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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조 May 06. 2022

에로틱하거나 애도하거나 _ 말러  '아다지에토'

초보자의 클래식 일기 27


'반복'의 힘은 대단하다. 낯설고 싫은 일도 반복하면 몸이 기억하여 버릇이 된다. 그리고는 이내 낯익은 일상이 되어버린다. 코로나 상황 역시 그렇다. 2년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낯설고 답답했지만 이제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져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잠시 숨어 지내면 금방 지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2020 코로나 원년, 누구나 그랬듯이 공포에 질려 고립된 듯한 반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 한여름에 생각지도 못했던 공연에 갈 기회가 생겼다. 밀리고 밀려 열린 '교향악 축제' 레퍼토리에 말러 <교향곡 5번>이 있었다. 4악장 '아다지에토 Adagietto'를 많이 들었지만 전곡(全曲)을 들을 기회였기에 서서히 좁혀 오는 코로나의 위협을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금방이라도 홍수가 날 듯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를 뚫고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니 콘서트홀 입구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QR코드를 찍고 열을 재는 등 일일이 출입자를 확인하기 때문이었다. 직원들도 방문객들 익숙지 않은 절차를 안내하고 따라가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무사히 홀에 입장했을 때는 큰 숙제라도 마친 듯 마음이 놓였다.


좌석은 2층 오른쪽, 가격도 착하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전체를 조망하며 들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자리다. 오케스트라는 하프를 포함해 100명이 넘어 보이는 대편성이었는데 지휘자와 관악기 연주자를 빼고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진풍경이었다.


드디어 지휘자가 등장하고 박수 소리도 멈추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긴장감과 관객들의 기대감이 교차하는 짧은 정적의 순간이 흘렀다.

곧이어 솔로 트럼펫의 쓸쓸한 팡파르가 정적을 깨고 1악장 시작을 알렸다.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이 번개가 내리치듯 몸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드는 현의 강렬함으로 시작한다면, <교향곡 5번>은 트럼펫 팡파르에 이은 금속 타악기 심벌즈까지 동원한  오케스트라 총주가 어둡고 무거운 장송 행진을 이끌며 시작한다.



말러 Gustav Mahler(오스트리아 1860~1911) <교향곡 5번>은 연주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는 대작이며 <교향곡 2번, 부활>과 더불어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 Adagietto’ 많이 알려져서 모르긴 해도 교향곡 전체를 듣는 사람들보다도 이 ‘아다지에토’만 따로 듣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다른 악장들과 달리 아름답고 듣기 쉽기 때문이다.



1897년부터 빈 궁정 오페라 극장(현재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바쁘게 활동하던 말러는 20세기로 들어서면서 인생의 극적인 반전을 겪게 된다. 1901년 초, 그는 장출혈로 쓰러져 큰 수술을 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보는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건강을 회복한 그에게는 일생일대의 반전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해 11월 열아홉 살이나 연하인 알마 신들러 Alma  Schindler (오스트리아 1879~1964)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와 아내 알마 말러(출처_네이버 이미지)


그런데  알마가 누구던가? 당시 빈 사교계의 이름난 미녀였으며 작곡가였다. 그리고 화가 클림트의 첫 키스 상대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는 바로 이 알마와의 키스를 모티브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말러는 이래저래 속이 탔지만 연애 기간은 의외로 짧았다. 다음 해 봄 드디어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아마도 알마는 빈 필하모니의 지휘자(1898~1901)였으 빈 궁정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1897~1907)인 말러의 앞날이 창창하리라고 예견했던 모양이다.


그가 5번 교향곡을 작곡했던 시기가 바로 그즈음이다. 그래서 <교향곡 5번>에는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말러의 드라마틱한 삶의 곡절이 영되어 있다.

그중 4악장 ‘아다지에토’는 알마를 향한 말러의 간절한 사랑 고백이다.



실제로 말러는‘아다지에토’를 작곡한  후 자필 악보를 알마에게 보여주었고 알마는 그 사랑의 고백을 알아차렸다.


알마가 모델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출처_https://www.belvedere.at)



'아다지에토’는 알마를 향한 말러의 사랑의 밀어인데 에로틱하면서도 슬픔이 배어있다. 그래서인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곡을 추모곡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사랑의 노래와 추모곡, 언뜻 모순처럼 들리지만 누군가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것'이니 사랑의 감정과 슬픔이 교차하는 이 곡을 추모곡으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말러 <교향곡 5번>은 전체 5악장인데 3부로 이루어져 있다.

Part Ⅰ  1악장 '장송 행진곡'
                2악장 '폭풍 같은 격렬함으로'
Part Ⅱ   3악장 스케르초, 활기 있게
Part Ⅲ   4악장 '아다지에토'                                
                5악장 론도_피날레  



하프와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아다지에토'는 누구든지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악장이다.


https://youtu.be/75YmlDR92UQ

정명훈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아다지에토'



헌신적 지휘자의 모범을 보여준 존 바비롤리 경 Sir John Barbirolli(영국 1899~1970)이 뉴 필하모니아를 지휘한 깊고 풍부하면서도 담백한 연주는 놓칠 수 없는 명반이다.

바비롤리 경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 5번>은 깊고 풍부하면서도 담백하다.


https://youtu.be/BXtnkgELVTM

 바비롤리 경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 5번>은 깊고 풍부하면서도 담백하다. (4악장 '아다지에토' 47:00~56:53)




참고  [더 클래식  셋, 문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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