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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Feb 03. 2022

최악의 3

사회적 '동물'의 세계_ 짝짓기와 서열

 한창 입시 준비를 하던 때에는 짝수를 싫어했다. 1등 3등은 기분 좋은데, 2등과 4등은 괜히 진 것 같고 아쉬운 심리였다. 이왕이면 2보다는 1, 4보다는 3. 그런데 학교에서 일을 몇 년 하고부터는 짝수가 사랑스럽다. 안정감 있고 얼마나 좋아! 홀수들은 대체로 무정하고, 역시나 불안하다.


 특히 그중에서도 3은... 정말 최악이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속담도 싫어했다. 어쭙잖은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교직 입문 후에 옛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역시 속담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구나! 여자 셋이 모이면 진짜 접시가 깨졌다. 문제가 거기서 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남자 셋이 모여도 접시가 깨졌다.

 

 아하 유레카! 사람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지는구나!

 젠장할!


 아니, 깨졌다는 표현은 너무나... 예의 바르다. 박살 났다. 아니다. 그냥 박살이 아니다. 개박살이 났다. 그렇다. 정말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났다. 사람이 셋 모이면 접시가 개박살이 다! 둘 일 때도, 넷 일 때도 멀쩡하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블링블링 접시들은, 셋만 되었다 하면 작살나게 조각조각 박살이 나서 나를 미치게 했다.





 접시가 깨지는 방법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유치하고 잔인하지만, 교실에서 관찰하고 아이들이 말해주었던 동물의 세계를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해 보려 한다.


 첫째, 짝짓기. 

 학생들마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여학생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형태다. 3명이면 2명과 1명으로 나뉜다. 5명이면 2명, 2명, 1명으로 나뉜다. 즉, 1명이 남는 것이 핵심이다. 이 종족들은 혼자 남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그래서, 애초에 그룹을 만들 때 최대한 짝수, 그중에서도 가장 안정된 4명을 선호한다. 4명이 되지 못했을 경우에는 차라리 교실 내의 영향력이 작아지더라도 두 명씩 다니는 것을 편해한다.


  1명이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최선책> 교실에서 성향이 비슷하며 데리고 다니기 '창피하지 않을' 1명을 매의 눈으로 관찰한 뒤, 영입하여 짝수 무리로 만든다. 물론 학기 중에는 이미 파벌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에, 어렵고 위험이 따른다. 내 파벌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다른 파벌의 한 명을 빼내야 하기 때문이다.


<차선책> 1명을 떨군다. 이때부터는 총성 없는 전쟁의 시작이다. 소송을 진행하는 것 마냥 서로의 작고 세세한 단점까지 들추기 시작한다. 이때 아이들이 서로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언급하는 '단점' 및 '이 아이와 놀지 않는 이유'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단점'이 있어서 놀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명을 떨구어 내기 위한 단점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애초에 안정된 짝수 그룹일 경우 '단점'이 있어도, 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둘째, 서열 만들기. 

 남학생들에게 많이 보이는 형태이다. 이 종족은 굳이 짝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에 홀수여도 겉으로는 그나마 잘 지내는 편이다. 대신, 서열을 매긴다. 2명일 때는 정말 간혹 가다 '공존'의 개념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3명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거의 백 퍼센트의 확률로 1위, 2위, 3위를 만들어 낸다. 이 서열은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대개 본능적이다. 파벌이 커지면 서열은 더 세분화되고, 계급 간 태도 역시 더욱더 고착화된다. 여학생들과 달리 직접적인 폭력성을 띌 때도 있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하굣길에 서열 1위인 학생이 파벌 내에서 별 볼일 없는 농담을 던진다.

"야, 왕이 넘어지면 뭔지 아냐? 킹콩임 ㅋㅋㅋㅋ"


 그 무리의 서열 2위인 학생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아 X발, X나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 터졌다 ㅋㅋㅋㅋ"


 하지만, 서열 3위인 학생이 동일한 농담을 던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럴 때 대다수의, 서열 2등 학생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아 ㅋㅋㅋㅋㅋ X신 같은 농담 하네. 지같이 개노잼임 ㅋㅋㅋㅋㅋㅋ"


 묘하게 언어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낄낄거리는 분위기 자체는 변하지 않기에, 이 농담에 진지하게 받아치거나, 웃지 못한다면 서열 3위의 학생만 우스워진다.  소위 말해 '개씹 노잼 진지충'이 되어, 무리에서 잔인하게 떨구어지거나 더 철저하게 밟힌다. 버려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인정하고 종속되던지, 쿠데타를 일으켜 서열을 뒤집던지. (좀.. 평화로운 방법은 없는 거냐 얘들아.. ㅜㅜ)


  혼자 서 있어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12살이 몇이나 될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에 뼛속 깊이 공감한다. 다만, 내가 본 청소년들은 '사회적'이긴 한, '동물'에 가까웠다. 다듬어지지 않은 동물적인 본성들이 시퍼렇게 벼려져 맞물리는 교실이라는 정글 속에서,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라떼(?)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모든 세계가 전부 친구인 시절이 있었다. 인생의 단짝을 기필코 만들어내야 한다는 소유의 불안이 나를 괴롭게 하던 시절이었다. '내' 친구가 다른 아이와 귓속말을 하기 시작하면 불안하다. '내' 친구가 나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불안하다. '내' 험담을 하지 않을까 불안하다. 험담을 당하지 않으려 억지로 무리에 끼어든다.


까고, 까이는 일상의 반복.

날카롭고 지겹고 익숙해진 불안함.

 

 현장 체험학습을 가야 하는데 여자 아이들이 혹여나 홀수면 그때부터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현장체험학습과 수학여행 전후 시즌은 여자아이들의 기싸움과 파벌 형성 최정점의 시기다. '너 나랑 같이 앉을래?'로 시작되는 짝 구하기, 뒤 이어지는 파벌 형성과 방 배정, 누군가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게 내가 아님을 안도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 그 한심스러운 자괴감. 그렇게 애썼음에도 항상 2순위로 밀려나는 기분. 나는 그 징글징글했던 생존본능과 소외감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싸움들이 '그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교실 속 아이들은 어쩌면 어른보다도 훨씬 더 처절하고 치열하다. 




 친구 관계에 집착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해 달라고 우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참 안쓰럽다. 그리고 십 대 때, 죽을 때까지 평생 갈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그 패기 넘치는 다짐과 눈물이 발칙해서 귀엽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문장만큼 인간의 특성을 잘 설명한 것이 있을까?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붙잡고 기댈 '누군가'를 찾아다니는 그 마음. 모든 교실 내 갈등의 근원을 파내고 파내면,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것은 결국 언제나 불안함이었다. 혼자로는 부족해서 주변인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한다. 혼자이기 두려워서 부조리를 애써 참아낸다. 불안한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사람들 위에서 군림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결국 갈등을 겪는 모든 아이들은 불안함을 느낀다.


 너에게서 영원한 1순위가 되고 싶다는 구차한 소망이 드러나는 순간이, 관계에서 '을'이 되는 시작점이라는 것을 그때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회적 관계 이전에, 그냥 '존재' 자체로도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매번 뭐가 대체 그렇게 불안했을까. 왜 혼자로는 부족하다 생각했을까. 왜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어 의 의미를 찾으려 했을까. 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지 못했을까. 후회한다. 허울 좋은 반쪽짜리 우정 말고, 신뢰와 추억을 켜켜이 쌓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나중이었다.


  불안함과 낮은 자존감을 이기지 못하고 '같이 다녀도 괜찮을 애' 혹은, '만만하게 놀기 좋은 애'만 절실하게 찾아대는 사람에게는, 절대 진정한 친구도 우정도 찾아오지 않는다. 애쓰면 애쓸수록, 딱 유통기한 1년짜리의 간사한 마음과 후회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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