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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so May 26. 2022

여름이 좋아졌다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 눈을 뜨지 못하고 손을 휘저으며 선풍기 리모컨을 찾았다. 선풍기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랑이는데 설레서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엊그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서 아직은 봄이구나~했는데 갑작스러운 여름의 아침이었다.


카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10분 사이에도 온몸이 달아올랐다. 헉헉 거리며 계단을 올라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엘 들어섰다. 얼음을 띄운 냉수를 들이키며 보일러 온수를 켰다. 더운 날엔 더 뜨거운 물로 씻어줘야 제 맛. 그리고 나와서는 펑퍼짐한 반팔티에 팬티만 입고 집을 어슬렁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두세 번의 여름은 그럴 수 없게 됐다.


이사  집의 부엌,  , 작은 , 서재까지 죄다  창으로 뚫려있어서다. 햇빛과 바람이 들어와 좋았던 것은  며칠이었다. 초고층이 아닌 곳의 넓은 창은 나의 일상을 공개하는 아주 피곤한 통로였다. 자유를 반납하거나 커튼을 쳐야 했다. 다행히 바로  건물은  방이 있는 곳보다 낮았지만 문제는  건물을 지나 솟아있는 회백색 벽돌 건물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티비를 보는지, 빨래를 널었는지 너무  보였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도 내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주말마다   건물 꼭대기층에 사는 아저씨가 이불을 터는  보고, 아저씨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보며 지내고 있다.


혹여나 잠옷을 까먹고 씻으러 들어간 상황을 대비해 모든 창문을 피하는, 화장실 앞 사각지대에 속옷&잠옷 서랍을 뒀다. 오늘에서야 그 위치 선정이 진가를 발휘했다. 어이쿠 어이쿠. 샤워를 하고 나와 재빨리 서랍에서 잠옷 바지를 꺼냈다. 이 상태로 사진이 찍혀 어둠의 사이트에 돌아다니면 어떡하지 끔찍한 상상을 하며 허둥지둥 다리를 집어넣었다.


종아리가 두꺼워서 짧은 하의를 입지 않는데 집에서도 긴 바지라니. 갑갑했다. 집에 있는 반바지라곤 고등학교 때 입었던 뉴발란스 체육복뿐이었다. 그거라도 갈아입을까 싶다가 허리 밴딩이 뻑뻑해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만뒀다.


시간도 많은데 반바질 하나 만들어 입을까? 아니야 뭣하러 그렇게까지. 그냥 하나 사 입자를 반복하다 잠옷 브랜드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사장님 잠옷 반바지 원해요." 친구는 때마침 반바지를 만들고 있었다며 재단해놓은 원단 조각들을 찍어 보냈다.


만세!



우리 모두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름이 왔어. 여름이. 여름이 왔다니.


봉봉 알갱이를 씹은 것 마냥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여름을 2월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이라고? 맞다. 올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여름이 좋아졌다는 것이니까.


나는 여름을 꽤 오래 격렬히 싫어했다. 내가 더 이상 온전한 내가 아니라고 느꼈을 때, 즉 누군가가 바라보는 내 모습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을 때쯤 - 아마도 사춘기 - 여름이 싫어졌다.


신경 쓸 게 많아져서였다. 귀에서 앵앵거리며 잠을 방해하는 모기와의 사투도 한 몫했지만, 제일 컸던 건 냄새와 제모였다. 옷이 땀으로 젖어가는 게 부끄러웠고, 체육시간이 끝나고 옷에서 땀냄새가 날까 봐, 어디서 쿱쿱한 쉰내가 나면 내 옷이 잘못 말랐나 싶어 킁킁거려야 했다. 여름의 마법의 날은 최악 중 최악이었다. 찝찝함은 물론 악취가 날까 신경 써야 했고 물놀이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 이모집에서 사촌언니가 이모의 겨드랑이 털을 핀셋으로 뽑아주는 걸 봤다. 어른이 되면 자라는 건 줄 알았는데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서 봤더니.. 쒯, 내 겨드랑이에서도 자라는 게 아닌가. 이차 성징을 디테일하게 알려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과 화장실에서 비밀리에 공유하며 이 변화를 겪어야 했다. 엄마한테 뽑아달라할 수도 없고.. 손톱깎기 세트에 있던 핀셋을 꺼내 들고 화장실로 갔다. 비장한 각오로 거울 앞에 섰다.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해봤지만 핀셋은 지독스레 살만 집었다. 악! 몇 번의 여름을 핀셋으로 해결하다 목에 담이 올 뻔 했다. 고등학생 땐 아빠의 일회용 면도기를 하나씩 빼돌려 기숙사로 가져갔다.


자취를 하며 여름을 싫어할 이유는 더 많아졌다.


첫째는 계절용품 관리. 선풍기를 꺼내면서 닦아야 하고 2주에 한 번은 날개에 붙은 먼지를 또 닦아야 했다. 에어컨과 제습기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끝나면 다시 한번 닦아 케이스에 넣어 좁은 집 한편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둘째는 음식. 상할까 봐 요리는 조금씩 자주 해야 했고, 상했는지 안 상했는지 모를 땐 다 버려야 했으며,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그만큼 자주 내다 버려야 했다.


셋째는 욕실에서의 전쟁 때문이었다. 바퀴벌레와 하찮은 화장실 나방, 붉은 곰팡이의 출몰. 그들을 막기 위해선 다른 계절보다 더 열심히 청소하고 더 자주 하수구에 베이킹소다를 부어야했다.


여름만 되면 흐리멍덩, 흐물흐물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겐 아주 버거운 일들이었다.


내 거북목이 더 심해진 여름도 떠오른다. 영화 의상팀 일을 했을 때, 여름철에 좀비물을 찍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난 마치 콩벌레 같았다. 아침마다 좀비 옷을 더럽히기 위해 사용하던 숯가루, 콩가루들이 땀이 난 내 살갗에도 들러붙었다. 물티슈로 닦아낼 시간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대체로 그럴 시간이 없이 촬영에 들어갔다. 그럼 난 그 가루들이 귀 뒤, 목덜미, 겨드랑이 구석구석 껴 있을까 봐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온몸을 궁상맞게 옹송그리고 있어야 했다.


그런 내가 여름을 기다리게 됐다. 그것도 책의 한 부분을 읽고.




드라마 <그해 우리는>이 여름에 대한 싱그러움으로 나를 흔들고 떠나더니 윤가은 감독님의 책 <호호호>가 곧바로 마음을 헤집었다. 여름이 내 마음을 마구 비집고 들어왔다.


감독님은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여름의 아이들을 담았다. 그런 감독님이 책에서도 여름에 대한 글을 남겼으니 더 곱씹어 볼 수 밖에 없었다.



PART 2. 모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름병


<우리집>
아이들이 사방팔방으로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그림을 생각하고 있던 터라, 여름의 밝고 가벼운 계절감이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모험도 여름이 아니면 불가능 할 것 같았다. 그제야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여름이야말로 진짜 아이들을 위한 계절이라는 것을.

아이들이야말로 여름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즐길 줄 알았다. 여름이 오면 아이들은 땀이 나는 말든 가벼운 옷차림을 날개 삼아 어디든 자유롭게 누비고 다녔다. 더위를 핑계삼아 시원하고 달콤한 간식들을 양껏 먹을 줄도 알았다. 푹푹 찌는 날이면 거침없이 물가로 달려가 흠뻑 젖도록 노는 패기가 있었고, 비가 오는 꿉꿉한 날이면 기꺼이 상념에 젖어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다. 여름의 주인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러니까 하필 아이들을 위한 계절에, 기어코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를 찍게 된 건, 어쩌면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고, 행운이 아니라 천운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 실은 신의 무한한 축복이었던 것이다. (p. 89)



<콩나물>
땡볕에서 고생하는 스태프들이 돌아가며 더위를 먹었다. (...)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의 주인공이자 현장의 최연소 동료인 일곱 살 김수안 배우만큼은 끄떡없었다. 오히려 더우면 더울수록 더 생기 가득 청량한 에너지를 한껏 분출하고 다녔다. 결국 그 친구의 힘찬 기운이 다시 우리 팀을 일으켰다.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여름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어린이뿐이었다. (p. 93)



찐득거림과 불쾌함에 잊고 있던 나의 조각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코가 시릴 만큼 추웠던 날, 뜨거운 여름 이야기를 읽다 보니 더 쉽게 마음이 열린 걸 수도 있다. 작품을 만나는 타이밍도 늘 운명이라 생각하기에 여름을 흠뻑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름 내내 계곡에 모여 물놀이를 하고 몸을 벌벌 떨며 라면을 먹던 나와 동네 오빠들.

모기한테 다리를 뜯기면서도 꾸역꾸역 따라갔던 아빠와의 밤낚시.

그러다 만난 반딧불이와 생각보다 무섭게 생겼던 수달.

태풍 루사로 담벼락이 무너지려는 와중에도 강아지 쫑이를 구출해오던 겁 없던 오빠.

불법 포장마차였지만 내게 개불의 맛을 알려준 깡패 삼촌들.

(기름 만 원치 넣고 생수를 안 준다며 엄마에게 욕을 하고 가던 젊은 놈을

오토바이로 수 백 미터를 쫓아가 끝내 사과시키던 그 깡패 삼촌들)

꿀벌을 지키기 위해 잠자리채로 말벌을 잡던 우리 가족.

젤리 슈즈와 코스모스 원피스를 선물해준 이모.


나의 여름엔 짙고 선명한 애정이 있었다.





내가 여름을 완전히 놓아버리지 못하도록 여름의 맛들도 힘껏 버텨주고 있었다.


아빠가 냉장고 가득 채울 만큼 사다 준 아이스크림.

옆집 할머니께서 해주신 백숙.

엄마의 사이다 화채.

뉴슈가 넣어 한 냄비 쪄먹던 옥수수.

몸서리치게 뜨거웠던 포슬포슬 찐 감자.

끊임없이 먹다가 탈이 나야 포크를 떼던 수박.

설탕 한 움큼 뿌려 먹던 토마토.

벌레도 탐낼 만큼 달았던 복숭아.

어느 집에나 푸짐히 쌓여 있던 자두와 포도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내고향 김천은 여름에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이다. 여름의 과일들이 맛있게 무르익고, 깊은 계곡과 높은 산이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그곳에서 보낸 여름 없이는 나도 없었다.


여름이 애틋해졌다. 너무 오래 미워해서 미안했다. 여름이 주는 선물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여름을 즐기는 덴 땀을 줄줄 흘릴 준비만 되어 있다면 충분하단 걸 어린 내가 알고 있다. 그 어린 내가 내게 남아있다.


그렇게 2월부터 기다렸던 여름이 덩굴장미의 향과 함께 불쑥 찾아왔다.

선물 받은 애플망고가 홍시만큼 단 걸 보니 정말로 여름이 왔다.


때마침 시원한 빗줄기가 쏴아아 내린다.


반가워 여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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