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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ug 15. 2021

짜릿한 비행의 맛!(2)

왜 욕하면 안 되는데요?  

 * 이 글에는 평소 학생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들이 가감 없이 적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2fb074f8c005465/21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문제의 그날은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되었다. 많은 숙제와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득인 여느 평범한 학생의 하루였다.


  학원에서 간신히 단어 시험을 마치고 나니, 세상에! 추가 진도로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새로운 교재를 한 권 더 나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지금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데, 공부를 더해야 한다고? 나는 머리에 김이 펄펄 나는 채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저녁을 하고 있었다. 솔솔 나는 밥 냄새가 참 따뜻한 부엌에서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고 있는 엄마를 향해 나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엄마~ 나 영어학원 끊으면 안 돼?"


"왜~ 무슨 일 있었어?"


"응! 오늘 영어학원 진짜 어이없어! 단어 시험도 하루에 40개씩 쳐야 하는데, 내일부터 문법 숙제까지 새로 나가겠다는 거야!"


"그래? 그럼 공부할 양이 더 많아지는 거야?"


"어! 진짜 존나 많아지는 거지! 단어 시험 존나 짜증 나!"


".........."


숨 막히는 정적.


치익치익치익

칙칙칙칙칙칙

애꿎은 전기밥솥만 미친 듯이 김을 뿜어냈다.


 4학년 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사고 한 번 치지 않는 착실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엄마는 순수한 어린 나의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어떤 자식이 이런 말을 가르쳤는지 당장에라도 알고 싶어 했다. 10여 초 즘 지났을까,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엄마의 동공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비명.


"너 너 너.... 너! 누가 이런 말 쓰랬어!!!!! 누가!!!!!!"


"???????????? 뭐가?"


"너 방금.... 방금!! 뭐라 그런 거야? 다시.. 다시 말해봐!!!!!"


"?.... 단어 시험 존나 많다?"


싹둑!


들리는가?

이것은 간신히 남아있던 우리 어머니의 정신줄을 내가 가위로 끊는 소리이다.


 이 날 아주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났다. 참회의 눈물이었냐고? 글쎄 솔직히 억울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맹세컨대, 정말 몰랐다. '존나'라는 말은 그냥 거칠고 멋진 어른의 '너무'같은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12살 정도면 다 컸으니 그 정도의 말은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남자 성기를 어쩌고 하는 뭐 그런 뜻인 줄 알았겠나?


 하지만, 그 죽일 놈의 호기심이 또다시 나를 자극했고, 나는 우는 와중에도 물음표를 멈추지 않았다.


"흑흑 흑흑.. 근데... 왜 안돼?"

 

"계속 설명했잖아! 엄청 나쁜 말이라고! 진짜 나쁜 뜻이야!"


"... 무슨 뜻인데??? "


"엄청이라는 걸 아주 나쁘게 표현한 말이야.'


"왜 나쁜데? '정말'도 되고 '엄청'도 되고 '너무'도 되고, '졸라'도 욕은 아니라며?"


"그래. '졸라'는 나쁜 말이지만 욕은 아니야. 하지만 '존나' 는 절대 사용하면 안 되는 나쁜 욕이야."


"그럼.. 흑흑흑... 졸라존나랑은 뭐가 다른데??!"


"... 그냥.... 하지.. 말라면...... 좀 하지 마!!!!!!!!!!!"


 결국 그날 난, 궁금했던 모든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다. 엄마가 저렇게 화를 내는 걸 보니 '존나'나 '시발'같은 말은 사람들이 아주 화가 날 때 쓰는 나쁜 욕이구나! 그리고... 이 말할 때는 어른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구나! 


 몰래 해야지!  


 원래 하지 말라고 하는 순간부터 더 하고 싶은 심리를 아는가? 정말 부끄럽지만 그날 이후로도 종종 친구들과 함께 내 욕설은 계속되었다. 그 맛은 마치 뭐랄까.. 막 뚜껑을 딴 차가운 콜라처럼 너무 짜릿했다.


 욕과 함께라면 평범하디 평범했던 내 인생도, 동대문 엽기 떡볶이 마냥 자극적으로 바뀌었다. 떡볶이가 맛있어도 '시발 맛있다!"라고 하면 더 맛깔나는 것 같고, 숙제가 많을 때, '존나 많다!"라고 하면 왠지 선생님께 반항하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착각 같은 거 말이다.  


 별 소용없을 자기변명을 몇 마디 보태보자면, 분위기에 휩쓸리는 초등학생에게 욕은 일종의 '사회적 언어'이자 '스트레스 해소' 장치였던 것 같다. 그런 거친 언어를 쓰지 않으면 왠지 친구들 사이에서 뒤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풀렸다.


 지금이야 힘들 때 여행도 가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하지만 10대 때는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책을 좋아하는 모범생 DNA를 타고난 내게 술 담배를 한다거나 학원을 땡땡이친다거나 하는 비행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과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피카츄 돈가스를 사놓고,  '수학 숙제 존나 많네' 라던가, '아 학교 개 가기 싫네 시발.'이라고 낄낄대며 학원 숙제 하기.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반항은 딱 이 정도였다. 



  가끔 친구들과 한 잔 하러 호프집에 들어설때면, 어른들의 술집이나 아이들의 분식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와 시끄러운 웃음으로 시작되는 자리. 시간이 무르익을수록 간간히 들리는 한숨소리에 보태지는 눈물. 거기에 싸움 난 테이블까지.


그리고 욕! 술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욕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에게 절대 들키기 싫은 비밀, 하지만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는 사실. 어른도 힘들 때 욕을 한다.


힘들었던 하루에 내뱉는 그나마 최대치의 반항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아 본다.

이것마저 무조건 안된다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팍팍하다고!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욕으로 신나게 수다 떠는 아이들'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려다가도, 그래 그러려니 하고 만다. 굳이 혀를 끌끌차며 한마디 보태기에는 내 12살이 너무 별 볼일없다. 그냥, 너희들도 인생살이에 고달플 일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구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요즘 세보이고 싶은 누군가가 생기고 있니? 싶기도 하고.


  이 글은 절대 '욕을 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지겹도록 바른언어사용 교육을 실시하고, 어휘력 향상이나 습관 형성을 위해서라도 욕은 지양되는 것이 분명 옳다.


  학교에서는 '무슨일이 있어도 학교에서는 절대 욕 하지 말 것.' '욕하면서 싸우거나 남을 험담하지 말 것.' 이 두 가지 원칙만 강조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이며 이제부터 절대 욕을 사용하지 않겠다! 장담하는 아이들을.. 당연히 완벽히 믿지도 않는다. 


 나는 아이들이 비속어를 쓰는 것보다, 아이들이 언제나 어른들을 바라보고 배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무섭다. 불타올랐던 사춘기가 한 때였듯이, 아이들도 몇 년만 지나면 세상이 떠나가라 욕을 내뱉던 자신들의 모습을 멋쩍어 하며, 한뼘 더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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