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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ug 12. 2021

실패한 22살

전 못할 것 같아요!

이 동화는 감수성에 한껏 젖은 대학교 4학년 시절,
사춘기 겸 오춘기였던 내가, 눈물을 머금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쓴 글이다.
나는 동화속 토토처럼 살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누군가는 오글거린다 할테고,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22살때의 나는 정말 죽도록 슬펐으며, 정말 죽을만큼 선생님이 하기 싫었다.  


<토토의 길>


어느 날 아기 토끼 토토가 태어났습니다.


토토 앞에는 부드러운 흙길이 나있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렴!” 엄마 토끼가 말했습니다.

토토는 깡총깡총 한 걸음씩 걸어 나갔습니다.

“이 길을 걸으면 무엇이 있나요?” 토토가 물었습니다.

빨갛고 동그란 열매가 있지. 아주 맛있고 예쁘단다.”

아빠 토끼가 말했습니다.



빨간 열매. 빨간 열매.

동그랗고 예쁜 빨간 열매.

토토는 빨간 열매를 생각하며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토토는 걷는 것이 지겨워졌습니다.

‘너무 지루해. 정말 심심하고.’

아기 토토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똑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친구 토끼들이 보였습니다.

 “안녕! 너도 빨간 열매를 찾아 걸어가는 거니?”

 “응! 저기 주위를 둘러봐봐! 저 토끼들 모두 함께 가는 거야!”

아기 토토는 친구들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친구 토끼들과 함께 걸으니 즐거웠습니다.

재잘재잘. 깡총깡총. 아기 토끼는 또다시 걸어갔습니다.

 


  또 한참을 걷던 어느 날 토토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발도 빨개지고 숨이 찼습니다.

  “엄마, 아빠! 너무 힘이 들어요!”

 엄마 토끼와 아빠 토끼가 뒤돌아 아기 토끼를 바라보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렴. 거의 다 왔단다.”

 부드러운 흙길을 만들고 있던 엄마 토끼와 아빠 토끼의 발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아기 토끼는 조용히 다시 걸었습니다.

  



 아기 토토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엄마 토끼와 아빠 토끼는 보다도 훨씬 더 커졌습니다.

한참을 걷던 토토가 고개를 들자, 길 밖 저 멀리 검초록빛 파도가 넘실거렸습니다.

그 파도 사이로 무엇인가가 반짝하고 빛이 났습니다.


"엄마 저기 저 초록 파도는 뭔가요? 아니 세상에! 색이 매번 변하는 것 같아요!  정말 멋져요!"

"멋지다니 토토! 저건 숲이라는 거야. 저 숲으로 가면 절대 안 된다. 숲은 아주 무서운 곳이야."

"왜 무서운데요?"

"숲 안에는 온갖 것들이 있거든.

토끼를 잡아먹는 아주 무서운 동물들과 이리저리 뾰족한 풀과 나무들.

더러운 흙먼지와 벌레들까지 모든 것이 널 괴롭힐 거야."

"하지만, 다치지 않는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전 숲이라는 곳에 한 번 가보고 싶어요!"

 



 토토는 숲으로 가 오색찬란한 빛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려면 길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나는 왜 빨간 열매를 향해 걷고 있었지?”  

하지만 토토 주위에는 길을 만들거나, 걸어가는 법을 아는 이만 있었습니다.

길 밖으로 나가는 법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친구 토끼들도, 엄마 아빠 토끼도, 주위 모든 토끼들 모두가

길 밖에는 아주 무서운 괴물들이 잔뜩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길을 걷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대.”

 “찬란한 빛? 하하 그게 대체 뭔데?”

 “빨갛고 동그란 열매를 놔두고 그걸 왜 찾아야 하지?


토토는 더 무서워졌습니다.



  이제 친구 토끼들은 길을 향해, 빨간 열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길을 걸으면서도

 하루 종일 울창한 숲과 나무 밖에는 생각할 수밖에 없어 눈물이 났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숲으로 갈 수 있는 걸까?’

 숲이 보고 싶을 때마다 토토는 발만 더 빠르게 굴렀습니다.



 그렇게 길 위를 한참을 달려가던 어느 날,

토토의 옆으로 괴상망측한 동그란 공이 데구르르르르 굴러왔습니다.


 “우와! 이게 뭐야!” 토토는 깜짝 놀랐습니다.

데구르르르르 굴러온 공은 몸을 펴보고 토끼를 향해,

 “안녕?” 인사를 하더니,

 “우하하하하하하하! 재밌다!” 노래를 부르며 겅중겅중 뛰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토끼였습니다.


털색도 희지 않고, 발도 보드라워 보이지 않고, 상처투성이지만,

귀가 길고 눈이 까맣게 빛나는 그것은 분명 토끼였습니다.

 “갈색 토끼다! 모두 피해! ”

 “길 밖으로 나가면 저렇게 되는 거야! 정신이 나가 버렸다고!” 모든 토끼들은 수군댔습니다.    


 길을 걷고 있던 토토도 정말 놀랐습니다.

 토토는 갈색 토끼에게 타박타박 다가가 물었습니다.  

 “너 정말 길 밖으로 나갔었니?”

 “응! 방금도 길 밖에 있었는걸.”

 “정말? 근데 왜 넌 토끼이면서 빨간 열매를 찾지 않니?”

 “토끼면 빨간 열매를 꼭 찾아야 하는 거야? 난 숲에서 보랏빛 열매를 직접 키우며 사는걸.”  


“열매가 보랏빛이라고? 난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야 길 위에는 붉은 열매뿐이니깐."

" 갈색 토끼야! 나도 한 번 길 밖으로 나가 보고 싶어! 어떻게 하는 건지 알려 줄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뾰족한 풀들과, 더러운 먼지와, 무서운 동물들을 피해 길 밖으로 나갈 수 있니?”


 갈색 토끼는 토토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길 밖으로 나가는 방법 같은 건 없어. 그냥 나가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조금만 더 알려줘!”

 “미안! 나 이제 가봐야 해! 빨리 내 열매에 물을 줘야 해서! 난 먼저 갈게!”

 “잠깐만! 가지 말아 줘!”

 


 토토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토토는 다시 뛰었습니다.

그냥. 그냥. 그냥.

토토는 길을 열심히 뛰며, 그냥이 무슨 뜻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토토는 문득 자리에서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길 가장자리까지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갔습니다.

토토는 길 가장자리에서 자신의 한 발을 길 밖으로 내밀어 보았습니다.

하얀 발이 파르르 떨려왔습니다.



 ‘무서워.’


토토는 다시 발을 길 안으로 넣었습니다.

토토는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토토는 한 번 더 길 밖으로 자신의 발을 내밀어 보았습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습니다.

무서운 괴물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정말 무서워.’


하지만 토토는 두 눈을 꼭 감고,

용기를 내어 길 밖에 자신의 발을 내디뎠습니다.


으으

으으으

으으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으으! 


쇽!

토토의 작은 발이 길 밖에 있었습니다.

 

우와! 내가 해냈다!! 내가 해냈다고!!!  


그 순간, 토토는 뾰족한 풀이 무서워 발을 움츠리고, 괴물들이 무서워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라, 이상한데?’

토토는 나머지 발도 슬며시 길 밖으로 내디뎠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토토는 깡총! 뛰어 보았습니다. 토토는 뛸 수 있었습니다.

깡총깡총

길 밖에서도 토토는 뛸 수 있었습니다.

 



'진짜 그냥이 그냥이었잖아!'

토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습니다.

다른 토끼들이 깜짝 놀라 길 위에서 소리쳤습니다.

“어딜 가는 거야! 거기로 가면 위험해!”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돌아와! 너 큰 일 난다!”

토토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요.”

 

토토는 숲 속으로 모험을 떠났습니다.  



겨우 12살밖에 안된 친구들이
어려워요
저는 바보라서 못해요
아마 안될 거예요
어차피 전 성공 못할 거예요 하며 시무룩해진 걸 보면,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참을 수 없이 화가 솟구쳐서 매번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이상했다.
허허실실 낭창한 인간인 내가 왜 유독 저 말들에만 머리끝까지 화가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죽기보다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시무룩해하는 아이들한테서 나를 보았다. 남들이 비웃을까 두려워하고, 안될 거야 걱정하던 12살의 나. 적당히 타협한 꿈을 애써 만들어 낸 뒤 끝내 이 정도면 괜찮다 자조하던 19살의 나.       

'도전해봐, 가끔은 틀려도 돼, 실패해도 돼'라고 아이들을 위로할 때마다, 정작 내 마음은 아렸다. 쓰린 마음에다 대고, 아직까지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냐고, 철이 없다며 자책했다.
 
 이제 나는 대개 행복하다. 완벽히 괜찮아졌다 라고 확신했지만 아니었나 보다. 99번의 괜찮은 밤이 지나고 나면, 참을 수 없이 슬퍼지는 하루를 못 본 척 견뎌야 했다.
 
애써 괜찮은 척하지 말고. 하루 정도는 마음껏 후회해야겠다.
실패해도 괜찮은 것처럼, 가끔은 후회해도 괜찮다.  

아이들을 위로해주는 것처럼, 가끔은 나도 위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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