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 게스트하우스의 이층 침대에서 눈을 떴다.뻑적지근한 아랫배의 무게감에 압박이 느껴진다. 어지간히 많이도 먹었는데 화장실 소식이 전혀 없다. 돌아버리겠네- 뒤에서도 계속 얘기하겠지만, 여행지에서 이렇게까지 지긋지긋하게 생리현상 생각을 한건 처음이다.
타국에서의 아침은 언제나 생경하다. 난 아직 이곳이 한국 같은데- 이곳이 정말 몽골이 맞는가. 일종의 인지 부조화다. 이층 침대 위, 약 40cm 앞에 하얀 천장이 내 눈앞에 들이닥친다. 벽과의 거리가 당황스럽게 가깝다.몽골도 이제 내 앞에 들이닥쳐버린 거다. 여행지는 매번 그랬다. 서서히 오는 게 아니고 들이닥쳐버린다. 나한테는 당장 지금 귀국할 비행기 표를 살 돈도 없고 깡도 없고, 아랫배는 묵직한데 아침 조식은 또 맛있고!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은 왜 언제나 맛있는가
우선은, 오늘 처음 만난 가이드와 기사님과 인사를 나누는 편이 좋겠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게스트하우스 계단을 내려가니, 10박 11일간 우리와 함께할 몽골 가이드님이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그 옆에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무뚝뚝한 젊은 기사님도 슬쩍 보인다.
자유 여행이 불가능한 몽골에서는, 현지 가이드, 기사님과의 인연이 굉장히 중요하다. 단순히 여행안내를 해 주는 차원을 넘어 여행 기간 내내 같이 먹고, 자고, 동고동락할 동료다. 몽골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 직접 뚝딱하고 한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몽골에서 우리의 눈과 입이 되어줄 은인이기도 하다.
우리를 가이드해주는 몽골 현지 가이드의 이름은 시내이고 한국 나이로 37살인데, 20대 때 몽골에서 법학대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넘어와 7년 간 파주와 구미 공단에서 일을 하셔서 한국어가 아주 능숙하시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큰 아들이 만으로 14살. 막내는 올 8월 첫 돌을 앞두고 있다. 가이드 일은 2019년부터 시작하셨는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고, 제대로 된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은 2022년 즈음부터였다고 한다. 가이드 일은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시내에게는 이 가이드 일이, 한국에서의 빡빡하던 공단 생활에 비하면 아주 행복하다며 웃었다.
그리운 가이드님과 기사님
시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를 짚었다. 오 마이 갓. 그럼 첫째가 한국 나이로 중2인 거잖아? 내가 하늘의 점지를 받아 잉태에 성공해 오늘 당장 애를 낳아도 불가능한 건데. 주변에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오랜 기간 연애를 해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싫다기보다, 기혼의 삶으로 나아가기 두렵다는 편이 맞는 것 같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가정을 이루며 얻는 행복은 추상적이었고, 잃게 되는 것은 너무 명확했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면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들이 떠올랐다. 밥벌이와 육아의 삶은 너무 고단해 보여 뛰어들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밥벌이의 끝에도 과연 행복이 있는 것인가-라는 배부른 고민은 곧 닥칠 서른을 앞둔 20대 후반의 아주 뻔하지만 필연적인 술안주였다.
그에 반해, 몽골의 젊은이들은 결혼이 무척이나 빠르다. 남자 기준 20대 중반이 결혼의 적령기라고 하니, 내가 몽골에 갔으면 아마 시집가라는 잔소리를 오천번은 넘게 들었을 거다. 점심 식사 때 시내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시내는 관광 성수기가 지나고 나면 가족들에게 갈 것이라고,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명문 법학대를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일 년에 반을 가족들과 떨어져 살며, 20대 때부터 생업 전선에 뛰어든 시내가 가족사진을 보며 짓는 미소의 깊이를 가늠하기에는 아직 인생의 경험치가 너무 소박했다.
오늘의 여행지는 '차강 소브라가'. 알고 있는 사전 정보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이곳은 몽골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린다. 둘째, 지금부터 도착지까지 400km 이상을 달려야 한다. 400km?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럼 3시간 정도 걸리려나. 친절한 ktx 고속열차에 길들여진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생각을 잠깐 한다.
오늘 보게 될 차강 소브라가
몽골의 총면적은 약 1억 5600만 ha. 대한민국 영토의 약 15배 이상이다. 그에 비해 인구는 고작 360만 명. 남한 인구가 5000만 명이라고 가정해도 겨우 15분의 1 정도이다. 우리나라보다 15배 넓은 땅에서 15분의 1 정도 되는 사람이 모여 산다 치면, 대한민국에 비해 인구 1명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무려 225배나 많아진다.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이 여유롭다.
한국은 시간과 분 단위에 익숙해져 있다. 내비게이션에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면 이동 시간이 자동으로 계산되어 나오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식당 벨을 누르면 아무리 늦어도 10초 안에는 회신이 오고, 얼마나 신속하고 싸게 배달이 오는지가 평점으로 매겨지는 게 일상인 곳이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라고!
도착한 지 겨우 딱 하루가 지났는데, 나는 몽골의 속도에 당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어제 갔던 식당부터 말하자면, 몽골 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유명한 곳이었는데도, 호출 벨은 유명무실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벨을 눌러도 세월아 네월아 직원이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답답해 미치는 것은 오로지 우리들 뿐. 직원들은 그 특유의 너그럽고, 온화한 미소로, 그러니까 '나는 전혀 늦지 않았습니다' 미소로 관광객을 미치고 팔짝 뛰게 했다. 어쩌겠는가, 몽골에 갔으니 몽골법을 따라야지-
몽골에서는 "몇 시간 걸려요?"라는 질문이 애초에 없다. 비포장 도로의 상태, 도로 정체 상황, 날씨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오늘 몇 km 간다 라는 거리단위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똑같은 거리라도 한국에서 걸리는 시간보다 최소 2배 이상 걸리는 것이 포인트다.
대한민국에서 400km를 이동하면 서울-부산을 잇는 ktx를 타면 3시간이 채 되기 전 도착할 테지만, 60퍼센트 이상이 비포장 도로인 몽골 들판에서 차를 타고 달리면, 식사와 쉬는 시간을 포함해 무려 8시간이 걸린다.그래서 몽골 여행은 이동을 빼놓고서는 논할 수 없다. 다른 여행에서는 버려지는 이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몽골은 이동이 곧 여행이자 몽골 그 자체이다.
몽골에서 이동은 곧 여행이다
몽골에서 체류한 열흘 중삼분의 일은 차 안에서 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쿵더러덕덕- 쿵쾅 쿵- 엉덩이에 자진모리장단이 울려 퍼지는 대로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른다. 끝없는 푸른 들판을 바라보기만 해도 시간은 쑥쑥 잘만 갔다. 당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달달한 간식을 나누어 먹었고(심각하게 친해지면 심지어 보드카를 마시며 노는 팀도 있다고 한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에어컨도 없는 차 안에서 한 덩이의 찐만두가 되어 살기 위해 잠이 들었다.
내비게이션도 없이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는 기사님께 여행자의 조바심은 잠시 맡겨두고,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여유가 좋았다. 몽골에서 일단 내 하루를 맡겨두면, 어딘가에는 도착해 있다. 여행 메이트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며 비포장도로를 하루 종일 달리는 게 일정의 전부일 때도 있었다. 더위에 취약한 커다란 몸뚱이는 6인승 푸르공 안에서 고통스러운데, 마음은 편하다 못해 녹아내린다. 몽골 여행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에어컨을 포기하고 얻은 푸르공 감성샷-
몽골의 그랜드캐니언 차강소브라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Hyper Market)에서 쇼핑을 하고 달렸다. 식당에 들러 소, 닭, 돼지로 이루어진 고기 플래터로 점심도 먹고 또 한참을 달렸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하면 들판에 차를 세웠다. 지평선이 보이는 화장실 뷰는 또 기가 막히게 예술이라, 자연이 만들어준 길바닥 화장실에서 신나게 단체 사진을 찍어대고 또 달렸다.
출발한 지 딱 8시간째, 사라져 가는 시간 감각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와중이었다. 결리는 어깨와 쑤시는 무릎의 감각이 익숙해져 가고, 멀미와 더위에 절여져 흐물거리는 여섯 명의 한국인들에게 시내는 다정하게 외쳤다.
"여러분~~ 도착입니다~"
8시간의 여정 : 좌- 몽골 현지 마켓의 오리온 초코파이. 한국 것보다 맛이 훨씬 더 다양하다. 우- 현지 식당에서 먹은 고기 플레터.
8시간의 여정 : 몽골은 화장실도 관광지가 된다
드디어 차강 소브라가에 도착했다. 붉은 기암절벽 지대인 이곳은 해발 1500m 정도의 고지대로, 고생대에 바닷속 지층이 융기되어 생긴 절벽 지형이다. 이 지대에서 소금이 발견되어 바다인 것을 알게 되었고, 하얀 불탑이라는 뜻의 ‘화이트 스투파’라고도 불린다.
8시간의 이동이 무색하게 차강 소브라가의 첫인상은 사실 희미하다. 광활한 들판과 가파르게 깎여진 절벽. 사진에서 본 풍광이 눈앞에 펼쳐지니 오히려 담담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보다는 찌뿌둥하게 구겨졌던 온몸이 펼쳐지는 감각이 찌릿했다. 관광객들이 서 있는 절벽 위로 모래가 살짝 섞인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우리는 광활한 들판과 절벽을 내려다보며 감상에 잠시 잠겼다.
시내는 우리에게 차강 소브라가의 진면목을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해주겠다며 지친 우리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하더니, 절벽 아래를 똑바로 가리켰다. 해맑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제 여기로 내려갈 거예요."
사진으로 보니 어째서 완만해 보이는 거니
오. 마이. 갓. 여기를 그냥 내려간다고? 이건.. 그냥.. 절벽인데? 팀 여행을 가기를 잘했지. 저질 체력 소유자에 등산이라고는 동네 뒷산 탄 것이 전부인 나는, 아마 혼자 몽골에 갔다면 안 가고 숙소에서 쉬겠다며 생떼를 부렸을 것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진상을 부릴 수는 없으니 아무렇지 않은 척 내려가 볼까나-
모든 일이 그렇듯, 막상 내려가다 보니 또 할만하다. 절벽의 웅장한 생김새와 공포스러워만 보였던 경사에 비하면 등산 무식자인 나도 금방 적응해 내려갈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 차강소브라가의 트래킹은, 며칠 후에 있을 고비 사막 등반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이다. 일종의 준비운동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경사가 심해 미끄러지는 경우가 꽤 있으니 안전을 위해 슬리퍼나 샌들보다는 운동화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한참을 멍하니 고개를 박고 모래알만 시야에 가득한 채로 다리를 열심히 움직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니 정신이 맑아진다. 몽골 여행은 이게 매력적이란 말이지- 몸은 점점 꼬질꼬질해지는데, 머리가 실시간으로 깨끗하게 정리되고 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지 않으려는 다리에 감각에만 온 신경이 곤두섰다.
그나저나 날이 건조해 걸을수록 목이 마른데 시내는 계속 물을 마시지 말라고 성화다. 꼭 해야 하는 의식이 있다고 했다. 그게 대체 뭐길래? 지친 우리들의 시선 끝에 시내의 표정이 느껴졌다. 두 눈은 장난기로 반짝 빛나고, 입꼬리가 올라갈락 말락 실룩대는 것이 뭔지는 몰라도 아주 재밌는 것인가 보다.
차강 소브라가를 올려다보며 맥주 한 잔
시내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바로 맥주였다. 송골거리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몽골의 대표 맥주 '골든 고비'를 손에 들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내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리액션을 해야만 하는 눈빛이었달까? '어서 이 음료를 따서 마셔봐! 무척이나 맛있다고 해줘!'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었달까...?
웃자고 한 소리고, 물론 술은 언제나 옳다. 게다가 뜨거운 햇볕 아래 차강소브라가를 안주로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붉은 절벽에 새파란 하늘과 황금색 골든 고비의 차가운 촉감이 함께했던 차강 소브라가. 떠나기가 아쉬워 사진을 동행들과 사진을 잔뜩 찍으며 괜히 수선하게 몸을 움직여댔다. 몽골의 첫 여행지가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