 깊은 악단이다.


사실 이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내한 공연의 방점은 조성진(1994~)보다는 정명훈(1953~)에 있었다. 이 오케스트라 최초의 수석 객원지휘자인 정명훈이 올해 70회 생일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정명훈을 대부처럼 생각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의 고희를 축하하기 위한 한국 단독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유럽의 유명 오케스트라가 우리나라에 올 때는 보통 일본 등 몇 나라를 함께 방문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만 연주하는 일정을 잡은 것이다.


투어 제목도 [정명훈&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였다. 조성진과의 협연 이 끝나면 이틀에 걸쳐 브람스 <교향곡  1, 2, 3, 4번> 전곡을 정명훈 지휘로 사이클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조성진바라기인 아내와 딸은 조성진을  생각에 티켓도 끊기 전부터 이미 흥분상태였다.


하지만 조성진 티켓을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티켓을 오픈하는 날 작정을 하고 예매 작전을 폈지만 장의 티켓예매하지 못했다.


나중에 누군가가 취소한 티켓을 어렵게 구했는데 두 장은 아트센터인천 것이었나머지 한 장은 예술의 전당 것이었다. 그나마 아트센터인천 티켓 두 장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혼자서 예술의 전당 3층 꼭대기에 앉아 조성진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 관한 이야기는 매거진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에 첫 글로 올렸기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런데

문제? 모든 연주가 끝나고 나온 앙코르 곡이었다. 


몇 번째 커튼콜을 받으며 무대로 나온 정명훈이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한 뒤에 짧게 얘기했다.  

“저는 음악의 끝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특별히 사랑하는 브람습니다."


그리고 바로 뒤로 돌아 시작한 곡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었다. 3일 뒤에 연주할 브람스 사이클의 레퍼토리였다.


앙코르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내 맘은 이미 3일 뒤에 있을 <브람스 교향곡 3번>에 가있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o Bernstein (미국 1918~1990)이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https://youtu.be/euZcUku9XiE

레너드 번스타인이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브람스 Johannes Brahms(독일, 1833~1897)의 <교향곡 3번>은 다른 교향곡들과는 좀 다르다.


어느 악장도 화려하고 웅장게 끝나지 않는다. 대미를 장식하는 4악장도 역시 마찬가지다. 네 악장 모두 작고 여리게 끝난다.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는 작고 여린 소리를 아주 잘 냈다. 마치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처럼 향기로왔다.


마지막 4악장을 조용히 끝낸 정명훈은 한동안 지휘봉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멈추었고 관객들은 여운 감상했다.


음악은 소리와 시간의 예술이다. 그 순간 침묵의 시간은 그 어떤 소리보다 훌륭한 연주였고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내 객석으로 돌아선 정명훈은 "우리 오케스트라 잘하죠?"라며 단원들을 칭찬하고 일으켜 세웠다. 역시 '정명훈의 슈타츠 카펠레, 정명훈의 브람스'였다.


앞뒤로 가득 찬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서 박수를 보냈다.


예술의 전당 포토존에 걸린 광고 사진과 연주를 마치고 인사하는 정명훈과 슈타츠 카펠레 단원들_2023.3.8.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연주를 들은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출근길 에서 그 3악장이 흘러나왔다.


볼륨을 높이고 차 속도를 낮추었다. 끼어드는 차가 얄밉지 않았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는 우아하게 멈추어 섰다.


골목길로 빠져 들어가 조용한 곳에 차를 세웠다. 아빠와 손잡고 등교하는 초등학교 남자아이가 예뻐 보였다. 세상이 아름다워졌다.



반칠환 시인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이라는 시가 있다.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1964~)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하는
힘으로 다시 걷는다.


브람스 교향곡이 '나를 멈추게' 했다.



브람스는 50살이던 1883년 여름 중부 독일의 비스바덴에 머물며 <교향곡 3번>을 작곡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브람스 가곡에 깊은 공감을 갖고 있던 16살의 헤르미네라는 가수 지망생이 살고 있었다. 평생 클라라 슈만을 사모했던 순정남 브람스였지만 이 소녀 가수에게는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날씨는 무더웠겠지만 브람스에겐 쾌적하고 행복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1883년 비스바덴의 그 행복했던 여름이 <교향곡 3번>을 설렘과 기쁨으로 넘치게 하지 않았을까?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Carlo Maria Giulini(이탈리아 1914~2005)가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3번>

https://youtu.be/Rpn7nxFhFQo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빈 필하모니를 지휘하여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 3번>


1악장 Allegro con brio 빠르고 활기차게

관악기들이 두 개의 화음을 길게 뽑으며 활기차고 우렁차게 시작한다. 하지만 악장 내내 그런 것은 아니고 조용히 노래하는 듯한 부분도 나오고 쓸쓸한 정서를 보이기도 한다.

  

2악장 Andante 느리게

느리고 서정적으로 쉬어가는 듯한 악장이다. 평화롭지만 좀 쓸쓸하기도 하다.


3악장 Poco Allegretto 약간 조금 빠르게

 우수 어린 첼로 선율로 시작한다. 언제 들어도 아스라이 멀어진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 들게 한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악장이다.


4악장 Allegro 빠르게

베토벤 식의 영웅적 투쟁에 나서는 듯 격렬하고 힘찬 추진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후에는 꺼지듯 조용히 사라진다. 브람스식 결말이다.  


 


참고  [이 한 장의 명반, 안동림]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박종호]

          [네이버 지식백과 (클래식 명곡 명연주, 류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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